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운전자 선택' 꺼낸 이창용, 한은 통화정책 전환 기대에 선 그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면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는 결정을 한 뒤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는 그동안 기준금리를 일곱 차례 연속으로 올려왔기 때문에 누적된 통화긴축 효과를 점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동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총재는 이번 결정이 통화정책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금리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에는 물가가 이례적으로 급등해 매회 금리를 인상해 왔지만 인상 이후 시간을 두고 추가 인상 여부를 검토한 것이 과거에는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 총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금융업계는 한국은행에서 이날 결정으로 금리인상 기조를 사실상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았다고 바라보고 있다.

국내 경기가 이미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1.6%로 하향 조정하면서 경기둔화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3월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대 진입, 연말 3%대 초반 진입을 물가 경로로 예측하고 있다”며 “제약적 통화정책에서 3%대 중반으로 내려오면 실질 기준금리가 0%보다 커져 경기 하강 압력은 더욱 확대된다”고 내다봤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상향 조정이 되고 있는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치와 달리 한국은 가계 부채의 부담과 수출 부진 등으로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 점도 추가 인상의 부담 요인이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총재가 올해 안에 금리동결에 이어 인하까지 결정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경기침체 우려와 가계부채 부담 등으로 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했으나 고물가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긴축 지속 여부 등 통화정책에 변수가 될 요인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종적으로 통화정책에 중요한 변수는 물가가 예상대로 안정될지 여부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 물가상승률이 5%대에서 연말에는 3%대로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는 굉장히 많은 불확실성이 있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물가 경로가 변동한다면 기준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올해 물가상승률이 점차 낮아지겠지만 목표수준인 2%대를 웃도는 오름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와 불확실성 요인들의 전개 상황을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아직 연준이 통화긴축 정책을 전환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 총재가 섣불리 금리인하를 단행하기 힘든 요인이다. 

당장 연준이 3월 말에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다시 올린다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현재 1.25%포인트에서 역대 최대치인 1.5%포인트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 총재도 이날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변동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고려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통화정책에서 차이가 벌어지면 환율을 절하할지 외환보유고로 쏠림현상을 막을지 금리를 올릴지 등 정교하게 대응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 방향문에서 긴축기조를 상당기간 이어가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할 것이라는 문구가 새롭게 등장했다”며 “이번 문구 등장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3분기 금리인하 전망은 4분기 또는 그 이후로 이연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