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성공적으로 한일 정상회담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정부가 내놓은 한일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합의를 두고 피해자보다 일본 입장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핵심고리격인 김 차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윤석열정부 외교 '키맨' 김태효, 강제징용 합의 논란에 정상회담 성과 절실

▲ 정부의 한일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합의에 비판이 쏟아지면서 합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에게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징용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차장은 과거부터 ‘친일’적 시각을 드러내며 한일관계 개선을 주장해왔다. 이번 합의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일 정상회담에서 뚜렷한 성과가 도출되지 않으면 책임론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해법에 관해 “정부가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미래 발전에 부합하는 방안을 모색한 결과”라고 말했다.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해법의 핵심은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등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지급한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배상금을 부담하지 않으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혜택을 입은 한국 기업들이 우선 참여한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관점과 결이 다르지 않다. 김 차장은 이명박정부 대외전략비서관 출신으로 윤석열정부 외교라인의 핵심이자 국가안보실의 실세로 평가된다. 

김 차장은 6일 브리핑에서 “윤석열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을 한일관계 정상화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찾고자 했다”며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분들에게 그간 미뤄둔 배상을 하는 동시에 일본과는 과거의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 나아가 양국의 미래 세대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방안을 앞으로 계속 논의하고 이행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전날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반발한 시민단체들의 친일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윤 대통령, 박진 외교부 장관 등과 함께 ‘계묘5적’에 선정되며 이번 합의를 주도한 인물로 꼽혔다.

김 차장은 과거 논문과 칼럼에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옹호하는 등 일본에 우호적 시각을 드러내왔다. 이번 합의에서 김 차장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차장은 2015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를 두고 "한국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충족시키고자 노력할 마음이 상대방(일본)에게 있다면 우리도 과거사 문제에 관한 원칙과 입장을 재점검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2001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시절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미·일 신방위협력 지침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는 “일본이 한반도 유사 사태에 개입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은 평상시 대북 억지력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바라봤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을 맹비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함께 개최한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규탄 긴급 시국선언’에서 “국가는 굴종하고 국민은 굴욕 느끼고 피해자는 모욕을 느낀다”고 꼬집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우리 정치가 할머니들 존엄을 못 지켜드렸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수십 년 싸움을 자신의 치적 쌓기에 묻으려는 윤 대통령의 결정에 우리 모두 힘 모아 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차장으로서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 이번 합의를 향한 비판 여론을 가라앉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정부가 일본에 우호적인 강제징용 해법을 내놓으면서 조만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본 교도통신은 16~17일 윤 대통령의 방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거둘 수 있는 성과로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복원을 통한 한일 셔틀외교(제3국을 활용하는 외교관계) 복원 등이 거론된다.

산업부는 전날 일본의 수출규제 관련 협의를 진행하는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수출규제가 이뤄진 2019년 7월 이전으로 관계를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일본은 이번 합의와 수출규제는 별개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상회담 역시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김 차장이 이번 합의로 불리한 여론을 감수하고도 내세울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비판 수위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김 차장이 이미 일본과 외교에서 여러 차례 실책을 저지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으로 근무할 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실 추진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해 9월에는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과 명확한 합의 없이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됐다고 발표했다가 일본이 부인하고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찾아가는 ‘약식회담’ 형식으로 치러져 ‘대일 굴종 외교’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 차장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마포고등학교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신아시아연구소 국제협력실장과 공군 정책자문위원,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성균관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다.

김 차장은 2008년 이명박정부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상임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뒤 대외전략비서관과 대외전략기획관에 임명되며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인수위원에 선임된 데 이어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맡았다.

김 차장은 2012년 이명박 정부 대외전략기획관에서 물러나면서 군사기밀을 담고 있는 국가정보원 및 국군기무사령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2022년 10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유죄가 확정된 지 두 달여 만에 윤 대통령의 연말사면 대상에 포함돼 '끼워넣기 사면'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