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기업의 자율규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의원들이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강력한 규제 필요성이 떠올랐다. 자율규제 주장이 공허해지는 순간을 맞을 때마다 한 위원장은 고개를 숙이는 등 머쓱한 태도를 감추지 못했다.
 
[현장] 공정위원장 한기정 국감 데뷔, ‘자율' 주장하다 기업들 행태에 머쓱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 질의를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7일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과 한 위원장 사이 '자율규제' 공방이 펼쳐졌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취임한 지 3주 만에 피감기관장으로 치르는 국감이었다.

첫 번째 질의자로 나선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음식점 사장님들은 배달앱 수수료가 과하다고 주장하는데 배달 앱 기업들은 자율규제와 디지털 규제에 대한 고민을 얘기한다“며 “배달앱 기업들은 ‘갑’이고 음식점은 ‘을’인데 어떻게 자율적, 자발적 상생이 가능하겠나”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자율’에 치우치면 허울일 뿐이다”라며 “공정위가 수수료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수수료 부분을 법으로 직접 규율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며 “배달앱 대표들과 만났을 때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해관계자들끼리 자율기구에서의 대화를 통해 합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도 “공정위가 자율규제를 한다는 게 부당한 공동행위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나”며 “자율규제를 하려면 법과 시행령을 고쳐야 하는데 한 위원장은 어떤 제도적 개선도 없이 자율규제를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제가 강조하는 자율규제는 법 개정과 관련이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 위원장의 자율규제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야당 의원뿐만이 아니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율적 합의가 되겠나”라고 했으며 윤주경 의원도 “공정위가 ‘공정’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다면 피해자 구제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인식이 있어야한다”고 질타했다.

그럼에도 한 위원장은 윤영덕 민주당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 “자율규제를 진행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법 기술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명확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있다”며 “자율 부분이 적용하지 않으면 법제화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자율규제가 우선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오후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감사가 진행되자 한 위원장은 더 이상 자율을 강조하지 못했다. 정무위 일반감사에는 남궁훈 카카오 대표, 함윤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 안철현 애플코리아 부사장, 도세호 비알코리아 대표 등이 출석했다.

여야 의원들은 온라인플랫폼 기업들의 부당한 행태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소병철 의원은 함윤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을 상대로 “사장님들은 배민수수료와 배달 대행료를 합치면 40%가 넘으니 힘이 빠진다고 하고 일반 국민들도 배달비가 과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며 “배달료를 6천 원으로 설정한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함 부사장은 “‘배민1’ 서비스는 모범택시에 해당한다”며 “1번에 1건의 배달만 실시하는 서비스 형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소 의원은 배달의민족이 수수료와 배달료 등을 결정할 때 배달종사자나 자영업자와 협의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도 지적했다.

소 의원은 “국민들 여론의 60%이상이 배달 수수료 등 규제 법안이 필요하다는 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결국 함 부사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몸을 낮췄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애플코리아가 구글플레이보다도 앱 구매시 수수료를 더 받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윤 의원은 “애플을 통해 만 원 짜리 앱을 구매하면 구글플레이보다 300원 비싼 1만3300원을 받는다”며 “이 300원으로 누적된 매출이 무려 3369억 원인데 ‘갑질’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안철현 애플코리아 부사장이 글로벌 기준에 맞춰 한국에도 수수료정책을 펼쳤다고 하자 백혜련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나섰다.

백 위원장이 “애플 수수료 문제는 법적으로 문제가 명확해 보여 공정위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하자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살펴보겠다”며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현장] 공정위원장 한기정 국감 데뷔, ‘자율' 주장하다 기업들 행태에 머쓱

▲ 홍은택 카카오 대표가 7일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승재 의원은 카카오가 소상공인과 상생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최 의원은 "카카오가 공정위로부터 받은 동의의결 조치 이행을 위해 지출한 자금의 내용을 보면 과연 상생이나 소비자 후생을 위한건지 사세확장을 위한건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가 "상생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지만 미흡한 점이 있다면 더 노력하겠다"고 답하자 최 의원은 "얼렁뚱땅 넘어가면 되나"며 질타했다. 

온라인플랫폼 기업뿐 아니라 비알코리아의 가맹점 사업에 관한 문제도 제기됐다. 비알코리아는 SPC그룹 계열사로 배스킨라빈스 가맹사업을 하고 있다.

윤영덕 의원은 “본사 관리 잘못으로 식약처 실태조사에서 과태료를 부과받은 게 언론보도되자 가맹점 수익이 급감했다”며 “이는 ‘오너리스크’로 법률상 가맹점이 본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세호 비알코리아 대표는 “위로금 명목으로 회사 예산을 지출했다”고 했지만 윤 의원은 “위로금과 손해배상은 성격이 다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본사의 오너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가맹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결국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보고 드리겠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을 향한 질타가 있은 뒤 자영업자 대표로 나온 이종민 자영업 연대대표의 발언이 이어지자 여야 의원들 모두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 대표는 “플랫폼이나 가맹 본사에 있어 점주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현재 행태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는 수준이다”라며 “프랜차이즈 본사는 월 2회 휴무를 강제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이를 양육하고 가정을 돌볼 수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규제의 사각지대가 많아 건물주보다 힘이 센 것이 플랫폼 업체”라며 “하루 12시간 일하는 사장들의 수익률이 10%가 넘지 않는데 중개 플랫폼이 10%가 넘는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배민1은 모범택시라는데 모범택시는 수익을 기사가 가져간다”며 “배민1 수익은 배민이 가져가고 있지 않나”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더 이상 한 위원장의 ‘자율규제’ 목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