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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시대' 삼성전자 조직문화 혁신에 성공하려면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6-06-28 1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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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시대' 삼성전자 조직문화 혁신에 성공하려면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야자타임’이란 게 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상대방의 나이나 서열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반발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어찌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지만 대학생들의 MT나 술자리 같은 곳에서 여전히 즐겨하는 단골메뉴다.

나이나 경력이 많은 선배나 상사 앞에서 말을 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엔 쭈뼛거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내 게임의 룰을 빙자해 반말을 하다보면 일종의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통쾌한 반전을 경험한다.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좀 더 친밀도가 높아지고 그만큼 격의없는 소통도 가능해진다.

야자타임은 기본적으로 존대법을 크게 따지 않는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게임일 것이다. 나이나 경력, 연공을 따져 상하서열이 정해지는 동양적 전통에서나 ‘게임’으로 즐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저 웃고 즐기자는 게임에 불과하지만 인간관계에서 호칭(혹은 화법)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일깨워주기도 한다. 

삼성전자가 27일 인사제도 혁신방안을 내놨다. 방점은 수평적 조직문화에 찍힌 것으로 보인다. 임직원 사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고 직급 체계도 기존 7단계에서 4단계로 간소화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회의나 보고 등 형식이나 절차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이밖에도 반바지 출근을 허용한다거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조직혁신을 넘어 기업문화 자체를 뿌리채 바꾸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일기획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미 직원들끼리 ‘프로’라는 단일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삼성증권도 'PB'로 호칭을 통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 가운데 카카오 같은 IT기업은 물론이고 CJ그룹도 이미 2000년부터 ‘님’이란 호칭을 도입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조직문화 혁신방안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해외로 눈을 돌려 IBM이나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라는 점에서 얘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직원 수가 30만여 명에 이르는 거대 글로벌 기업이다. 정량적 정성적 측면 모두 국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독보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혁신은 무엇보다 두가지 측면에서 중대하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제조업에 뿌리는 둔 회사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상징하는 ICT융합시대가 도래하면서 현재 구글이나 애플 등 거대 기업들과 글로벌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혁신은 글로벌 IT기업으로서 생존에 대한 깊고 오랜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글로벌 생태계에서 적자생존을 하려면 과거와 같은 몸집만 비대한 ‘공룡’ 조직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개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현하고 소통하며 이를 통해 신속하게 의사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글로벌 IT기업으로서 ‘삼성’에게 필수불가결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맞물린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호칭을 '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첫발을 떼는 것에 불과하다.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이번 혁신방안에 담긴 또 다른 함의는 ‘이재용 시대’ 삼성그룹의 밑그림을 더욱 더 선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2년여 간 이재용 부회장 체제 정비를 위한 일련의 과정을 숨 가쁘게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실용주의’로 대표되는 이재용 시대 삼성그룹의 모습이 곳곳에서 조금씩 감지됐다.

올해는 이건희 회장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신경영 삼성을 선언한지 23년째 되는 해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발표한 혁신방안을 내년 3월부터 시행한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혁신방안이 선언적 수준에 그치지 않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이재용 부회장 시대 삼성그룹은 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뿌리내리게 된다.

하지만 수십년째 이어진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성원들의 노력뿐 아니라 의사결정권자의 철저하고 지속적인 의지와 진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한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야자타임은 지위고하와 상대를 가리지 않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물론 공간과 시간도 제한된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직원들이 '이재용 님'이란 호칭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팀장, 그룹장, 임원은 '님' 호칭 사용에서 예외라니 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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