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효 기자 kjihyo@businesspost.co.kr2022-07-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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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투어는 최근 동물학대가 수반되는 여행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비즈니스포스트] 하나투어가 ‘모험 여행’을 떠납니다. ‘모험’이란 동물학대가 수반되는 여행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투어는 최근 태국과 라오스 등 동남아 여행에서 코끼리트레킹, 말마차, 악어쇼 등이 포함된 여행상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나투어의 이런 결정이 왜 ‘모험’이라는 걸까요?
얼핏 생각하기에는 그리 어려운 일 같지 않습니다. 동물학대가 수반되는 프로그램만 빼고 여행상품을 팔면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하나투어의 이번 결정은 고심 끝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내 여행업계는 하나투어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현실적으로는 동참하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많은 여행사들은 동물쇼 관람이 포함된 여행이 대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은 여행지의 경우 이를 없애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호소합니다.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해외에 나가면 그 지역의 핵심 여행지나 여행상품을 두루 둘러보기를 바라는 고객들이 많아 해당 코스를 빼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여행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막상 현지에서 다른 관광객들이 체험을 하고 있는 걸 본 여행객이 요청하면 어떡할 거냐"며 "여행객들이 원하는 데 못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여행업계가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여행사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상품을 내놓고 있고 관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현지 업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해당 여행 프로그램의 폐지는 쉽지 않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하지만 동물권을 향한 사회적 관심은 세계적 흐름입니다.
▲ 하나투어가 내놓은 '태국 치앙마이 코끼와의 하루' 여행상품 일정 가운데 코끼리와 물놀이 체험 예시 사진. <하나투어>
이미 세계 여행업계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부터 동물과 관련한 여행 방식을 간접체험이나 관찰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투어가 이번에 내놓은 '치앙마이 5일 #코끼리와의 하루' 상품은 동물과 함께 노는 프로그램이 담겨있습니다.
프로그램을 보면 '코끼리가 직접 깨워주는 모닝콜 서비스', '코끼리와 친구가 되어 함께 떠나보는 정글탐험과 물놀이', '푸푸 페이퍼파크에서 코끼리 응가로 종이만들기 체험' 등이 있습니다.
기존에 코끼리 등에 올라타 트래킹을 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아이슬란드에는 '침묵의 고래 관찰'이라는 여행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고래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기존의 관광보트가 아닌 조용한 전기보트를 이용해 고래 서식지와 가능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고래등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하나투어가 이번에 동물학대 우려 여행상품을 폐지하게 된 것은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는 것일 뿐 아니라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태국과 라오스 등에서 동물학대 우려가 있는 프로그램을 접한 고객들은 '동물을 혹사시키는 것 같아 여행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동물을 보호하고 자연을 보존하는 여행을 원한다' 등 의견을 개진했다고 합니다.
소비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하나투어의 이번 결단을 응원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 여행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나투어의 동물학대 우려 여행상품 폐지를 두고 "패키지 여행을 다니며 동물 관련 쇼를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여행업계에도 작은 바람이 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나투어에게 한걸음 더 나갈 것을 요구하는 글도 있습니다.
이 커뮤니티의 다른 이용자는 "기업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이전에는 생각되지 않았던 이슈들이 고려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피상적인 것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연히 동물보호단체들은 하나투어의 이번 결단을 반기고 있습니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최근 여행수요가 다시 늘고 있는 시기에 하나투어에서 적절한 선언을 해준 것 같다"며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일까, 애기 코끼리를 데려다가 지속적인 학대를 통해 트래킹에 이용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모든 여행사들이 함께 동물 착취와 관련한 여행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면 특정 여행사가 받게 되는 불이익도 없을 것이다"며 "동물학대 요소가 있는 여행상품을 거부하는 것이 당연시 돼 동물 생명이나 환경에 대한 위해를 줄이고 공존할 수 있는 여행이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희지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는 "해외의 여행 플랫폼에서는 이미 2019년부터 동물학대 우려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우리는 다소 늦었지만 국내에서도 이같은 변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하나투어의 이같은 노력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하나투어가 내놓은 '태국 치앙마이 코끼와의 하루' 여행상품 일정 가운데 코끼리 먹이주기 체험 예시 사진. <하나투어>
동물의 등에 올라타지 않는다고 해도 먹이를 주고, 같이 물놀이를 하는 것도 사실상 동물들에게는 스트레스를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주는 먹이를 먹고 물놀이를 하기 위해서도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한 학대가 자행되기도 합니다.
장희지 활동가는 "아예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야생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야생 그대로, 예를 들어 돌고래가 보고 싶다면 수족관이 아닌 제주도 앞 바다에 가서 보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여행업계가 당장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전면 폐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투어가 선구자적인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실적'이라는 성적표를 통해 정당성을 입증하면 다른 여행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투어가 내놓은 '코끼리와 함께 여행' 프로그램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아닙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아직까지 여행 예약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들의 반응을 수치로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여행 커뮤니티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점차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줄여나가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국내 여행업계 1위인 하나투어가 먼저 변화의 신호탄을 쏜 만큼 다른 여행사들의 인식 변화에 분명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확실한 것은 ‘사는 사람이 없다면 파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막 동물권에 눈을 뜬 하나투어를 소비자들이 더 선택할지 앞으로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