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추진해 온 혁신 노력이 공공아파트 부실공사 사태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공급 아파트의 전단보강근(철근) 누락의 배경으로 전관특혜 등 고질적 악습 문제가 지목되면서 국민의 신뢰가 다시 바닥을 치게 됐다. 
 
'순살아파트' 파장 일파만파, 이한준 LH 신뢰회복과 재무구조 개선 '빨간불'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에 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검단아파트를 비롯해 이번 부실시공 사태로 토지주택공사가 떠안아야 할 각종 비용들을 고려하면 재무구조 개선작업에도 어려움이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반카르텔 및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전담조직을 즉시 신설하고 전관특혜 등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토지주택공사는 앞서 7월31일에는 시민단체가 청구한 전관예우 관련 공익감사를 적극 수용하고 비위사실에 강력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토지주택공사는 올해 4월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 이어 자체조사에서 무량판구조 지하주차장 전단보강근 누락 단지가 15곳이나 더 나오면서 비판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이번 공공아파트 철근 누락 원인이 대부분 설계 문제로 밝혀진 가운데 토지주택공사 퇴직 임직원이 속한 설계·감리업체가 관여돼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 사장은 이날 강남 논현동 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긴급대책회의에서 “이번에 설계·감리 등 건설공사 모든 과정에서 전관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토지주택공사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국민의 보금자리로 가장 안전해야 할 토지주택공사 아파트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보강공사를 실시한 뒤 입주민이 지정한 업체에 안전점검을 의뢰해 실시하고 입주민이 안심할 때까지 무한책임으로 조치하겠다”고 다시 한 번 고개도 숙였다.

하지만 이번 부실공사 사태로 취임 초부터 강조해 온 내부 혁신과 국민 신뢰회복 행보는 무색해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7월31일 기자회견에서 인천 검단아파트 공사 설계·감리를 맡은 업체가 토지주택공사 전관 영입업체라며 사업 수주과정의 전관특혜가 사고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2015~2020년 토지주택공사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 건설사업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을 조사한 결과 토지주택공사 출신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 47곳에서 용역의 55.4%(297건). 계약금액의 69.4%(6582억 원)을 수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토지주택공사의 전관예우 의혹 등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 문제를 집중공격하고 있다.
 
'순살아파트' 파장 일파만파, 이한준 LH 신뢰회복과 재무구조 개선 '빨간불'

윤석열 대통령이 8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31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국무회의에서 아파트 부실공사 원인으로 건설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며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며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당은 이번 토지주택공사 아파트 부실공사 사태와 관련 검찰 수사와 별도로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기로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토지주택공사 퇴직자가 설계·감리업체에 취업하고 전관업체들이 수주를 받아 설계오류, 부실시공, 부실감독 등이 발생한 과정은 이권 카르텔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토지주택공사는 2021년 일부 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사태를 극복하기도 전에 부실공사로 다시 한 번 부정부패 이미지를 뒤집어쓰면서 신뢰회복은 더욱 멀어진 셈이다.

이 사장은 2022년 11월 취임사에서부터 “토지주택공사의 주인이자 고객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 과감한 내부 혁신 의지를 밝혔다. 취임 한 달 뒤인 12월에는 경기지역본부에서 청렴서약식을 열고 전관예우 근절을 포함한 3대 혁신계획안을 직접 발표했다.

이 혁신안에는 토지주택공사 출신 퇴직 감정평가사, 법무사가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 등과는 퇴직일로부터 5년 동안 수의계약을 제한하고 투기행위 조사에 한정된 준법감시관 업무에 전관예우 예방, 감시업무 등을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사장은 올해 1월 신년사에서도 “2023년 토지주택공사가 해야 할 중점 과제 가운데 첫 번째는 국민 신뢰회복을 위한 혁신을 완수하는 것이다”며 “정본근원으로 근본을 다져 국민 신뢰를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이번 부실공사 사태는 토지주택공사의 재무건전성 개선작업에도 부담을 안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장은 올해 국민 신뢰회복과 함께 재무건전성 확보를 핵심 경영과제로 강조했다. 이 사장은 2023년 신년사에서 지속가능경영을 위해서는 재무건전성 개선이 필요하다며 “유휴자산을 과감히 처분하고 사업 다각화와 비용 절감을 통해 자금유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지주택공사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돼 2026년까지 부채비율을 현재 221%에서 207%로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부실시공 단지 보강공사와 입주민 피해보상, 안전점검비용 등 각종 추가 비용 투입이 필요하게 됐다. 

토지주택공사가 공개한 지하주차장 전단보강근 누락 단지 15곳 가운데 현재 보강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단지는 3곳이고 보강공사가 예정된 단지는 9곳이다.

토지주택공사는 이달 안에 15개 단지 주민설명회를 통해 구체적 부실범위와 보강계획 등을 설명할 예정인 만큼 입주민 피해보상에 관한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단보강근이 누락된 단지 가운데 아직 입주가 진행되지 않은 단지를 대상으로는 계약해지 및 계약금 환불, 입주지연에 관한 보상 등 문제도 거론된다.

토지주택공사는 실제 파주운정A34 단지 추가 입주예정자 가운데 희망자를 대상으로 계약을 연기하고 선납 계약금을 환불하겠다고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