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라이벌] 삼성전자 '고객과 경쟁' 딜레마, 파운드리 분사가 해법?

▲ 대만 TSMC는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에서 기술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업철학을 앞세우고 있다. 사진은 TSMC의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 < TSMC >

[비즈니스포스트] ‘성신정직(誠信正直), 승낙(承諾), 객호신임(客戶信任)’

한국식으로 읽으면 다소 어색한 세 단어는 각각 ‘진실성’과 ‘헌신’, ‘고객의 신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TSMC가 1987년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앞세우고 있는 회사의 핵심 가치다.

여러 기업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TSMC의 사업 특성을 고려할 때 이런 기업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고객사에 해당하는 반도체 설계업체들은 경쟁사에 기술이 유출되거나 정보가 새어나가는 일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중머우 TSMC 창업주는 기술 보안에 특히 민감하다. TSMC를 방문하는 외부 관계자가 반드시 노트북의 USB 단자를 봉인해야만 출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적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TSMC가 처음 애플의 반도체 위탁생산을 수주한 배경도 이런 철저한 기술 보안 덕분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TSMC는 지금도 ‘우리는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반도체기업들이 안심하고 위탁생산을 맡길 수 있도록 이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TSMC와 상황이 다소 다르다.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하는 동시에 고객사의 반도체도 위탁생산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고객과 잠재적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TSMC와 큰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여러 파운드리 고객사가 삼성전자와 맺고 있는 관계는 다소 복잡할 수밖에 없다. 퀄컴과 같은 기업은 갤럭시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공급을 두고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와 경쟁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맡긴다.

퀄컴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주요 고객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 유출 가능성이나 경쟁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다수의 고객사는 삼성전자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기까지 고민을 안게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자체 반도체 설계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미래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중요하고 파운드리사업은 핵심 성장동력에 해당한다. 삼성전자가 두 사업 가운데 어느 한 쪽을 포기하기는 불가능한 만큼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중장기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증권가에서 삼성전자의 이런 문제에 해결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방안은 파운드리사업을 별도의 회사로 분사하는 일이다. 현재 파운드리사업부는 DS부문 아래 사업부 형태로 소속되어 있는데, 이를 독립된 법인으로 분리하면 반도체 위탁생산에만 집중하는 TSMC와 같은 사업구조를 갖추게 돼 고객사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이를 단기간에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고객사 수주에 약점으로 꼽히는 지금의 사업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금전적 측면에 있다. 파운드리사업을 별도의 회사로 분리하려면 자체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안정적 재무구조를 확보해야만 하는데,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파운드리사업 특성상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TSMC는 설립 초기부터 대만 정부의 지원과 외부에서 수혈한 투자금을 통해 활발한 생산 투자를 벌일 수 있었고 지금보다 반도체 기술 수준이 낮아 투자 비용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반면 삼성전자가 현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만큼의 기술 및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보하려면 다른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파운드리 예산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사업부 형태로 운영하는 구조는 당분간 지금과 같이 유지될 공산이 크다.
 
 [삼성의 라이벌] 삼성전자 '고객과 경쟁' 딜레마, 파운드리 분사가 해법?

▲ 삼성전자가 주요 반도체 고객사를 초청해 개최하는 기술 설명회 '삼성 파운드리포럼(SFF)' 2022년 행사 사진.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을 분사하는 동시에 기업공개(IPO)를 통해 미국 나스닥 등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을 두고 부정적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에서 핵심 성장동력으로 앞세우는 파운드리를 분할하면 전체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업황과 증시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파운드리사업의 기업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1위 업체인 TSMC와 비교되며 가치가 저평가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다만 파운드리사업 매출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며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삼성전자에 고무적이다. 그동안 미세공정 기술 개발과 생산 확대에 투자해 온 성과가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2022년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2025년이면 파운드리사업부 자체적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은 삼성전자가 이런 목표를 적기에 달성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을 분리하는 대신 지금과 같은 종합 반도체기업으로 계속 남으려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의 사업 구조에서는 반도체 설계 기술이 부족한 고객사에 삼성전자의 기술을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 더 폭넓은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설계에 경험이 많지 않은 대형 IT업체나 신생기업이 서버용 인공지능 반도체 등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상용화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자사의 반도체 설계 기술과 노하우, 지식재산(IP)을 공유하고 생산까지 담당하는 구조를 갖춘다면 수주 기회를 넓히고 고객사에도 도움을 주는 ‘윈-윈’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실제로 SAFE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사의 반도체 설계를 돕고 생산까지 책임지는 사업을 운영한다. 초반에는 주로 중소형 설계기업을 지원하는 상생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시스템반도체시장이 고도화되며 고성능 반도체 분야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TSMC도 협력사를 통해 대량의 지식재산을 보유하고 이를 파운드리업체에 제공하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기술 수준은 다소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설계사업에서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자체 지식재산의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사업과 및 파운드리사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구조는 고객사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는 약점이 아니라 고객과 더 긴밀하게 협업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차별화된 역량으로 자리잡게 될 수 있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1부- 삼성 vs TSMC
(5) TSMC 미중 갈등의 중심에 놓여, 삼성전자에도 경고장
(6) 삼성전자 '고객과 경쟁' 딜레마, 파운드리 분사가 해법?
(7) TSMC 파운드리 추격, 삼성 공급망 주도권 마지막 퍼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