▲ 금융당국 수장들은 올해 들어 ‘금융산업 글로벌화’라는 임무 수행을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주요 은행을 비롯한 한국의 금융산업은 경제·금융시스템 전반의 경쟁력과 건전성을 기반으로 우수한 신용등급을 보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9월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금감원·지자체·금융권 공동 런던 투자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금융당국 수장이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민간 기업의 해외 진출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며 ‘대한민국의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뒤 금융당국 수장들은 올해 내내 '금융산업 글로벌화'를 위해 K-금융을 세일즈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들의 분주함에도 금융회사에 실적처럼 숫자로 나타나는 성과는 아직 없다. 해외사업이 워낙 성과를 장담하기도 어렵고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절대적 시간도 필요한 탓이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해외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금융권에 많다.
이 원장은 올해 들어서만 두 번 금융권과 해외 공동 투자설명회(IR)에 참석했다. 금감원장이 직접 해외 IR 행사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이 원장은 9월 런던 공동 투자설명회에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 금융산업의 강점을 적극 알리면서 또 국내 금융시장의 접근성과 투자 편의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금융권과 공동 투자설명회에서도 한국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성장성 등을 적극 홍보했다.
이 원장의 K금융 세일즈 행보를 두고 ‘감독기관이 피감기관과 우애를 다지면 되겠느냐’는 등 정치적 비판도 따라붙지만 금융권에서는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어느 기업에나 해외사업은 특히 어렵다. 영업 환경이 국내와 크게 다르고 무엇보다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 수장이 직접 금융시장 환경을 설명하고 투자 환경 개선을 약속하면 금융회사로서는 한국 금융회사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금감원은 해외 투자설명회에 참석하는 외에도 다방면으로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우선 해외 감독당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외교 채널을 강화하면 아무래도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에서 인·허가를 받거나 감독을 받을 때 지원하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
특히 이 원장은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과는 올해만 세 번이나 개별 면담을 했다. 마헨드라 시레가 청장과는 5월과 9월 두 번 만났다.
인도네시아 금융당국도 적극적이다.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 은행감독청장은 방문단을 꾸려 25일 방한한다. 은행감독청장은 방한 기간 이 원장을 접견하고 부원장 등 실무진과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국내 금융회사가 진출해 있다.
금감원은 또 국내 금융회사의 애로 및 건의사항을 파악하고 해소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진출 지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를 위해 주요 진출대상국 감독제도 편람 등을 발간하고 현지 금융시장 및 감독규제 현황 등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1일 정무위 국정감사 현황 보고에서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선하고 일본, 동남아시아 등과의 금융 외교 활동을 통해 현지 금융당국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우선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을 저해할 수 있는 규제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융위는 7월 금융회사의 해외 자회사 소유 범위를 확대하고 해외 자회사에 대한 자금지원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금융회사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선 방안’을 마련한 뒤 현재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9월13일 영국 런던에서 금감원‧서울시‧부산시‧금융권이 공동으로 개최한 투자설명회(IR)에서 연설하고 있다. <금감원> |
법령이 개정되면 지금까지는 해외에서 은행이 다른 회사에 15% 이상 출자할 수 없었고 금융지주는 비금융 회사의 해외 주식을 소유할 수 없었으나 현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해진다.
또 금융위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에 외교공관을 중심으로 금융 유관기관과 현지 진출 금융회사, 핀테크 기업 등이 참여하는 ‘금융진출협의체’를 꾸리고 영업·규제현황, 인·허가 애로사항 등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를 점차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금융위도 김소영 부위원장이 K금융 세일즈를 위해 해외 출장길에 오르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9월 인도네시아, 베트남, 홍콩을 방문했다. 앞서 5월에는 우즈베키스탄을 찾아 금융업 협력과 관련해 기조연설을 했다.
금융당국 수장들의 해외진출 금융회사들에 대한 지원사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산업 성장에서 글로벌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국제화를 콕 집어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지난해에는 리스크 관리로 금융산업 육성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으나 올해부터는 직접 금융시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금융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국제화, 경쟁력 강화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해외사업은 성과를 장담할 수 없고 또 성과가 언제 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특히 어렵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이 점을 잘 알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를 바라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매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해 “신뢰와 무형의 서비스가 핵심 자산인 금융산업이 규제와 언어, 문화가 다른 해외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에 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본의 금융사들도 해외 진출의 과실이 가시화하기까지 10년 이상의 긴 세월이 소요된 만큼 이를 교훈 삼아 정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