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내 에너지 체계에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기존에 전력은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 대규모 시설에서 생산돼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전력시장과 한국전력공사의 송배전망 등을 거쳐 공급돼 왔다.

하지만 이제는 각 가정에도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소규모 발전원이 보편화되는 추세인 데다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요구하는 세계적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에너지 시장의 환경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5월 국회에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기존의 중앙집중형 체계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지방자치단체과 기업들은 에너지 체계의 변화를 앞두고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분산에너지법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기업들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지방자치단체는 어떤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분산에너지 시대](1) 송전탑 갈등 줄이고 지역경제 살리고, '탈탄소 전력' 기반
[분산에너지 시대](2) 분산에너지 특별법 발의, 김성환 민주당 의원 인터뷰
[분산에너지 시대](3) 전력 거래가 가능해진다, 분산에너지법에 기업도 '들썩'
[분산에너지 시대] 송전탑 갈등 줄이고 지역경제 살리고, '탈탄소 전력' 기반

▲ 한화솔루션이 양평농협과 함께 양평농협 스마트농업지원센터에 마련한 태양광 스마트팜의 모습. <한화솔루션> 

[비즈니스포스트]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세계적 과제로 떠오른 지금, 인류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햇빛과 바람을 활용하는 새로운 에너지의 시대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분산에너지’로 제도적 대응이 시작됐다.

분산에너지라는 거대한 전환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 분명한 만큼 정부는 물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응 움직임이 분주하다.

25일 지역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내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의 시행을 앞두고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해 부산, 울산, 세종, 전남, 경북 등 지자체들은 분산에너지법에 따른 에너지특구 지정을 위해 별도 조직을 꾸리고 산업시설 유치에 공을 들이는 등 총력전 태세를 갖춰가고 있다.

SK, 한화, GS 등 대기업 그룹들도 주요 계열사를 통해 분산에너지 체계에서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분산에너지법의 무엇이 이들을 분주하게 만드는 것일까?

◆ 에너지계의 ‘로컬푸드’ 분산에너지, 신재생·연료전지·수소발전·SMR 포함

분산에너지법에 따르면 분산에너지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공간, 지역 또는 인근 지역에서 공급하거나 생산하는 에너지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에너지’를 뜻한다.

쉽게 말해, 식품업계의 로컬푸드(local food)와 비슷한 개념이다. 에너지 소비지와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하는 에너지 즉 로컬에너지다. 탄소배출량도 적어지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분산에너지법 시행령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만큼 분산에너지에 해당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가 얼마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전기사업법 등 관련 규정을 통해 ‘분산형전원’이 ‘발전설비용량 40MW(메가와트) 이하의 발전설비 및 500MW 이하의 집단에너지설비’라고 규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산에너지법 시행령도 같은 내용으로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 역시 복수의 자료를 통해 분산에너지를 ‘발전설비용량 40MW(메가와트) 이하의 발전설비 및 500MW 이하의 집단에너지설비’라고 소개하고 있다.

분산에너지에 해당하는 사업은 집단에너지사업, 구역전기사업, 중소형 원자력 발전사업, 분산에너지 통합발전소사업, 신재생에너지사업, 연료전지발전사업, 수소발전사업, 저장전기판매사업 등이다.
 
[분산에너지 시대] 송전탑 갈등 줄이고 지역경제 살리고, '탈탄소 전력' 기반

▲ 산업통상자원부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에서 분산에너지의 범위를 설명한 그림. <산업통상자원부>

◆ 설치의무·가상발전소·특구 등 핵심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예정

분산에너지법이 담은 주요 내용은 △분산에너지 설치의무제도 △통합발전소 도입 △분산에너지특화지역 도입 △지역별 전기요금 등이다.

그밖에 분산에너지의 안정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계통영향평가 실시, 배전사업자에 관리의무 부과 등 내용도 함께 규정됐다.

분산에너지 설치의무제도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에너지공급의 안정 증대 등을 위해 산업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분산에너지 설비 설치계획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분산에너지 설치의무제도의 대상으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신축 혹은 대수선하는 건축물의 소유자, 택지사업 개발자, 도시개발사업 개발자, 산업단지 관리자 등이 있다. 구체적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된다.

통합발전소는 ‘정보통신 및 자동제어 기술을 이용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에너지자원을 연결, 제어하여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분산에너지법과 함께 통과된 전기사업법 개정안에 정의가 규정돼 있다.

통합발전소는 통상적으로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로 불린다. 실제 발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용 태양광과 같이 소규모로 분산된 발전원을 통합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관리하는 사업이다.

분산에너지사업자 혹은 가정 등 소규모 발전원에서 생산된 잉여 전력의 안정적 시장 참여를 위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할 기술, 사업으로 꼽힌다.
 
분산에너지특화지역은 지역 특성에 적합한 전력시스템 도입을 위해 행정규제의 일부 혹은 전부를 적용하지 않는 등 특례가 적용되는 지역이다. 구체적 특례의 내용은 대통령령 등을 통해 마련된다.

제주도를 비롯해 부산, 울산, 세종, 전남, 경북 등 발전시설이 위치해 에너지 자급률이 높은 지자체에서는 분산에너지특화지역에 지정되기 위해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 전기요금은 송전, 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다르게 정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국내에서 전기요금은 산업용, 농업용, 가정용 등 분야별 차등만 두고 있으나 에너지원과의 거리 등 지역적 특성을 요금에 반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에너지 자급률이 높은 지자체에서는 지역별 전기요금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주요 생산시설을 유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분산에너지 시대] 송전탑 갈등 줄이고 지역경제 살리고, '탈탄소 전력' 기반

▲ 제주특별자치도는 6월20일 제주시 메종글래드 제주에서 '글로벌 분산에너지 포럼'을 열었다. 사진은 오영훈 제주도지사(오른쪽 여섯 번째) 등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제주특별자치도>

◆ 송전비 절감·사회적 비용 감소가 큰 강점, 제2의 ‘밀양 송전탑’ 사라질 듯

분산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송전 비용의 절감이 꼽힌다.

현재와 같이 지방에 위치한 대규모 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기를 주요 수요처인 수도권 등으로 송전하는 데는 그 자체만으로 막대한 비용이 든다.

게다가 송전탑, 송전선로 등 설치를 놓고 주민 수용성 문제 등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08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10년 넘게 갈등이 이어졌던 ‘밀양 송전탑 사건’은 송전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희생이 필요한지를 사회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에너지 전환이 피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는 점도 분산에너지를 도입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서구권에서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민간차원의 RE100 등 탈탄소, 친환경을 명분 삼는 무역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 역시 탄소 무역장벽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에너지 분야에서의 탈탄소 전환을 필수이며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경제적, 산업적 측면에서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과제다.

기존에 한국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던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와 비교하면 풍력, 태양광 등은 가정에도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소규모로 설치가 가능하다.

새로운 에너지원의 특성을 고려하면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시설에 맞는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에서 변화가 불가피한 셈이다.

분산에너지 도입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산업부가 올해 6월 내놓은 ‘2021~2022 산업통상자원백서’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호주 등은 2017년, 일본은 2019년부터 분산에너지를 도입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한 뒤 실행에 옮기고 있다.
 
[분산에너지 시대] 송전탑 갈등 줄이고 지역경제 살리고, '탈탄소 전력' 기반

▲ 2014년 6월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을 위한 행정대집행이 진행되는 모습. <연합뉴스>

◆ 에너지원 간헐성 해소 위한 유연성 자원 확보는 도전과제

분산에너지의 주요 단점으로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원의 간헐성 문제가 꼽힌다.

태양광, 풍력 등 발전은 일조량이나 풍속에 따라 발전량의 변동이 크기 때문에 필요한 때에 전력 공급을 충분히 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수요보다 지나치게 많은 전력을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

전력은 실시간으로 공급과 수요가 일치해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공급과 수요의 차이가 벌어진다면 대규모 정전 등 계통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간헐성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연성 자원 확보가 분산에너지의 확대 과정에서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유연성 자원이란 전기 에너지를 저장한 후 필요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력수요 피크를 억제하고 심야수요를 증대시키는 부하관리 즉 수요반응(DR) 등 계통운영자의 전력 공급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을 뜻한다.

제도적 측면에서 현재 분산에너지법의 중요한 부분 곳곳이 시행령 등 하위법령에 위임돼 있다는 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분산에너지의 의무설치 대상의 구체적 기준을 비롯해 분산에너지특화지역의 요건과 절차 및 구체적 특례의 내용 등은 분산에너지법의 실효성에 중요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지역별 전기요금 제도 역시 차등의 정도와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또한 분산에너지 사업으로 발생하는 송전망 등 비용 절감, 사회적 갈등 회피, 계통안정화 기여 등 사회적, 경제적 편익을 국가가 어느 정도로 보상할지 문제는 기업의 분산에너지 사업 참여 여부 등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도 분산 편익의 보상 문제는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 사이에 이견이 큰 주제였다.

결국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법은 제46조 제1항에서 분산 편익과 관련해 산업부 장관이 “확대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게 됐으며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