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


현명관은 1941년 9월2일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부산시 감사원에서 7년여 동안 근무했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전주제지에 입사하며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호텔신라와 삼성시계, 삼성건설의 최고경영자를 지냈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에도 삼성그룹의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제주지사 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13년 12월 한국마사회 회장에 올라 재직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현명관은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이라는 제목처럼 공무원과 대기업 회장, 재계, 정계 등 주요직을 거쳐 공기업 회장이 되는 등 변화에 도전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현명관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체제 당시 신임을 크게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조직 개편을 위해 그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현명관은 당시 비서실장 요청을 받고 “공채 출신이 아니 만큼 삼성그룹 내 기반이 없어 어려울 것”이라며 거절했지만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쳐 결국 승낙했다고 한다.

현명관은 당시 이학수씨와 배종렬씨 등을 차장으로 임명하고 김인주, 류석렬씨 등을 팀장으로 뽑았다. 이들은 이후 9인회로 불리며 삼성가 오너의 남자이자 주력 경영인으로 올라섰다.

현명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이른바 ‘7인회’ 멤버로 주목받은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정계와 친분이 두터운 현명관이 마사회에 소속돼 있어 수사에 들어갈 때마다 정치적인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검찰은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 당시 승마업계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함구했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안전사회를 위협한 인물 11인’ 가운데 한 명으로 현명관 회장을 선정했다. 이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현명관은 2013년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나는 명예도 돈도 충분히 있는 사람이다”라며 “내가 이 나이에 여기 온 것은 마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서다”고 말했다.

현명관은 모든 조직을 다 만족시키는 경영자는 무능한 경영자라며 욕을 먹고 질책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현명관은 마사회에 기업경영 전략을 접목시켜 공기업 체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현명관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마사회에 성과연봉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성과연봉제도입을 위한 전담 TF 조직을 꾸리고 전국 사업장 특성에 맞는 방안을 마련했다.

전국 직원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성과연봉제 제도의 필요성을 호소해 노사 공감대 형성에 노력했다는 말이 나온다.

현명관 취임 이후 한국마사회는 2년 연속 청렴도 측정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마사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전국 617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측정에서 ‘최우수 등급’과 ‘우수등급’을 받아 청렴 공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사회는 산업정책연구원이 실시하는 지속가능경영 실태조사에서 4년 연속 최우수(AAA)등급을 받았다.

마사회는 국제경마연맹과 국제경주마경매회사협회로부터 파트(PARTⅡ) 승격이 확정됐다. 한국마사회는 그동안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네덜란드 등과 함께 PARTⅢ 국가로 분류돼 있었으나 이번에 한 단계 올랐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64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65년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68년 감사원 부감사관으로 일했다.

1978년 전주제지에 총무부장으로 입사해 1980년 관리부장을 지냈다.

1981년 호텔신라 이사로 선임됐고 1984년 상무, 1986년 전무로 승진했다.

1989년 호텔신라 대표이사를 맡았다.

1991년 삼성시계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1993년 삼성종합건설 대표이사 사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물산 총괄대표이사 부회장으로 근무했다.

2000년 삼성의료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2001년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해 2006년까지 일했다.

2002년 삼성그룹 일본담당 회장 겸 삼성라이온주 구단주를 지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물산 상임고문으로 근무했다.

1999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2000년 대한상공회의 부회장, 2001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포럼 공동의장을 맡았다.

2003년 주한크로아티아 명예영사,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장 겸 부회장, 국제산업협력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2004년 예술의전당 이사,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을 지냈다.

2006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2010년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7년엔 한나라당 제주도당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13년 12월 제 34대 한국마사회 회장에 올라 재직하고 있다.

◆ 학력

1953년 제주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56년 제주제일중학교를 졸업했다.

1959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제주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오영자씨와 사이에 장남 현상훈씨, 차남 현재훈씨를 두었다.

◆ 상훈

1991년 대통령표창 동탄산업훈장을 받았다.

1997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

1998년 제35회 무역의날 ‘수출의탑’을 수상했다.

1999년 한국전자상거래대상 우수상(종합쇼핑몰 부문)을 받았다.

2002년 제주상공대상 특별대상을 받았다.

◆ 상훈

1991년 대통령표창 동탄산업훈장을 받았다.

1997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

1998년 제35회 무역의날 ‘수출의탑’을 수상했다.

1999년 한국전자상거래대상 우수상(종합쇼핑몰 부문)을 받았다.

2002년 제주상공대상 특별대상을 받았다.

어록


“국제경마연맹(IFHA)과 국제경주마경매회사협회(SITA)가 이달 초 한국 경마를 ‘파트2’로 공식 승격시켰습니다. 국가로 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과 비슷한 거죠. 한국 경마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경주마와 경주 수출이 탄력을 받아 말산업 규모가 5년 뒤에는 5조원을 넘어설 겁니다.” (2016/04/2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마사회는 고객 만족 없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 대국민 이미지 혁신에 주력했다.”(2016/03/17 2016 동아 공공기관 혁신 콘퍼런스에서)

“고객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공기업’, ‘자랑스러운 국민 공기업’이 되겠다.” (2016/03/10, 2015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PCSI) 공기업 부문 1위 당선 소감)

“사기업은 최고경영자가 모든 권한을 갖되 실적에 따라 책임을 지는 방식인데 공기업은 규정도 많고 정부 지침도 많다. 기업 혁신을 하려고 하면 규정에 걸리는 것이 참 많다” “직원들이 규정만 지키려고 하고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한다. 자꾸 그렇게 움츠려들면 결국 도전과 변화가 없는 조직이 된다” (2016/02/1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전 직원 성과연봉제 도입을 계기로 성과와 역량 중심의 인사 보상체계를 확립하고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노사공동TF 운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 (2016/01/21, 이사회에서 급여규정 개정 후)

“경마가 자연스러운 문화와 사교의 장인데 유독 한국에서는 도박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취임 1년 간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자 강도 높은 혁신 경영을 추진했다.” (2015/10/05,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마사회는 현재까지의 영광에 자족하며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위기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말뿐이 아닌 몸에 체질화된 고객 중심 경영을 해야 한다.” (2013/12/05, 제34대 한국마사회 취임식에서)

“젊었을 땐 내 능력이 탁월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줄 알았는데 이제 돌아보니 부모, 국가, 사회, 회사 등 여러 곳에서 엄청난 투자를 받았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마지막 남은 내 일이다. 정치는 안 맞는 것 같다. 골프 치고 해외여행하며 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보다는 사회의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할 생각이다.” [2014/04/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저는 그 동안 인생에서 많은 꿈과 성과를 이뤘습니다. 아직 저에게는 마지막 남아있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제주 경제를 살릴 후보로 선택해 주십시오” (2010/06/01, 제주시 선거사무실 기자회견에서)

"5.31선거 당시 삼성생명 주식을 자신의 것처럼 말했던 것은 그룹을 위해 신의의 거짓말을 한 것."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삼성그룹 측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도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1988년 이병철 회장이 작고하기 전 당시 비서실장으로부터 신라호텔 전무였던 나와 전화통화를 했고 그 후 차명계좌를 만들었다. 이사실은 이건희 회장도 모르고 있는 사실." (2008/04/10, 제주도당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제주도당 위원장직 사퇴를 밝히며)

“한국기업이 지난 시대에 부지런함과 도전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면 앞으로는 창의와 지식으로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풍부한 감성을 가진 한국은 복합화(Fusion)시대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 (2005/07/08,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 월례조찬회에서)

“제 고향이 제주도입니다.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 발돋움하려고 하지요. 저의 그간 경험이 지역사회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이제는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할 일을 생각하겠습니다.” (2005/05/27, 제주대발전후원회 회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 평가

현명관은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이라는 제목처럼 공무원과 대기업 회장, 재계, 정계 등 주요직을 거쳐 공기업 회장이 되는 등 변화에 도전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현명관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체제 당시 신임을 크게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조직 개편을 위해 그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현명관은 당시 비서실장 요청을 받고 “공채 출신이 아니 만큼 삼성그룹 내 기반이 없어 어려울 것”이라며 거절했지만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쳐 결국 승낙했다고 한다.

현명관은 당시 이학수씨와 배종렬씨 등을 차장으로 임명하고 김인주, 류석렬씨 등을 팀장으로 뽑았다. 이들은 이후 9인회로 불리며 삼성가 오너의 남자이자 주력 경영인으로 올라섰다.

현명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이른바 ‘7인회’ 멤버로 주목받은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정계와 친분이 두터운 현명관이 마사회에 소속돼 있어 수사에 들어갈 때마다 정치적인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검찰은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 당시 승마업계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함구했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안전사회를 위협한 인물 11인’ 가운데 한 명으로 현명관 회장을 선정했다. 이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현명관은 2013년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나는 명예도 돈도 충분히 있는 사람이다”라며 “내가 이 나이에 여기 온 것은 마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서다”고 말했다.

현명관은 모든 조직을 다 만족시키는 경영자는 무능한 경영자라며 욕을 먹고 질책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현명관은 마사회에 기업경영 전략을 접목시켜 공기업 체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현명관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마사회에 성과연봉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성과연봉제도입을 위한 전담 TF 조직을 꾸리고 전국 사업장 특성에 맞는 방안을 마련했다.

전국 직원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성과연봉제 제도의 필요성을 호소해 노사 공감대 형성에 노력했다는 말이 나온다.

현명관 취임 이후 한국마사회는 2년 연속 청렴도 측정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마사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전국 617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측정에서 ‘최우수 등급’과 ‘우수등급’을 받아 청렴 공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사회는 산업정책연구원이 실시하는 지속가능경영 실태조사에서 4년 연속 최우수(AAA)등급을 받았다.

마사회는 국제경마연맹과 국제경주마경매회사협회로부터 파트(PARTⅡ) 승격이 확정됐다. 한국마사회는 그동안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네덜란드 등과 함께 PARTⅢ 국가로 분류돼 있었으나 이번에 한 단계 올랐다.

◆ 기타

2006년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병역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열린우리당 전철훈 제주도지사 후보가 현명관 후보에게 병역미필 사유인 ‘고령’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전 후보 대변인실은 “현명관 후보는 입영 연기기간 동안 입영영장 발부가 계속 미뤄지는 이유를 알아본 일이 있냐”며 “군입대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현명관 측은 “1961년 보충역 판정을 받은 후 행정고시 합격과 함께 공직생활을 하면서 징집시기가 늦춰졌고 결국 나이가 많아 징집대상에서 적법하게 면제됐다”고 해명했다.

현명관의 큰 아들도 유학과 이민 등의 이유로 11년 동안 네차례 입영을 연기한 후 1996년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병역 의혹이 제기됐다.

현명관은 박근혜 정부 들어 세 번째 제주출신 고위직이다.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 고학찬 예술의 전당 시장에 이어 한국마사회 회장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현명관이 졸업한 서울 고등학교 동문으로 문창극 서울대학교 교수, 김관진 국가안보실 실장, 서남수 EBS 이사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노대래 전 공정위원장,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 주철기 전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 이상일 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최재성 전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 실장 부회장, 강호문 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있다.

저서로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200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