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이 올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올랐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오른 지 3년 만의 성과다.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만든 지 10년 남짓한 회사는 이제 소비자 생활의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쿠팡 제국’을 건설할 기세다.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배달과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등 쿠팡의 영향력이 안 뻗치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막 1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회사지만 쿠팡의 성장세가 ‘두렵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릴 정도다.
다만 이 성장의 뒤편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많다.
물류 노동자에 대한 처우, 미국 국적을 가진 창업자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나오는 지배구조 감시 공백 문제 등은
김범석 의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로 꼽힌다.
2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날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경영 성과를 살펴보면 쿠팡의 공정자산 순위는 45위지만 매출만 따진다면 이미 15위권의 대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쿠팡의 공정자산은 올해 11조1070억 원으로 인정돼 공정자산 10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을 분류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됐다. 2021년 4월 처음으로 공정자산 5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을 의미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오른 지 3년 만의 일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만 보면 쿠팡에게는 아직 ‘대선배’들이 많다. 국내 10대 그룹을 제외하고라도 쿠팡 위에는 30개 넘는 기업들을 수두룩하다.
하지만 매출만 놓고 보면 쿠팡의 입지는 수직 상승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쿠팡 기업집단의 지난해 매출은 31조3660억 원이다. 이는 재계 순위 10~20위 안에 포함된 한진(17조5740억 원), 카카오(10조5810억 원), 두산(9조2740억 원), DL(13조6690억 원), HMM(18조4960억 원), 중흥건설(13조9750억 원) 등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 많은 것이다.
쿠팡의 외형 성장 속도는 여전히 빠르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의 공산품 영역에서 만큼은 네이버를 제외하면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선식품 분야에서도 나름 성과를 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행과 티켓 분야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도서 시장도 쿠팡의 공세가 확대되는 분야다.
쿠팡은 최근 책 1권만 사도 배송을 무료로 해준다는 점을 앞세워 도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교보문고가 창사 이후 43년 만에 처음으로 전체 직원의 40%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등 도서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은데 오히려 이 상황을 기회로 보고 시장의 빈틈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배달 플랫폼 쿠팡이츠는 쿠팡의 유료멤버십 와우멤버십과 결합한 혜택을 선보이며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쿠팡이츠는 최근 와우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에게 배달 주문 메뉴를 5~10% 할인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 3개 자치구에서 시작한 이 서비스는 현재 12개 자치구로 빠르게 영역을 확대했다.
이 서비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쿠팡이츠가 ‘만년 3위 배달 플랫폼’이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뒤집을 수 있는 무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배달 앱(애플리케이션) 시장은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전체 시장 점유율 75%가량을 가지고 있는 시장이다. 쿠팡이츠는 플랫폼 출시 이후 공격적 프로모션으로 한 때 요기요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했지만 이후 새 성장동력을 만들지 못해 현재는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와우멤버십 가입자만 110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쿠팡이츠가 모든 메뉴 10% 할인이라는 공격적 정책으로 판을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쿠팡플레이 역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5월에 ‘쿠플시네마’라는 서비스를 내놓는다. 이 서비스는 와우멤버십 회원이라면 추가 비용을 결제하지 않고도 쿠팡플레이를 통해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집에서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쿠플시네마의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넷플릭스가 단단히 쥐고 있는 OTT 시장에 큰 균열을 내기에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쿠팡의 여러 사업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김범석 의장이 이끄는 쿠팡이 한국에 ‘쿠팡 제국’을 건설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김 의장은 단 한 번도 쿠팡을 ‘한국의 아마존’으로 만들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쿠팡이 아마존의 성장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며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김 의장이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김 의장은 이러한 성장 전략을 놓고 G마켓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1세대 이커머스맨’ 구영배 큐텐 대표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국내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를 이끄는 김한준 대표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 의장과 구 대표가 만났던 일화를 전했다.
김 대표는 당시 구 대표가 김 의장에게 ”진짜 사업 잘 한다. 쿠팡이 이길 것이다. 근데 내가 당신과 경쟁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그리고 나이가 든 것도 (다행으로 여겨라). 꼭 잘 해라“라고 응원했다고 적었다. G마켓을 키워 미국 이베이에 매각한 경험을 지닌 구 대표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만한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는 쿠팡 물류 노동자 처우 문제 개선과 지배구조 감시 공백 문제 등을 안고 있다. 사진은 2022년 9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쿠팡물류, 쿠팡배송, 쿠팡배달 3개 노조 공동 '쿠팡의 반노동 실태 증언 및 경영진의 자성 촉구'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
물론 김 의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쿠팡이라는 거대 플랫폼의 고성장 이면에는 아직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는 물류 노동자 처우 문제다.
쿠팡은 지난해 물류센터의 폭염 대책이 미흡하다는 문제를 놓고 노동조합과 갈등했다. 쿠팡뮬류센터지회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류센터에 냉방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회사 태도를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직접 쿠팡의 경기 동탄물류센터를 찾아 현장을 확인했을 정도다.
쿠팡은 이와 관련해 노동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택배노조 산하에 쿠팡택배지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이들은 쿠팡의 물류 담당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소속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 조건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쿠팡택배지회의 주장에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을 중단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걸맞은 지배구조 감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정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너와 오너의 친인척이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내부거래로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법 규정을 만듦으로써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를 감시하고 회사의 동일인(총수)과 관련한 인물의 움직임을 짚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미국 국적이라 동일인 지정과 관련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전례가 없기 때문인에 이에 따라 다른 대기업집단과 형평성이 맞느냐는 논란 등이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쿠팡은 국내에 친족 회사가 없는 상황으로 사익 편취의 규제 대상 범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쿠팡에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쿠팡의 동일인을 김 의장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