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명'.

은행 영업점이 가장 바쁘다는 점심시간대. 하지만 이 은행원에게만은 한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단 한명의 고객도 찾아오지 않았다.
 
[체험기] AI은행원 직접 만나 보니, 아직은 은행원 아닌 안내원

▲ KB국민은행의 AI은행원.


그러나 누구보다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객을 기다린다. 안쓰러웠다.

최근 몇몇 은행이 도입한 '인공지능 은행원' 얘기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은 키오스크 형태의 인공지능 은행원을 최근 영업점에 배치하면서 고객접점을 디지털화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있다. 정말로 이들이 사람을 대체하며 은행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궁금증을 갖고 여의도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영업점을 직접 찾았다.
이들 두 은행은 최근 영상합성과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키오스크 형태의 인공지능 은행원을 영업점에 도입했다.

KB국민은행은 2021년 3월 선보인 KB국민은행 여의도 신관 인공지능 체험존의 상담사를 여의도 영업부와 여의도 인사이트(InsighT)점, 돈암동지점에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중이다.

신한은행은 현재 인공지능 은행원 키오스크를 여의도중앙, 서소문디지로그브랜치, 한양대디지로그브랜치, 부산서면 지점 등 4곳에 적용했으며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대출."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떠오르는 단어를 말했다. 신한은행의 AI는 번호표를 뽑아줬고 KB국민은행의 AI는 대출상품들의 금리와 조건 등을 나열했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 은행원보다는 '인공지능 안내원'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결국 실질적인 금융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창구를 가야했다. 혼자 기계와 계속 대화하는 것이 왠지 어색해 이내 그만뒀다.

이후 기자가 지점에 있던 1시간여 동안 인공지능 은행원을 이용하는 고객은 한명도 없었다. 

문의사항이 있는 고객들은 인공지능 은행원 대신 청원경찰이나 입구 안내원에게 가서 문제를 해결했다.

청원경찰 A씨는 "도입초기인 만큼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인공지능 은행원을) 이용하는 고객은 별로 없다"며 "가끔 젊은 분들이 한두번 이용하고 간다"고 말했다.

익숙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인공지능 은행원을 통해 업무를 직접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점도 낮은 이용빈도의 원인으로 보인다.

현재 설치된 인공지능 은행원을 통해서는 필요서류를 사전에 안내받거나 금융용어·상품을 소개받는 등 제한적 업무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은행원이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한동안은 이들이 이런 안내역할이나 간단한 업무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자 역시 업무 카테고리를 선택하면 번호표를 내주는 기존 기계와 크게 다른 점은 느끼지 못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제 몇몇 은행들이 소수 영업점에 인공지능 은행원을 배치하기 시작하는 단계다"며 "실제 사람을 대체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들은 향후 대출, 입출금 등 실제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중이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이외에도 NH농협은행은 4일 남녀 인공지능 은행원 1명씩을 농협은행 디지털전환전략부 디지털R&D센터 소속으로 '인사발령'했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우리은행 역시 실제 은행원과 동일한 수준의 은행 업무상담이 가능한 인공지능 은행원을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직원 연수프로그램(인공지능 강사)과 사내방송(인공지능 아나운서)에 먼저 도입하고 있다.

은행 지점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인력감축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고객들이 인터넷과 모바일로 간단한 은행업무를 처리하고 지점방문을 거의 하지 않는 '비대면 거래의 일반화'는 이미 대세로 자리잡혀가고 있다. 

여기에 은행들은 지점이 아예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이나 핀테크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인건비를 포함한 비용효율화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1월 한달 동안에만 시중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서 총 1817명이 희망퇴직했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창구직원의 역할도 대부분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찾는 고객이 없어도 지치지 않고 밝게 웃고 있는 인공지능 은행원의 미소가 더이상 안쓰럽지 않고 섬뜩하게 다가왔다. [비즈니스포스트 공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