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탄소장벽을 확대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빌미로 선진국들은 관세로, 공시로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저탄소 기술과 넓은 대지를 기반으로 저탄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뛰는 한국이 탄소중립에 머뭇거린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탄소중립 시대에 맞춰 기후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발굴해 그들의 도전과제와 핵심전략을 소개한다.

[탄소중립이 살 길] 눈 떠보니 기후 후진국, 한국 기업들 ‘국내 힘들다’ 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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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이 살 길](2) SKE&S 수소사업 집중, ‘넷제로’ SK그룹 선봉장
 
[탄소중립이 살 길] 눈 떠보니 기후 후진국, 한국 기업 ‘국내 힘들다’ 해외로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재생에너지 생산 1위 국가는 중국이었다. 한국은 미국, 브라질, 나이지리아, 캐나다, 인도네시아, 태국에 이어 47위다.

[비즈니스포스트] 3일, 기묘한 기사형 광고가 일간지 한 면을 도배했다. 제목은 ‘중국 녹색·저탄소 전환 성과 뚜렷’.

광고주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발행하는 일간지 ‘인민일보’였다. 중국이 재생에너지 설비 규모로 세계 1위, 신에너지 자동차 분야 생산판매량으로 8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과장광고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재생에너지 생산 1위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8년 기준으로 2억9542만 석유환산톤(TOE)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했다. 1TOE는 원유 1톤의 열량에 해당한다. 2위는 인도로 2억772만 TOE, 3위는 미국으로 1억7446만 TOE를 생산했다.

재생에너지 생산량 순위를 보면 한국은 브라질, 나이지리아, 캐나다, 인도네시아, 태국을 거쳐 일본, 케냐, 폴란드를 지나 47번째로 등장했다. 아프리카의 산유국, 앙골라보다 낮은 순위였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661만 TOE 수준이다. 
 
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등 한국에서는 ‘친환경차’라 불리는 중국의 ‘신에너지차’ 순위는 어떨까.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1월 발간한 '2022년 중국 자동차 글로벌 시장 수출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지난해 수출한 자동차 311만 대 중 68만 대가 ‘신에너지차’였다.

지난해 신에너지차 수출 증가율은 2021년 대비 120%에 이르면서 중국 자동차 수출 증가세를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인민일보의 광고대로 중국의 신에너지차 판매량은 ‘8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동차 생산 5위국인 한국 역시 2022년에 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55만 대 이상 수출했지만 중국의 성장세에는 미치지 못했다.
 
[탄소중립이 살 길] 눈 떠보니 기후 후진국, 한국 기업 ‘국내 힘들다’ 해외로

◆ 재생에너지, 친환경차에 이어 수소경제에서도 중국에 밀리는 한국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한국이 중국에 밀리는 건 재생에너지, 친환경차 부문만이 아니다.

탄소중립으로 전환하는 데에 핵심으로 불리는 청정수소 생산 분야에서도 중국은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 12월 펴낸 ‘중국의 수소에너지 산업지원정책과 한중협력방안’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12월 전 세계 최초로 청정수소 인증제를 시행하면서 수소 경제로의 전환 토대를 닦고 있다.

이 보고서는 “청정수소 인증제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청정수소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올해 중 청정수소 인증제를 시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으나 아직 구체적 시기는 발표하지 않았다.
 
◆ 미국으로, 폴란드로 경쟁력 높일 기반 찾아 나가는 한국 기업들

정부 정책에 시동이 걸리지 않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해외로 나가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글로벌 암모니아 최대 생산 기업인 미국 CF인더스트리스와 청정 암모니아 사업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청정수소의 원료인 청정암모니아를 한국으로 공급하려는 복안이었다.

국내 수소기업들이 미국을 내다보는 이유는 미국의 청정수소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10년 안에 청정수소 1kg의 생산비용을 1달러, 약 1300원으로 내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미국 정부의 정책 수단이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그린수소는 1kg에 최대 3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본다.

SK넥실리스는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확보를 위해 폴란드로 갔다. 연간 5만 톤 규모의 동박 공장을 짓기 위해서다.

폴란드는 태양광과 수소에 강점이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폴란드의 태양광 발전 용량은 6기가와트(GW)로 한국(4.4GW)보다 많다. 연간 누적 성장률 또한 유럽연합(EU)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폴란드는 EU에서 세 번째로 큰 수소 생산국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이 살 길] 눈 떠보니 기후 후진국, 한국 기업 ‘국내 힘들다’ 해외로

▲ 롯데케미칼이 세계 최대 암모니아 생산기업인 미국 CF인더스트리스와 암모니아사업에서 협력한다. 사진은 황진구 롯데케미칼 수소에너지사업단장(오른쪽)과 토니 윌 CF인더스트리스 CEO가 2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협악식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롯데케미칼> 


◆ “재생에너지 쓰면 전기료 50% 더 나올 판”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

반면, 기업들이 국내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 정책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에 불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가 재생에너지 직접구매계약에 적용되는 PPA전용 전기요금 제도다. 대한상의는 이 제도가 4월부터 시행되면 제조기업은 연간 10억 원, 대기업은 60억에서 최대 100억 원 전기요금 상승이 예상된다

PPA전용 전기요금 제도는 재생에너지를 1%만 사용해도 나머지 99% 전력사용량 전체에 적용된다. 그런데 PPA 기본요금은 킬로와트(kw)당 9980원으로 산업용(6630원)보다 50% 이상 높다.

대한상의는 “통상 PPA계약이 20년 장기계약인 점을 감안하면 최대 2천억 원 안팎의 손해가 발생하고 이는 원가상승,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 제도의 개선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와 관련, 한 반도체 회사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사용에 대한 공급망의 요구가 있어 비용부담에도 경영진을 설득해 PPA계약을 추진했는데 PPA요금제로 추진동력이 상실된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어 “예기치 않은 요금인상도 문제이지만 재생에너지사용, PPA제도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이 더욱 아쉽다”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 해외 주요국이나 한국의 다른 주력산업보다 낮다는 점도 기업들의 탄소중립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다른 주력산업 분야에선 투자세액 공제율이 기업 규모에 따라 최소 6%에서 최대 16%에 이르지만 재생에너지 분야에선 3~12%밖에 못 받는다”고 전했다.

그는 “IRA를 시행하는 미국뿐 아니라 베트남은 4년간 법인세 면제, 벨기에는 해상풍력 토지세 면제 등 재생에너지에 적극적인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며 “한국 역시 국가전략기술 수준으로 혜택을 높여줘야 산업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이 살 길] 눈 떠보니 기후 후진국, 한국 기업 ‘국내 힘들다’ 해외로

▲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으로 구성된 녹색금융협의체(NGFS)는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세계 GDP가 18%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청보라색은 GDP 30% 감소 우려 지역, 주황색은 10~18% 감소 우려 지역이다. 한국도 이에 해당된다. < NGFS > 

◆ 한국판 IRA로 친환경 산업 키우고 탄소중립 전환 지원해야

친환경 미래산업과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선 한국판 IRA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강남훈 회장은 2일 열린 친환경차 분과위원회에서 “미국은 IRA를 통해 전기차 생산 시설 투자시 30% 세액 공제해주는 반면 한국은 1%”라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송 부문은 전동화 차량 450만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국내 전기차 생산을 촉진할 수 있어야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NDC 달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탄소중립 지원은 산업 경쟁력 확보뿐 아니라 기후 관련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으로 구성된 녹색금융협의체(NGFS)는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세계 GDP가 18%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한국 기업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한국 기업들은 저마다 나름의 전략으로 탄소중립이라는 도전과제에 대응하고 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특별기획팀 = 이경숙 나병현 조장우 장은파 장상유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