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비금융까지 고려하겠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최종 후보자는 11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약식 기자간담회에서 인수합병(M&A) 전략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자가 11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발언은 비은행 금융사 인수합병 전략을 막연하게 언급한 다른 금융지주 회장과 달리 비금융사 인수 가능성까지 열어두면서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다.
양 후보자가 비은행사업 확대 의지를 그만큼 강하게 내보인 셈인데 금산분리 규제 완화 분위기, KB금융의 리브엠 성공, 지난해 디지털 IT부문을 이끌며 얻은 경험 등이 자신감 있는 발언의 배경으로 꼽힌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현재 금융지주와 은행의 비금융사업 진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규제 완화는 금융지주나 은행이 보유할 수 있는 비금융사 지분 한도를 늘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융지주는 비계열회사 지분을 5%까지만 소유할 수 있고 은행은 비금융사 지분을 15% 이상 확보할 수 없다.
금융위는 애초 지난달 말 관련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었으나 현장의견을 더 듣기 위해 논의 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시기의 문제일 뿐 금융위가 궁극적으로 금산분리 규제를 일정 부분 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KB금융은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하면 가장 적극적으로 비금융사 투자에 나설 금융그룹으로 평가된다.
KB금융은 은행을 바탕으로 보험, 카드, 증권, 캐피탈 등 금융분야에서 가장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은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은행을 제외한 금융 계열사를 단단하게 갖춘 만큼 규제만 풀린다면 상대적으로 더욱 과감하게 비금융사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양 후보자도 간담회에서 “KB금융은 이제 전반적 포트폴리오는 좀 갖춰진 것 같다”고 운을 띄운 뒤 다음 단계로 비금융사 인수합병 의지를 보였다.
KB금융이 알뜰폰사업인 ‘리브엠(KB리브모바일)’을 성공으로 이끈 경험을 지닌 점도 양 후보자의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리브엠은 금융업계에서 비금융사업에 진출한 성공사례로 여겨진다.
KB금융은 2019년 혁신금융서비스로 리브엠을 시작했는데 올해 2월 가입자 40만 명을 넘겼다. 4월에는 시범서비스 딱지를 떼고 금융위로부터 정식사업 승인도 받았다.
소비자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리브엠은 ‘2023년 상반기 통신3사·알뜰폰 브랜드별 체감만족률’ 조사에서 2년 연속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알뜰폰사업에 진출해 성공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음 비금융사업 추진 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양종희 후보자 개인적 경험도 비금융사 인수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 후보자는 지난해 KB금융 디지털·IT부문을 이끌며 다양한 핀테크업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했다.
지난해 하반기만 보더라도 9월 싱가포르에 ‘KB글로벌핀테크랩’을 새로 열고 10월에는 기존 KB국민은행 행사였던 ‘KB테크포럼’을 전 계열사 임직원이 참여하는 행사로 확대 개최했다.
11월에는 블록체인기술을 활용하는 핀테크기업 ‘웨이브릿지’와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 위한 업무협약, 12월에는 디지털전문인력 매칭 플랫폼업체 ‘크몽’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 양종희 부회장(왼쪽)이 2022년 12월6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박현호 크몽 대표와 업무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KB금융 > |
웨이브릿지와 크몽 모두 스타트업이지만 양 후보자는 직접 업무협약식에 참석해 협력에 힘을 실었다.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점점 더 빠르게 무너지는 시기 양 후보자가 핀테크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양 후보자에게 비금융사 인수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다가갔을 수 있다.
다만 양 후보자는 KB금융을 대표하는 전략가이자 재무전문가로 평가되는 만큼 최대한 신중히 인수합병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미래 성장성뿐 아니라 재무제표 등 숫자로 보여지는 여러 상황을 꼼꼼히 따질 가능성이 크다.
양 후보자 역시 11일 간담회에서 비금융사 인수합병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양 후보자는 “인수합병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며 “지속가능한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는 측면에서 인수합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