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 잔뼈 굵은 전항일, '중소브랜드 발굴'로 G마켓 부활 신호탄 쐈다

▲ 전항일 지마켓 대표이사가 '오픈마켓의 본질 집중' 전략으로 지마켓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그는 좋은 셀러를 확보하고 이들이 제품을 잘 팔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마켓 부흥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지마켓>

[비즈니스포스트] “오픈마켓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전항일 지마켓 대표이사가 지난해 말부터 임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지마켓은 G마켓과 옥션의 운영사다. 과거 국내 오픈마켓 시장에서 점유율 70% 이상을 확보하기까지 했던 절대강자였지만 현재는 경쟁자들에 밀려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

전 대표는 이럴수록 더욱 오픈마켓의 본질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좋은 판매자들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좋은 제품을 팔 수 있는 판만 깔아준다면 과거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전략은 서서히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2일 지마켓에 따르면 올해 G마켓·옥션이 ‘빅스마일데이’에서 흥행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소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발굴했기 때문이다.

빅스마일데이는 지마켓이 해마다 두 차례 진행하는 대규모 할인행사다. 보통 5월과 11월에 열린다. 

지마켓은 최근 12일 동안 진행한 상반기 빅스마일데이에서 모두 2135만 개의 상품을 팔았다.

여태껏 진행된 빅스마일데이 행사 가운데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5월 행사보다 새 고객이 17% 늘었으며 신선배송 거래액이 171% 증가했다는 점 등에서 성과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마켓이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중소 브랜드의 흥행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P&G 등 대형 브랜드뿐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소 브랜드의 제품을 행사 전면에 내세운 덕분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 행사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품목은 대형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었다.

빅스마일데이 행사 첫날인 8일 G마켓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상품은 로봇청소기 브랜드 로보락의 제품이었다. 신제품 ‘로보락 S8 프로 울트라’를 포함해 첫날에만 매출 56억5천만 원을 기록하며 1시간 만에 준비된 물량이 모두 동났다.

G마켓은 로보락과 협의해 추가 판매를 위한 물량을 더 확보했는데 행사 이틀째인 9일 라이브방송에서는 모든 물량이 10분 만에 소진됐다. 라이브방송 때 팔린 로보락 상품은 모두 31억 원어치다.

빅스마일데이 기간 G마켓과 옥션에서 판매된 로보락 제품의 매출 규모는 모두 114억 원으로 전체 판매 품목 가운데 매출 1위에 올랐다.

로보락은 지마켓이 로봇청소기 시장을 선도할 대표 상품을 찾는 과정에서 2020년 5월 처음 찾아낸 브랜드다. 로보락은 중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로 국내 총판 팅크웨어모바일을 통해 국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마켓은 로보락에게 빅스마일데이라는 행사를 설명하고 이 행사의 대표 상품으로 로보락 제품을 적극적으로 알려줄테니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에 상품을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대신 그만큼 많은 물량을 판매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런 적극적인 협력 덕분에 로보락은 지난해 상반기 빅스마일데이 행사에도 지마켓의 판매 1위 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오픈마켓 잔뼈 굵은 전항일, '중소브랜드 발굴'로 G마켓 부활 신호탄 쐈다

▲ 음식물처리기 업체 라움은 전체 직원 규모가 10여 명 수준에 불과한 아주 작은 회사지만 지마켓과 협업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있다. 윤민호 라움 대표(사진)가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베이비페어 박람회에 참석해 지마켓의 빅스마일데이를 앞세워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다. <지마켓>

올해 빅스마일데이에 소비자 눈에 확 각인된 브랜드는 음식물처리기 업체 라움이다.

라움은 전체 직원 규모가 10여 명 수준에 불과한 아주 작은 브랜드다. 하지만 이들이 개발한 음식물처리기 ‘블랙홀더킹’은 제2의 로보락 로봇청소기를 꿈꿀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라움은 지난해 빅스마일데이와 올해 설 명절 프로모션 행사 ‘설빅세일’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상품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마켓은 이런 소비자 반응을 감안해 올해 빅스마일데이 행사의 주력 제품으로 라움의 음식물처리기를 공격적으로 지원했고 결과적으로 행사 기간 매출 13억9천만 원을 기록하며 G마켓 기준 판매 순위 25위에 올랐다.

제품 1개당 가격이 약 1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판매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는 것은 중소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품질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라움은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베이비페어 박람회에서 음식물처리기를 홍보하면서 G마켓·옥션 할인행사인 빅스마일데이에 제품을 판매했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중소 브랜드가 단순히 가전 영역에서만 약진한 것은 아니다. 생필품 영역에서도 중소 브랜드의 판매가 돋보였다.

이번 행사에서 판매된 물티슈 ‘브라운 물티슈 캡형’은 첫날 주문건수만 총 1만4천 건이었다. 행사 이틀 동안 이 물티슈가 기록한 매출은 10억 원이다.

브라운은 대형 제조사의 브랜드는 아니지만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익히 잘 알려진 브랜드다. 지마켓은 브라운과 협업해 기존 제품보다 두께가 두꺼우면서 면적이 더 넓은 ‘빅스마일데이 전용 버전’을 출시한 결과 빅스마일데이에 이 제품으로만 모두 2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중소 브랜드를 발굴하고 G마켓·옥션의 대표 행사인 빅스마일데이에 이 브랜드들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은 전항일 대표가 강조하는 오픈마켓의 본질과 맞닿은 전략이라는 것이 지마켓의 설명이다.

전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오픈마켓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오픈마켓은 누구든지 판매자가 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 대표가 말하는 오픈마켓의 본질이란 좋은 셀러를 확보하는 것이다.

최근 이커머스 시장을 살펴보면 오픈마켓이 좋은 셀러를 단독으로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이 워낙 여러개인데다 전자상거래 시장의 주도권 싸움을 펼치고 있는 쿠팡과 네이버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대표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누구나 판매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오픈마켓의 본질이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어떻게 이 본질적 경쟁력을 강화하느냐에 G마켓·옥션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어떻게 좋은 셀러들을 확보할 것인지, 그리고 이들에게 어떻게 판을 깔아줄 것인지가 지마켓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뜻이다.

지마켓 관계자는 “전 대표의 전략에 따라 G마켓·옥션은 가격과 품질 경쟁력은 갖췄지만 아직 이렇다할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강소기업들을 적극 발굴했다”고 말했다.

대형 브랜드와 협력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중소 브랜드 발굴 전략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제조사의 브랜드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특정 플랫폼에서만 싼 가격으로 상품을 선보이기 쉽지 않다. 가격을 더 낮출 여지가 작기 때문에 차라리 중소 브랜드와 협력하는 것이 빅스마일데이의 흥행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마켓 관계자는 “뻔한 브랜드가 아니지만 한 카테고리 안에서 우수한 성능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품을 발굴하는 것이 핵심이다”라며 “상품기획자(MD)들은 행사 시작 6개월 전부터 이러한 브랜드 제품을 선정해 다양한 협업방법을 논의하며 행사에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소 브랜드 입장에서는 지마켓 채널의 힘을 빌려 고객과 접점을 넓혀 제품 홍보와 판촉에 도움을 받으며 G마켓과 옥션은 단독 상품, 공급 물량, 가격 경쟁력 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유통사와 제조사의 성공적 윈윈 케이스로 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지마켓의 반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마켓은 2022년이 신세계그룹에 인수된 뒤 온전히 한 해를 보낸 첫 해였지만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지난해 G마켓의 총거래액은 모두 15조7858억 원이었다. 2021년과 비교해 4%가량 빠졌다. 올해 1분기에는 총거래액을 아예 공개하지 않았는데 매출이 소폭 후퇴했다는 점에서 점유율 하락 기조를 끊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항일 대표는 오픈마켓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전 대표는 1994년 연세대학교 생물공학부를 졸업한 뒤 롯데백화점과 LG상사, 삼성물산 등을 거쳐 2003년 지마켓의 전신인 이베이코리아에 입사했다.

이베이코리아에서 영업본부장과 이베이재팬 대표이사 등을 거쳐 2021년 이베이코리아 대표이사에 올랐고 현재는 지마켓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남희헌 기자
 
오픈마켓 잔뼈 굵은 전항일, '중소브랜드 발굴'로 G마켓 부활 신호탄 쐈다

▲ 로봇청소기 제조기업 로보락은 지마켓과 꾸준히 협업해 올해 빅스마일데이 행사에서도 매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