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이 뜬다](하)기후변화센터 김소희 “시장조성에 기재부 나서야"

▲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정부 특히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민간이 자발적으로 만든 탄소배출권을 사줘야 시장 조성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형 작가 제공>

[비즈니스포스트] 여기,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제한된 시장이 있다. 심지어 해외에서는 2050년까지 100배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까지 들려온다. 어찌할 것인가? 보통의 시장이라면 공급자들이 떼 지어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 시장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정부가 ‘할당대상’으로 지정한 업체만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 시장 즉 탄소시장이 그러하다.

지난해 4월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아오라(AORA)’를 개설한 기후변화센터의 김소희 사무총장은 “지난 1년 동안 많이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탄소배출 감축에 의무가 있는 규제대상뿐 아니라 일반 기업, 국민 모두 탄소배출을 감축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고 탄소시장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다만 인센티브가 없어 자발적 탄소시장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며 “호주 등 해외처럼 정부가 민간이 자발적으로 만든 탄소배출권을 사준다면 시장 조성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부회장,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총장을 8일 만났다.

이날 기후변화센터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자발적 탄소시장 글로벌 동향 및 국내 활성화 방향’ 세미나를 공동개최했다.

- 세미나 주제가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다. 정부가 만든 탄소배출권(EST) 플랫폼은 이미 한국거래소(KRX)가 운영하고 있는데, 자발적 탄소시장이 따로 필요한 이유는?

“정부가 만든 시장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파리협정에서 국제사회는 지구 온난화를 1.5도로 제한하기로 약속했다.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서 탄소시장 관련해 중요한 규칙은 마련됐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큰 기업들뿐 아니라 중소기업, 비정부기구, 개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모두 함께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벌여야 한다. 그러한 활동에 인센티브를 주면 참여자도, 활동도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법적 규제와 무관한 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수행해 얻은 탄소 크레딧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이 시장에는 개인, 기업, 비정부기구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가 가능해 규제 범위 밖에서 탄소 감축을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생긴 수익은 감축 프로젝트가 지속될 수 있는 선순환 기회를 제공한다.”

김 총장의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발적 탄소시장(VCM, Voluntary Carbon Market)과 ‘규제적 탄소시장(CCM, Compliance Carbon Market)’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규제적 탄소시장은 정부 규제에 의해 움직인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정부의 규제를 받는 기업들이 정부가 허용한 배출량 즉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보다 적게 배출했을 때 남는 배출량을 팔기 위해 내놓는 시장이다.

배출권은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비유할 수 있다.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기업에 정부가 ‘이만큼만 버리라’고 무료로 봉투를 줬는데, 그것보다 쓰레기가 적게 나오면 봉투가 남을 것이다. 그것보다 많은 쓰레기가 나오면 봉투가 부족해질 것이다. 그 ‘봉투’ 즉 배출권을 거래하는 곳이 규제적 탄소시장이다.

문제는 전 세계 정부가 만든 ‘쓰레기봉투’들만으로는 전 세계 쓰레기를 다 처리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민간이 만든 ‘쓰레기봉투’도 쓰자는 움직임이 기업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규제대상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비영리단체, 개인이 온실가스 감축활동 즉 ‘쓰레기처리활동’을 벌이더라도 제대로만 했다면 인정해주는 것. 그게 바로 자발적 탄소시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을 ‘탄소 저감 크레디트’ 혹은 ‘크레디트’라고 부른다.

- 기후변화센터가 ‘아오라’를 론칭한지 1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그간의 성과는? 어려움은?

“아오라는 국내 비영리기구(NGO) 중에선 우리가 최초로 론칭한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이다. 그동안 아오라의 존재를 통해 그리고 오늘 세미나를 통해, 자발적 탄소시장과 관련한 국내 인식 제고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플랫폼으로서의 기반도 다졌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는 플랫폼인 ‘골드스탠다드(GC)’, ‘글로벌탄소회의(GCC)’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거래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이들과 지속적으로 협업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동안 탄소배출 감축에 의무가 있는 규제대상뿐 아니라 일반 기업, 국민 모두 탄소배출을 감축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고 탄소시장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다만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여건이 아직 국내에는 조성이 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탄소중립을 위해선 기술과 재원이 필요하다. 기술과 재원은 시장이 있어야 조달될 수 있다. 즉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정부가 시장 조성에 힘써주길 기대하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이 뜬다](하)기후변화센터 김소희 “시장조성에 기재부 나서야"

▲ 기후변화센터와 골드스탠다드는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해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사진은 골드스탠다드의 휴 살웨이 마켓총괄(맨 왼쪽), 기후변화센터의 유영숙 이사장(왼쪽에서 셋째)과 김소희 사무총장(오른쪽에서 셋째). <기후변화센터> 

-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민간이 주도하는 탄소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 활성화에는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정부 여러 부처의 참여가 필요하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나서야 한다. 시장 조성에는 마중물, 즉 정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호주, 싱가포르 등 해외 정부처럼 한국 정부도 민간이 자발적으로 만둔 배출권을 사준다면 플레이어들(시장참여자들)이 안정적으로 양질의 크레디트를 공급할 수 있다. 그래야 국제적으로도 신뢰 받을 수 있는 크레디트가 민간에서도 나올 수 있다. 시장이 조성되기 시작할 것이다.”

- 자발적 탄소시장은 출발부터 글로벌 시장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은 곧바로 해외 기관들과 손잡고 있다. 한 예로 하나증권은 지난해 싱가포르 탄소배출권거래소(CIX)와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굳이 국내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만의 룰이 있어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시장에선 룰이 가장 중요하다.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이미 스스로 룰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역시 정형화된 규범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기 보다는 직접 플레이어로 뛰면서 룰을 만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한국 기반의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재계도 직접 시장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한상의는 이르면 올 하반기에 가칭 ‘VCM 거래소’를 열고 탄소 저감에 기여하거나 감축 활동을 한 기업에 탄소 저감 크레디트를 부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등 반도체회사가 저전력 반도체를 개발해 탄소저감 성과를 인증 받으면 크레디트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정유업체 등 탄소저감이 어려운 업체들은 이 크레디트를 사서 탄소저감에 참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대한상의는 1월에 발표한 ‘한국형 탄소감축인증표준’을 국제항공부문 탄소상쇄감축협약(CORSIA) 등 국제기관에 등록해 해외 공신력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 한국의 룰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신뢰다. 1톤짜리 탄소배출권이 실제로 1톤의 탄소를 감축했는가 하는 이슈다.

최근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중 ‘베라(Verra)’가 베이스라인(기준선)을 과장되게 설정해 실제 감축량보다 많은 탄소배출권을 발급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 때문에 그린워싱 논란도 커졌다.

한국에서 발급된 탄소배출권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글로벌에서 통용되는 메커니즘의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기준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시행하는 CORSIA 수준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 앞으로 아오라 운영계획은?

“장기적으로는 아오라가 골드스탠다드, 베라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스탠다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골드스탠다드 등 해외 기관들과 협업하면서 글로벌스탠다드에 맞는 사업 개발과 등록, 검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아오라 자체의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그에 부합하는 크레디트를 발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오라 크레이드가 CORSIA 인증을 받기 위한 계획도 마련하고자 한다.

올해엔 우선 청정개발체제(CDM) 등 우리 센터가 기업들과 함께 개발도상국에서 추진했던 기후 대응 사업의 운영 경험과 제3자 기관의 협업을 바탕으로, 다른 기후 사업의 탄소 저감 크레디트에 대한 모니터링을 수행하고자 한다.”

유영숙 전 환경부 장관을 이사장으로 2008년 설립된 기후변화센터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 연구, 정부에 대한 제언, 기업과 개도국 협력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풍부하다. 2018년부터는 고효율 쿡스토브 보급 CDM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