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회사들이 동남아 시장 공략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아세안시장 개척이 코로나19 여파로 주춤했다가 리오프닝과 맞물려 투자금융 글로벌 스탠다드 확보를 목표로 한 민관 협력이 개화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세일즈맨을 자처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 이목을 끌고 있다. 아세안 금융허브인 싱가포르와 함께 수교 50주년을 맞는 인도네시아, ‘포스트 중국’ 베트남, 신흥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캄보디아 시장 선점을 위한 행보로 읽힌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금융시장 성장 발판을 구축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3개국에서의 국내 금융업계 활약상을 생생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에필로그 글 싣는 순서
① 금융강국으로 가는 길, 아세안루트 개척 인내가 필요하다
② 미처 담지 못한 현장 이야기, 전하고 싶은 주재원의 말말말

[다시뛰는 K금융 에필로그①] 금융강국으로 가는 길, 아세안루트 개척 인내가 필요하다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중심 시내. 일반 주택단지 뒤로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해외에서 만나면 모두 다 애국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5월1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더세인트레지스호텔에서 열린 K금융 설명회 ‘K파이낸스위크 인 인도네시아2023’에 참석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금융사 CEO들은 행사 시작 전 호텔 로비에 모여 이렇게 말하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해외에 나오면 ‘국위선양’의 마음이 생긴다며 K금융을 세계시장에 알리기 위해 힘쓰는 서로를 격려한 셈인데 현지 주재원들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다.

비즈니스포스트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다시뛰는 K금융’을 주제로 5월9일부터 26일까지 약 3주 동안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만난 국내 금융사 주재원들은 마음 속에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늘 품고 다니는 듯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 금융사 지점장은 “한국에서는 하나의 지점일 뿐이지만 여기서는 이 지점이 우리 금융사의 전부고 한국과 주된 접점”이라며 “금융사는 물론 한국을 대표한다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발전을 넘어 아세안의 금융한류를 이끌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인도네시아의 한 법인장의 말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K금융이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 현지에서 보니 더욱 녹록치 않았던 국내 금융사의 아세안 공략기

아세안은 국내 금융사에게 기회의 땅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제 그곳에서 보고 느낀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현지 금융사의 벽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상황에 따라 은행을 비롯한 금융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향한 교육서비스까지 진행해야 했다.

현지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를 위해서는 재무제표의 신뢰성부터 따져야했고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은 국내 금융사 사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했다.

그곳에서 외국계 금융사인 국내 금융사를 거쳐 몸값을 높이고 이직하려는 유능한 현지인들을 붙잡아두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업 확대, 조직 관리와 별개로 ‘규제와 싸움’도 K금융의 아세안 공략에서 또 다른 장애물로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뛰는 K금융 에필로그①] 금융강국으로 가는 길, 아세안루트 개척 인내가 필요하다

▲ 베트남 호찌민 일반 거리 모습. 베트남 사람들은 무더운 날씨 속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캄보디아에서 만나 한 법인장은 “동남아 공무원이 세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니냐. 여기는 공무원을 통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의 1960~70년대를 상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루훗 빈사르 판자이탄 인도네시아 해양투자조정부 장관이 5월11일 열린 K파이낸스위크 인 인도네시아2023 행사 환영사에서 국내 금융사를 향해 앞으로 정부의 말을 더 잘 들으라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현지 정부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 짐작됐다.

그런 측면에서 K금융 확대를 위한 한국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해 보였다.

베트남에서 만난 한 법인장은 “금융당국자들이 서울에서 서류로 보고 받는 것과 이곳에 직접 와 현지 상황을 둘러보고 관련 정책을 짜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금융당국자의 현지 방문이 더 많이 이뤄지고 실질적 도움이 되는 더 많은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K금융을 향한 관심과 노력은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K파이낸스위크 인 인도네시아2023 기간 인도네시아 현지 에너지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은 이우열 KB부코핀은행장은 “애초 업무협약까지 6개월 정도 더 걸릴 것으로 봤는데 한국에서 금감원장 방문에 맞춰 협약을 맺자고 재촉해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K금융의 아세안 공략을 위한 필요한 정부의 역할은 금융당국의 노력에만 그치지 않았다.

취재 도중 주재원들로부터 아세안의 전통적 강자인 일본기업의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는데 이들은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일본 정부와 아세안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부러워했다.

캄보디아 한 법인장은 “아세안에 일본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한 ODA(공적개발원조)를 통해 쌓은 신뢰는 대단하다”며 “우리도 지금처럼 꾸준히 ODA를 확대하면 금융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아세안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들은 50년 넘게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반면 국내 금융사가 아세안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K금융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선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 K금융 아세안 공략의 가능성을 품고 뛰는 주재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금융 확대'라는 지상명령을 받은 주재원들은 한국인 특유의 성실하고 꼼꼼하면서도 부지런한 DNA를 바탕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지 전략 수립과 직원 교육, 선진 시스템 구축, 공무원과 관계 개선, 현지화를 위한 CSR(사회적책임) 활동 강화 등은 물론 영어 실력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그들 언어를 배우는 일까지 전부 주재원에게 주어진 주요 과제였다.

그들은 화교와 일본 자금이 강세인 그곳에서 후발주자의 약점을 딛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시뛰는 K금융 에필로그①] 금융강국으로 가는 길, 아세안루트 개척 인내가 필요하다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기념공원 모습. 잘 정비된 기념공원 안 노르돔 시아누크 전 국왕 동상 앞으로 시내 고층빌딩들이 서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인도네시아 한 주재원은 “어떤 사업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로펌 자문을 받아도 자본시장 규정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자문사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도 많다”며 “그런 때는 직접 부딪혀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새 길을 낸다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시작하는 서산대사의 유명한 한시를 언급하며 새로운 길을 가는 데 필연적으로 따르는 두려운 마음을 전한 법인장도 있다.

캄보디아 한 법인장은 “누군가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다 혹은 틀리다 알려주면 좋을 텐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아무것도 없는 하얀 눈밭에 발을 처음 내딛는 심정은 정말 불안하고 힘들지만 누군가는 가야하는 길인 만큼 열심히 가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중요도를 고려했을 때 K금융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법인장, 지점장을 포함한 주재원들이 한 국가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해 보였다.

지금은 각 국가의 규제뿐 아니라 순환보직 등 금융사 자체 방침 등에 따라 현지에서 5년 이상 일한 법인장이나 주재원은 흔치 않았다.

몇몇 법인장들은 임기 내 주요 과제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는데 이 역시 인사 문제와 연결됐다.

결국 자신은 몇 년 뒤 이곳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데 후임자가 처음부터 고생하지 않으려면 안정적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발주자로 많은 애로사항을 안고 있지만 아세안은 K금융에 분명 기회의 땅이었다.

특히 핀테크로 대표되는 디지털금융이 불러온 변화는 아세안에서 K금융의 성공 확률을 크게 높이고 있었다.

현지 주재원들은 아세안 금융시장이 현재 은행을 건너뛰고 현금 중심 시장에서 바로 디지털금융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600달러 수준으로 아세안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캄보디아에서도 현금 대신 큐알(QR)코드를 활용한 결제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플랫폼 중심의 디지털 금융을 중시하는 국내 금융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발휘된다면 아세안 공략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금융산업은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데 K팝와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도 분명 금융사의 사업확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인도네시아 한 주재원은 “몇 년 전부터 지금이 K문화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매년 그 기준이 높아지며 한국문화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한국문화를 향한 호감이 계속 높아지는 점은 분명 영업활동에 긍정적 요소다”고 말했다.

올 여름 이른 무더위에 비도 많이 내려 어느 때보다 덥고 습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 여름이 아무리 더워봤자 적도와 가까운 아세안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아세안이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했지만 거저 주어지는 기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주재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서 기회가 조금씩 성과로 바뀌어 쌓여가고 있었다.

국내 금융사 주재원들은 사계절이 한국처럼 뚜렷하지 않은 무더운 그곳에서 국위선양이라는 단어를 마음 한편에 품고 내일도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다. K금융 확대를 위해 그들이 흘리는 땀의 가능성을 응원하며 믿는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