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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진웅섭 금융감독원 원장

검정고시 출신, 성실하고 겸손해 [2016년]
이규연 장윤경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6-06-10 10: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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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진웅섭 금융감독원 원장
▲ 진웅섭 금융감독원 원장.


진웅섭은 1959년 6월1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건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생활을 시작했으며 재무부 장관비서관이 된 뒤 재무부의 여러 보직을 거쳤다.

금융감독위원회 혁신행정과장,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을 지낸 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장에 임명됐다.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을 거쳐 현재 금융감독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성실하고 끈기있는 성품으로 알려졌다. 함께 일했던 행정관료에게 겸손하고 차분하며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7월 새누리당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 및 국회 사무처 직원들과 친분을 쌓았다.

한직을 자주 돌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맡았다.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7월에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했으며 2015년 산업은행과 통합해 없어지는 정책금융공사 사장도 맡았다.

진웅섭은 신임 금융감독원장 후보로 선임된 직후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에게 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수현 전 원장과 비서실 선후배 사이로 정책금융공사 사장으로 일할 때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통화할 만큼 친근한 사이로 알려졌다.

진웅섭은 꼼꼼하면서도 신중한 성격, 튀지 않는 언행, 조용한 일처리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분석된다. 금융정보분석원장에 재직할 당시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직이 필요하면 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아랫사람들이 모시고 일하고 싶은 상사라는 얘기도 들었다. 금융위원회 축구동호회 회장도 맡은 적이 있다.

진웅섭은 ‘모피아’(재무부 영문약자인 모프와 마피아 합성어) 내 비주류로 분류됐다. 서울대와 경기고 출신이 많은 가운데 경기부처에서 그의 ‘상고’ 간판은 주목을 끌었다.

2014년 11월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된 뒤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취임식 이후 금융감독원 공보실에 “절대 나를 언론에 띄우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하면서 금융시장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회복이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시장과 소통하는 ‘상호신뢰의 기조’에 따른 금융감독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1년 동안 금융관행 개혁 세부 이행과제를 72% 완료했고 2016년 안에 남은 과제를 이행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이슈인 가운데 시중은행들에게 부실자산을 미리미리 털어내고 경기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달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대기업 계열사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주채무계열 재무평가도 빠르고 정확하게 끝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외에 비대면 실명확인, 모바일뱅킹 확대 같은 금융플랫폼 변화를 반영해 오프라인 중심의 기존 감독법규와 기준을 적극 개선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금융감독의 틀을 ‘불신의 기조’에서 ‘상호신뢰의 기조’로 전환을 선언한 대목이 눈에 띈다. 금융회사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고, 이를 촉진하는 것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며 시장과 소통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금융개혁의 성과를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금융사기 피해가 감소하고 대통령상을 받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의 행시 기수 4년 후배이며 나이도 한 살 어리다. 신 전 위원장이 재임하는 동안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최수현 전 원장 때보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정책공조를 수월하게 진행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제윤 위원장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받기도 했다.

진웅섭은 또 2015년 2월 '중수부'라는 평가를 받았던 기획검사국을 '금융혁신국'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새롭게 구성했다. 그러나 금융혁신국이 다른 실무국들과 사이에 협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취임 초 강조했던 소통경영이 무색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4년 12월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88년 5월 재무부 장관비서관으로 임명돼 이규성 당시 재무부 장관의 수행비서 사무관을 맡았다. 이후 재무부 국제관세과, 중소금융과, 산업금융과, 회계제도과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1995년 7월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경제협력과에서 일하다가 같은 곳의 국제협력담당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1998년 2월 재정경제부 장관비서관이 되면서 다시 이규성 장관을 수행했다. 이후 세계관세기구를 거쳐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보분석원(FIU) 기획협력팀장과 공보과장을 맡았다.

2004년 7월 금융감독위원회 기획과장이 된 뒤 같은 곳에서 혁신행정과장을 맡았다. 2005년 11월 대통령 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이 되었으며 2008년 2월 동일한 부서에서 선임행정관으로 일했다. 같은 시기에 중앙공무원교육원 고위정책과정을 밟아 2009년 2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금융선진화 팀장이 됐다.

2009년 8월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이 됐다. 2009년 12월 금융위원회 대변인을 맡았으며 2011년 6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자본시장국장을 역임했다. 2012년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갔다가 그해 금융위원회로 돌아와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을 맡았다.

2014년 2월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뒤 11월까지 일했다.

2014년 11월 제10대 금융감독원 원장에 임명됐다.

◆ 학력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한 뒤 1976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83년 건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과 사이에서 1남1녀를 뒀다.

◆ 상훈

◆ 상훈

어록


“불완전 판매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금융권의 과도한 인센티브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납품대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매출채권보험을 활성화하고 전자어음의 원활한 유통방안을 마련하겠다.” “공적 금융지원제도를 통해 저금리 대출로의 전환을 적극 유도하겠다.” (2016/06, 금융개혁 토론회에서)

“앞으로 경기가 악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체력 비축을 해달라.”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5대 경기민감업종에 속하는 기업의 위험 요인을 잘 살펴달라.” (2016/05/13, 시중은행장과 조찬 간담회를 열면서)

"금융에 대한 기본지식은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기본 소양." "대학생들이 실제 생활에 필요한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다 보니 금융사기 피해를 보는 등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발생하는 상황." "'실용금융'이란 금융상품의 이해, 부채와 신용관리, 금융소비자보호제도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금융지식"이라며 "강좌 개설에 대한 대학교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를 요청한다." (2016/04/29, 전국 339개 대학교 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금감원이 추진하고 잇는 실용금융 강좌 개설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최근 글로벌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대내적으로도 가계부채 증가와 수출 위축으로 한국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전규제에서 사후감독으로 금융감독 기조를 변화하고 금융사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겠다.” “일시적인 금융 사고나 부실로 그간 추진해왔던 금융개혁이 무산되지 않도록 빈틈없이 하겠다.” (2016/04/20, ‘2016년도 금융감독자문회의 전체회의’에 참석해)

“공직자, 특히 기관장은 입을 떼는 자리보다 듣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유관부처와 정책방향을 조율하고 피감기관의 민감한 이슈를 다뤄야 하는 금융감독원장은 더욱 그렇다.” (2014/11/21, 신임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된 뒤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연이은 금융사고로 훼손된 금융산업과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금융감독의 틀을 불신에서 상호신뢰의 기조로 전환하겠다. 앞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근본적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겠다” (2014/11/19, 제10대 금융감독원장 취임식에서)

“정책금융공사는 공공기관이라는 측면에 따라 정부정책과 방향을 같이 해야 한다. (산업은행과의) 통합과제는 정책금융 약화가 아니라 오히려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다. 우리 스스로 정책금융의 바람직한 모습과 역할에 대해 능동적으로 함께 고민하고 선제적으로 좋은 방안을 도출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2013/02/28, 정책금융공사 사장 취임식에서 산업은행과의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며)

"코넥스를 통해 중간회수시장이 원활해지면 창업 초기 자금시장 및 코스닥시장까지 활성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우리 자본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 (2012/04, 금융위원회는 5일 코넥스의 상장요건을 코스닥시장의 3분의1 수준으로 대폭 완화하기로 하면서)

◆ 평가

성실하고 끈기있는 성품으로 알려졌다. 함께 일했던 행정관료에게 겸손하고 차분하며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7월 새누리당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 및 국회 사무처 직원들과 친분을 쌓았다.

한직을 자주 돌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맡았다.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7월에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했으며 2015년 산업은행과 통합해 없어지는 정책금융공사 사장도 맡았다.

진웅섭은 신임 금융감독원장 후보로 선임된 직후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에게 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수현 전 원장과 비서실 선후배 사이로 정책금융공사 사장으로 일할 때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통화할 만큼 친근한 사이로 알려졌다.

진웅섭은 꼼꼼하면서도 신중한 성격, 튀지 않는 언행, 조용한 일처리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분석된다. 금융정보분석원장에 재직할 당시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직이 필요하면 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아랫사람들이 모시고 일하고 싶은 상사라는 얘기도 들었다. 금융위원회 축구동호회 회장도 맡은 적이 있다.

진웅섭은 ‘모피아’(재무부 영문약자인 모프와 마피아 합성어) 내 비주류로 분류됐다. 서울대와 경기고 출신이 많은 가운데 경기부처에서 그의 ‘상고’ 간판은 주목을 끌었다.

2014년 11월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된 뒤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취임식 이후 금융감독원 공보실에 “절대 나를 언론에 띄우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하면서 금융시장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회복이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시장과 소통하는 ‘상호신뢰의 기조’에 따른 금융감독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1년 동안 금융관행 개혁 세부 이행과제를 72% 완료했고 2016년 안에 남은 과제를 이행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이슈인 가운데 시중은행들에게 부실자산을 미리미리 털어내고 경기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달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대기업 계열사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주채무계열 재무평가도 빠르고 정확하게 끝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외에 비대면 실명확인, 모바일뱅킹 확대 같은 금융플랫폼 변화를 반영해 오프라인 중심의 기존 감독법규와 기준을 적극 개선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금융감독의 틀을 ‘불신의 기조’에서 ‘상호신뢰의 기조’로 전환을 선언한 대목이 눈에 띈다. 금융회사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고, 이를 촉진하는 것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며 시장과 소통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금융개혁의 성과를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금융사기 피해가 감소하고 대통령상을 받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의 행시 기수 4년 후배이며 나이도 한 살 어리다. 신 전 위원장이 재임하는 동안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최수현 전 원장 때보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정책공조를 수월하게 진행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제윤 위원장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받기도 했다.

진웅섭은 또 2015년 2월 '중수부'라는 평가를 받았던 기획검사국을 '금융혁신국'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새롭게 구성했다. 그러나 금융혁신국이 다른 실무국들과 사이에 협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취임 초 강조했던 소통경영이 무색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 기타

고졸 검정고시를 치른 뒤 7급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87년 행정고시 28회에 합격했다. 병역 문제 때문에 실질적 동기는 행정고시 30회 합격자들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과 고형권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등과 수습사무관 연수를 함께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초등학교 학생 시절 울산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어린이 성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가족적인 사람으로 알려졌다. 딸과 아들이 사춘기를 맞이했을 때 A4용지 10여 장 분량의 편지를 직접 써서 전달하기도 했다.

금융정보분석원 로고를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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