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 거센 전기요금 인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과도하게 설정된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낸 전기요금을 돌려달라는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하는 없다는 정부 방침이 워낙 강경하다.
◆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불만 폭주, 정부는 완고
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주택용 전기요금 반환 소송의 첫 변론이 11일 진행된다. 한전이 과도한 누진율을 적용해 부당징수한 주택용 전기요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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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
이 소송은 지난 2014년 처음 접수됐는데 최근 무더위로 전기요금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면서 8월 들어 2천 명 이상이 소송에 참여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 대전·광주·부산지법 등에서 진행되는 소송만 7건에 이른다. 그만큼 현행 최대 11.7배 차이나는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많이 쌓인 것으로 여겨진다.
야당 역시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박주민 더민주당 의원은 누진단계를 3단계로 간소화하고 누진배율을 2배 격차로 줄이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을 제출했다. 국민의당도 6단계 누진제를 4단계로 축소하는 안을 발표했다.
요금체계를 개편하지 않더라도 한전이 2015년처럼 한시적 요금인하라도 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저유가로 여전히 연료비가 낮고 한전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는 만큼 가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5년 3분기에 한시적으로 6단계의 누진제 주택용 전기요금 중 4단계 요금을 3단계로 인하했다. 또 토요일에 중부하 요금이 적용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절반 수준인 경부하 요금으로 1년간 인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의 입장은 완고하다. 정부는 현재 전기요금 체계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물론 한시적 요금인하도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9일 브리핑을 통해 “주택용 요금은 지금도 원가 이하”라며 “전력 대란 위기 상황에서 여름철 전력수요를 낮추려면 누진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일 전력최대 수요는 사상 최대 수준인 8450만kW까지 치솟았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역시 5일 국회에서 “현재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7차 전력수급계획상 전력수요를 14.3% 줄여야 하는 과제가 있어 누진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부와 한전, 왜 요금체제 개편 안할까
정부가 전기요금체계 개편에 나서지 않는 이유로 한전으로부터 나오는 배당수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한전은 영업이익 11조 원, 당기순이익 13조 원을 거둬들였다. 한전은 1조9900억 원을 배당했는데 배당수익률이 6.2%로 시중금리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산업은행과 정부가 한전 지분 51.1%를 보유하고 있어 1조 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았다.
한전 실적은 올해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영업이익 6조3천억 원을 거둬 2015년 같은 기간보다 45.8% 늘었다. 사상 최대 실적이다. 당기순이익도 3조9천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53.2% 증가했다.
허민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전은 2015년 3분기와 달리 2016년 일시적 요금 인하가 없어 3분기에 영업이익 5조800억 원을 낼 것”이라며 “배당에 대한 기대감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환익 사장 입장에서도 전기요금 인하로 한전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달갑지 않다. 조 사장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발판으로 올해 사장 연임에 성공했다.
조 사장은 한전의 에너지신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한전 경영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어 3연임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게 관측된다.
만약 올해도 호실적을 이어갈 경우 한전 사상 최초로 3연임에 성공하는 것과 동시에 5년 재임으로 최장수 한전 사장인 이종훈 전 한전 사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가능성이 크다.
조 사장은 3연임을 하지 않더라도 장관으로 기용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산업용 전기요금 상향 가능성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하는 대신 이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와 한전 실적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는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 전기요금보다 낮아 기업을 위해 국민이 희생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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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81원으로 주택용 기본요금인 60.7원보다 비싸다. 하지만 주택용은 전체 가구수의 3%만 해당하는 1단계 요금만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낮다. 2단계 구간부터 kWh당 125.9원으로 산업용보다 비싸진다. 전체 가구의 97%는 산업용보다 비싼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전력소비구조는 1분기 기준으로 산업용이 53.2%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주택용은 13.4%의 점유율에 그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우리나라의 전력소비가 일반적인 OECD 국가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핵심 전력경향 보고서에 따르면 OECD 전력소비 경향은 산업용이 32.0%, 주택용이 31.3%로 비슷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산업부문은 전력소비의 중요한 부문이었지만 2009년 이후 낮은 경제성장률과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주택용과 상업 및 공공 부문에 자리를 내줬다”며 “한국의 전력소비는 일반적인 전력소비 행태와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이 국산 철강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때도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근거로 삼았다. 미국 상무부는 5월 외교부와 한전 관계자가 참석한 공청회에서 한전이 전력을 싸게 공급해 철강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수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채희봉 산업부 실장은 산업용 전기요금 역시 조정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채 실장은 “산업용은 원가가 더 적게 들어 지금도 원가 이상을 받고 있다”며 “10년간 산업용은 76%, 주택용은 11% 요금을 인상해 주택용에 징벌적 요금을 부과하고 산업용을 과도하게 할인한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