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신라젠이 실패를 경험한 항암 바이러스 '펙사벡' 이외에 새로운 후보물질을 확보해 바이오기업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오랜 노력 끝에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난 만큼 경쟁력 있는 후보물질을 기반으로 기술수출 등을 추진해 지속가능경영 구조를 확립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신라젠 새 항암 후보물질 확보해  정상화 가속, '펙사백' 임상도 순조

▲ 신라젠이 항암 바이러스 '펙사벡' 이외에 다양한 후보물질을 개발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내놨다. 김재경 신라젠 대표가 1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신라젠은 1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력 후보물질에 대한 개발 현황 및 향후 계획을 공개했다. 

신라젠은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암 바이러스 펙사벡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하지만 이날 가장 먼저 소개된 후보물질은 펙사벡의 뒤를 잇는 차세대 항암 바이러스 ‘SJ-600’ 시리즈였다.

SJ-600은 항암 바이러스를 암세포에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기술을 뼈대로 한다. 기존 항암 바이러스는 종양에 직접 주사해 치료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바이러스가 체내 면역체계에 공격받는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종양 주사로는 일부 고형암을 치료할 수 있을 뿐 몸 곳곳에 전이된 작은 암세포나 혈액암을 공략하기는 어려워 정맥 주사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신라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암 바이러스 표면에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단백질을 붙였다. 이후 동물실험을 진행한 결과 SJ-600 바이러스는 혈액에서 대조 바이러스와 비교해 훨씬 많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항암 바이러스를 정맥 주사해 기존보다 훨씬 다양한 암종을 치료할 길이 열린 것이다.

SJ-600 시리즈를 소개한 오근희 신라젠 상무는 “대조 바이러스는 15%만 살아남았으나 SJ-600 시리즈는 80%가 살아남아 (생존률이) 500% 개선됐다”며 “SJ-600 시리즈가 더 많이 암세포에 도달하고 더 높은 항암효과를 가지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신라젠은 내년부터 SJ-600 시리즈를 임상 단계에 진입시키기 위해 독성시험, 규제서류 준비, 생산공정 확립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스위스 제약사 바실리아로부터 도입한 항암제 ‘BAL0891’도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BAL0891은 암세포가 불완전한 방식으로 분열해 사멸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한다. 삼중음성유방암, 자궁내막암, 대장암, 요로상피암, 위암, 신장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외에도 더 많은 암종에 적용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정 신라젠 이사는 “100개가 넘는 암세포주를 대상으로 BAL0891을 시험해본 결과 대부분의 세포주에서 좋은 반응(세포사멸)을 볼 수 있었다”며 “단독제제로서 뛰어난 항암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BAL0891과 다른 항암제의 병용 가능성도 긍정적이다. 신라젠에 따르면 BAL0891은 유사한 기전인 '파클리탁셀'과 병용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항암효과가 극대화됐고 기전이 다른 '카보플라틴'과 병용했을 때도 암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나타났다.

BAL0891은 12월 안에 미국에서 고형암 대상 임상1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정됐다. 애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을 승인받은 단계에서 도입됐기 때문이다. 신라젠은 여기에 더해 내년 초 신청을 목표로 BAL0891의 국내 임상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신라젠의 대표적 후보물질 펙사벡 개발도 지속해서 진행하는 중이다. 

앞서 신라젠은 펙사벡의 간암 치료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임상3상을 진행하다 2019년 데이터 오염 등의 문제로 임상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이후 개발을 재개해 글로벌 제약사 리제네론과 공동으로 신장암 대상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임상2상이 종료돼 데이터가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라젠은 항암 바이러스 펙사벡과 SJ-600 시리즈, 항암제 BAL0891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술수출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주주의 유상증자 등 외부 자금에 기대지 않아도 생존 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신현필 신라젠 부사장은 "SJ-600 시리즈를 비롯한 모든 물질이 잠재적인 기술수출 대상이며 2023년부터 기술수출에 노력하겠다"며 "SJ-600 관련 논문 게재, 펙사벡 임상 결과 도출 등 구체적 자료를 공개할 수 있는 시점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개발 전략 발표는 신라젠이 상장폐지 위기를 극복한 것을 넘어 바이오기업으로서 생존하기에 충분한 연구개발 능력을 재구축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신라젠은 앞서 문은상 전 대표 등 전·현직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2020년 5월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가 발생해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이후 개선기간을 거쳐 약 2년6개월 만인 올해 10월 상장 유지가 결정됐다. 

당시 거래소는 신라젠에 펙사벡 이외의 후보물질을 새로 확보하도록 주문한 바 있다. 신라젠의 정상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풍부한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라젠은 SJ-600 시리즈, BAL0891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펙사벡만을 바라보던 시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막 내디딘 셈이다.

김재경 신라젠 대표는 “아무리 유망한 물질이라도 개발 중단 및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앞으로 펙사벡뿐 아니라 다양한 후보물질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확대하는 기업으로 변모하겠다”고 말했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