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자국 기업에만 혜택을 몰아주고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생산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 완화법 시행 과정에서 사실상 자국 기업에 혜택을 몰아주는 차별적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앞둔 상황에도 해당 법안에 수혜를 보기 어려워지자 미국과 한국 사이 반도체 분야 협력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른 시일에 미국 정부 측을 만나 공식적으로 인플레이션 완화법과 관련한 우려를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시행된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따르면 전기차 지원 정책에서 현대차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사실상 제외되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은 이미 미국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당분간 보조금 등 혜택을 독점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주로 테슬라와 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기업들이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해당 법안에 따른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미국에 대규모 전기차 생산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자칫하면 공장 투자로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 공장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데다 미국 자동차기업들이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점유율을 늘리면서 현대차의 시장 진입 기회는 오히려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인플레이션 완화법 지원 대상으로 거론됐던 한국 전기차 배터리업체들도 다소 유사한 처지에 놓였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제공할 때 배터리 및 소재, 원재료의 원산지 등을 엄격하게 따져 지원 대상을 결정하기로 하면서 한국 배터리3사가 이런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에 직접적으로 인플레이션 완화법 시행에 따른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던 만큼 미국 정부가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정책을 시행해도 한국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자연히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고 바이든 정부 측도 한국 기업의 투자를 어느 정도 유도한 측면이 있는 만큼 미국 측에 도의적 책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미국 정부 측에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과 관련해 한국 기업을 향한 지원 방안을 좀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는 “전문가들은 현대차와 같은 한국 기업이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걸림돌을 만났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이 미국 정부에 법안 시행을 늦춰달라고 요구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미국 정부가 한국 측의 요청을 충분히 고려하고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자국 기업에 인플레이션 완화법 시행에 따른 혜택을 몰아준다면 한국과 미국 사이의 경제 협력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한국이 미국에서 주도하는 반도체 국가 연합 ‘칩4 동맹’ 가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시점에서 전기차 지원 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태도가 향후 외교 및 경제 협력관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이 칩4 동맹에 참여해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춰 행동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불투명하다면 미국의 뜻을 따라야 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처한 상황을 언급하며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법은 오히려 한국산 전기차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전기차 지원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정부의 갈등이 결국 미국에서 일본과 대만, 한국을 끌어들이는 칩4 동맹 결성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 8월 말까지 칩4 동맹 가입 여부를 확정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에서 전기차 지원과 관련한 확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에 우호적 태도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칩4 동맹 가입 등 여러 글로벌 현안과 관련해 한국의 이해관계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 반도체기업들도 곧 전기차기업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말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시행된 반도체 지원법이 삼성전자와 같이 미국에 대규모 생산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 아닌 미국 반도체기업에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글로벌타임스가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기사의 목적은 미국과 한국 정부 사이 관계를 ‘이간질’하는 데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배터리와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하는 일은 결국 한국의 이해관계와 배치될 수밖에 없다”며 “반면 중국과 한국은 협력을 확대해 나갈 기회가 크게 열려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