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부산시가 롯데백화점 광복점 임시사용 승인을 무기로 부산 롯데타워 건설에 진정성을 보이라고 강하게 압박하자 결국 신동빈 회장이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하지만 신 회장의 고민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새 성장동력 육성에 막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부산 롯데타워 건설에 필요할 조 단위 자금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부산 롯데타워가 지어질 곳이 부산에서도 낙후된 구도심이라는 점에서 향후 사업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2일 롯데그룹이 부산 롯데타워 건립사업의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20년 넘게 진전이 없었던 부산 롯데타워 건설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그룹은 부산 롯데타워의 준공 기한을 2025년으로 정했다. 애초 계획인 2026년보다 1년 앞당긴 것으로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여겨진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계열사 가운데 롯데쇼핑이 부산 롯데타워 개발의 선봉에 선다. 앞서 롯데그룹의 첫 번째 초고층빌딩인 서울 잠심 롯데월드타워를 개발할 때는 롯데물산과 롯데쇼핑, 호텔롯데 등이 공동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본격 추진에 앞서 추가로 확정해야 할 사안도 많다.
롯데지주와 롯데쇼핑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 롯데타워 건설에 자금을 얼마나 투자할지, 어떤 계열사가 얼마큼의 지분을 가지고 사업에 참여할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과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롯데백화점) 대표가 직접 부산을 찾아 사업의 진정성을 설득하며 롯데백화점 광복점 폐점 사태를 가까스로 막았지만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부산 롯데타워 건설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아직 공유된 투자계획은 없다”며 “향후 사업의 구체화가 더 진전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롯데그룹 측 수뇌부가 직접 부산을 찾아 롯데타워 건설을 꼭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사업 추진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광객 유치와 새 상권 조성, 지역 일자리 창출 등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속사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우선 투자금액이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롯데그룹은 2019년 부산 롯데타워의 건설계획을 대폭 수정하면서 ‘초고층 빌딩’이라는 상징성을 포기하는 대신 사업비 4500억 원 규모의 전망타워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인력난 탓에 인건비가 상승했다는 점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철근과 시멘트 등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이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타워를 만들 때만 해도 4조 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산 롯데타워에도 최소 조 단위의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최소 조 단위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부산 롯데타워 메인 사업자로 나설 롯데쇼핑의 재무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롯데쇼핑은 올해 1분기 말 별도기준으로 현금과 현금성 자산으로 1조6851억 원을 들고 있다. 이 현금만 고려하면 부산 롯데타워에 투자할 만한 여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백화점사업부를 제외한 할인점사업부, 슈퍼사업부, 이커머스사업부 등이 현재 제대로 된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대규모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롯데쇼핑의 현금창출력은 많이 저하된 상황이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으로 2355억 원을 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만 해도 1조1천억 원이 넘는 현금을 벌어들였는데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 부산 롯데타워 조감도. <롯데쇼핑>
애초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해 이 가운데 일부를 부산 롯데타워 건설에 투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현재 호텔롯데 상장 작업은 중단된 상태며 향후 언제 재개될지 시점을 가늠하기도 힘들다.
롯데그룹이 2019년 부산 롯데타워를 초고층 빌딩이 아닌 전망타워로 변경한 배경에도 이러한 자금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부산 롯데타워를 건설한다고 해도 투자금액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느냐의 문제도 신 회장의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 롯데타워가 들어설 곳은 부산 중구 중앙동이다. 과거 부산시청이 자리하고 있던 구도심 지역으로 자갈치시장과 영도 등이 인근에 있다.
이곳은 한때 부산을 대표하는 상권이었다. 그러나 부산 해운대구의 성장에 따라 대부분의 회사나 주요 상업시설이 이전하면서 현재는 기능을 많이 상실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인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 등이 있는 해운대가 중심 상권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물론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선 뒤 유동인구가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부산 내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을 만한 상권으로 회복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매출이 지난해 약 3800억 원으로 전국 70여 개 백화점 가운데 28위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근거로도 볼 수 있다.
롯데그룹이 그동안 부산 롯데타워 건설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사업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산 롯데타워 건설은 롯데그룹과 부산시 양측의 오래된 숙원사업이다.
롯데그룹은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와 함께 부산 롯데타워를 ‘롯데그룹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오래 전부터 노력해왔다.
롯데그룹은 부산 롯데타워를 만들기 위해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를 앞세워 건축사업 허가 신청을 냈고 1997년 12월에는 교통평가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IMF사태로 자금줄이 막히면서 롯데그룹의 부산 롯데타워 건설은 장기간 표류했다. 2000년 107층짜리 건물로 건축허가를 받기도 했지만 사업성 확보 방안에 계속 제동이 걸리면서 준공 기한을 수 차례 연장해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