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대규모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건설인력 부족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텔의 미국 반도체공장 건설현장 참고용 사진.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리쇼어링’ 정책을 앞세워 현지에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 생산공장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이런 계획에 다소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공장 투자가 집중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건설인력 수요가 급증하며 노동자 부족 사태가 본격화되는 만큼 미국에 잇따라 시설 투자를 앞둔 한국 반도체와 배터리업체도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23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인텔의 대규모 반도체공장 건설을 앞두고 인력 부족 문제가 큰 걸림돌로 자리잡고 있다.
인텔은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던 반도체 지원법 시행이 확정되자 올해 초부터 계획을 세우고 있던 200억 달러(약 27조 원) 규모 오하이오주 반도체공장 증설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장 규모를 고려하면 건설에 필요한 인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AP통신은 약 7천 명에 이르는 건설 인력이 투입되어야 인텔의 투자 계획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러나 건설현장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에 한계가 있고 미국 고용시장도 최근 호황기를 맞고 있어 단기간에 대규모 인력 채용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분석된다.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7월 농업 부문을 제외한 전체 실업률은 3.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인텔 관계자는 AP통신을 통해 “오하이오주를 공장 부지로 선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충분한 노동 인구 기반에 있다”며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충분한 취업 수요가 존재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AP통신은 최근 미국에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보도했다.
이미 해당 지역에서 구글과 아마존 등 대형 IT기업의 데이터서버 투자가 예정되어 있고 해당 프로젝트에 필요한 건설 인력이 모두 6천 명에 이른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미국 노동인구 부족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산업 분야와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인 만큼 비슷한 상황이 오하이오주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에서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완화법을 잇따라 시행하며 미국 내 생산투자 활성화를 주도하는 리쇼어링 정책에 강력하게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지원 법안은 미국에 생산공장을 짓는 반도체기업에,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은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마이크론 등 대형 반도체기업이 이런 정책에 화답해 미국에 일제히 대형 반도체 생산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SK그룹도 최근 미국에 공격적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GM과 포드, 테슬라,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주요 자동차기업은 물론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3사도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다수의 신규 생산공장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
해당 기업들이 시설 투자에 들이는 금액은 최소 수조 원대, 많으면 수십조 원대에 이른다. 공장 건설에 필요한 인력도 각각 수천 명 단위에 이른다.
이들 기업의 투자 계획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건설 인력 수요가 단기간에 크게 급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텍사스주, 테네시주, 켄터키주, 미시건주 등 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선 일부 지역에 다수의 프로젝트가 집중되고 있어 건설인력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을 포함한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기업이 인텔과 같이 공장 투자에 필요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투자 계획에 차질이 빚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셈이다.
AP통신은 “현재 가용 가능한 건설인력 수와 앞으로 노동자 수요 증가 전망을 반영한다면 인력 부족 사태가 유력하다”며 “여러 건설 프로젝트가 인력 부족 리스크에 놓일 수 있다”고 바라봤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앞으로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산업 분야 인력이 부족해질 가능성에 대비해 기술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이민법 개정을 논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공장이 운영되기도 전에 이미 건설인력 부족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예상보다 일찍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장기간 미국으로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이 이어지면서 미국 노동인구 부족 원인으로 작용한 만큼 이런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는 지역에 인구가 몰려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사례도 늘어나면서 노동인구 유입에 장벽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언론 오스틴비즈니스저널에 따르면 테슬라와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잇따라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공장 부지 주변의 주택 중위값은 2021년 3분기 기준 40만5천 달러(약 5억4500만 원)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약 49% 상승한 수치다.
오스틴비즈니스저널은 “대형 프로젝트가 예정된 지역의 집값이 뛰는 현상은 텍사스주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노동자와 일반 시민의 주거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