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사람 고민을 듣고 해결하는 헤드헌팅 회사에 오랜 시간 몸담으면서 그리고 최근 공기업 직원 채용 및 평가 사업을 수행하면서 경영자나 인사 책임자로부터 많이 듣는 고민이 있다.
요즘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와 생산성이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MZ세대로 지칭되는 젊은 직원들은 우리 때와는 너무 다르고 워라밸 같은 자기 이해만 앞세우고 회사의 주인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을 한다.
'라떼'가 소중한 추억인 윗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난만은 아니다.
갤럽이 세계 160개 나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업무 몰입도를 묻는 조사에서 한국의 직원들은 단 12% 만이 '업무에 몰입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몰입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므로 수치가 높을 수는 없으나 어쨌든 10명 가운데 9명 정도는 몰입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니 일사분란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한탄도 나름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찬물도 위아래가 있을 만큼 서열문화가 뚜렷한 한국 사회에서 주인의식 없는 직원들이 어찌 저 혼자 태어나 존재할 수 있을까 싶으면 결국 누워서 침 뱉기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러다 보면 54년 전 이맘 때 제정되었다는 국민교육헌장이 간혹 떠오른다.
70년대의 블랙 코미디
국민교육헌장은 당시 최고 통치자 박정희의 작품이다.
1968년 6월, 박정희는 당시 권오병 문교부 장관에게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설정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생활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이 중요하다"며 헌장 제정을 지시했다.
이 지시는 그 해 11월 국회 본회의 만장일치 결의를 거쳐 12월5일 '대통령 박정희' 이름으로 공포됐다.
대통령이 시대 이념을 정리했다며 자기 이름을 걸어 의미를 부여한 이 헌장이 그 뒤 온갖 수단을 통해 강력히 추진된 것은 당연했다.
그 시절 모든 교과서 표지를 넘기면 바로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이 두 쪽에 걸쳐 실려 있었다.
첫 문장이 바로 그 유명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이다. 매주 월요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도열한 애국조회 때 교감선생님은 헌장을 받쳐 들고 '봉독'했고 학생들은 논리적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 추상명사들로 가득한 393자나 되는 그 글을 코란처럼 외워 보여야 했다.
하지만 강력하기는 했으나 자발성이란 전혀 없는 모든 것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국민교육헌장은 정권의 종말과 함께 바로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란 게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을 무렵인 1994년 문민정부가 유신정권의 대표 상품으로 지목해 사라졌다.
박정희의 국민윤리 설득 논리구조
1960년대 말 박정희는 어려웠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이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 기간 1963년 민정이양 번복, 1965년 한일수교라는 큰 풍랑을 넘어야 했다. 1967년 우여곡절 끝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지만 앞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내 생각에 따르게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외웠던 일본천황의 교육칙어가 떠올랐을 것 같다. 그는 1920년대 초반 소학교를 다녔을 1917년생이다.
"우리 신민이 지극한 충과 효로써 억조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루는 바가 우리 국체의 정화인 바, 교육의 연원 또한 실로 여기에 있다"는 천황폐하의 교육칙어. 수많은 의식에서 낭독되고 암송됐던 칙어는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을 것이다.
헌장은 의도가 순수했든 아니었든 문장 자체는 나름 명문장이다. 26명의 기초위원과 44명의 심의위원이 6차례나 문장을 가다듬어 통치자 박정희의 생각을 정리해냈다.
헌장은 먼저 우리의 사명이 다름 아닌 민족중흥에 있다고 선언한다.
사명은 한 존재가 절대자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이유, 존재의미다. 바꾸고 싶다고 바꿔지는 것이 아닌 절대성. 헌장은 민족중흥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개념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바로 그 이유로 던진다. '우리의 나아갈 바'에 수많은 지침들이 길게 뒤를 이었다.
사명이 어디 쉽게 달성되는 것인가? 많은 노력은 불가피하다.
성실한 태도로 학문과 기술을 익혀야 하며 노력을 견뎌낼 체력도 길러야 한다. 초라한 '우리의 처지'에 기죽지 말고 이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을 줄 아는 강건한 정신도 갖춰야 한다.
이기심은 절대 금기 대상이다. 우리 민족에는 상부상조의 전통이 있다. 서로 힘을 합해야 하며 살다 보면 내가 손해 볼 수도 있고 희생양도 될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나보다는 공익과 질서를 앞세워야 한다.
협력할 때 나라가 발전하고 그 때 비로소 미뤄 뒀던 나의 발전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하기는 하지만 사실 참을 만한 것임도 빼 놓지 않는다. 이미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는데 이 정도의 책임과 의무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수많은 의무에 뜨악해질 무렵 헌장은 마지막으로 노력의 결과는 구체적이고 달콤할 것이라고 유혹한다.
'영광된 통일조국'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가슴 벅차지 않는가? 그러니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미션에 동의하는 직원이 업무에 몰입한다
국민교육헌장이 나름 명문장이라고 하는 것은 헌장이 담고 있는 가치체계 때문이 아니라 미션(사명)-의무-비전 3단계로 이뤄져 있는 탄탄한 논리구조 때문이다.
'반공민주 전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란 개념이 매우 이상하며 민족중흥의 사명과 무슨 관계에 있는지 따져 물었던 몇몇 지식인들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붙잡혀 들어가긴 했지만 잘못됨을 알아채고 의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박정희의 헌장은 수많은 윤리와 행동규칙을 민족중흥이라는 거대 미션과 영광된 통일 조국이라는 비전으로 포장했고 그럴 듯한 포장에 일단 설득된 사람들은 박정희의 기대대로 근대화에 몰입하면서 1980 - 2000년대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냈다.
근면한 국민이든 열정적 직원이든 윤리는 그 자체로 설득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엄청난 일을 하려고 그런 어마어마한 요구를 하는 것인지가 설득이 돼야 한다.
이유가 먼저 납득이 돼야 하고 미래 만들기에 동참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태도가 바뀌고 행동이 따라오는 것은 그 다음이다. 미션과 비전에 동화된 사람들은 상상 이상의 동력을 만들어 낸다.
웬만한 기업치고 미션-비전-윤리체계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경영자들은 마치 거실에 TV, 소파 들여놓듯 의무처럼 미션을 선포하고 비전을 만든다. 그리고 직원들의 윤리준수와 행동과 몰입을 기대한다.
하지만 야무지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하기 전에 생각해 보자. 그 비전이란 것이 박정희의 민족중흥만큼 가슴을 울리는 것인지, 박정희의 영광된 통일조국처럼 한번쯤 노력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게다가 경영자들은 박정희보다 조건도 좋지 않다.
박정희는 자신을 교육자로 국민을 피교육자로 설정하는 무리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자로서 강력한 행정력과 국가폭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며 어차피 한국 땅 등지기 어려운 국민이 설득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직원은 여차하면 존재론적 시간으로 돌아가 떠날 수 있는 존재고 회사가 갖고 있는 보유 물품 리스트에는 애초 행정력이나 폭력 같은 품목은 없다. 몰입이란 박정희도 쉽지 않았던 일이다.
잡지 '라이프'의 폐간과 마지막 호 제작을 소재로 한 2013년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는 어두운 지하 작업실에서 사진작가들이 보내오는 필름을 정리하고 인화해 편집진에 보내는 업무를 하며 16년을 일했다.
그는 주목받지 못하는 직원이었다. 그런데 라이프 64년 역사가 추구해 온 사명을 대표하는 컷이라는 작가의 마지막 필름에서 월터가 발견한 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과 자신이 일하는 모습이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라이프(인생)의 목적이다'.
라이프는 멋진 미션을 제시했고 월터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깊이 몰입했다. 그 회사의 그 직원, 월터는 그렇게 라이프의 역사 속 한 사람이 됐다. [커리어케어 진국영 사장]
요즘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와 생산성이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MZ세대로 지칭되는 젊은 직원들은 우리 때와는 너무 다르고 워라밸 같은 자기 이해만 앞세우고 회사의 주인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을 한다.
▲ 진국영 커리어케어 사장.
'라떼'가 소중한 추억인 윗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난만은 아니다.
갤럽이 세계 160개 나라 직원들을 대상으로 업무 몰입도를 묻는 조사에서 한국의 직원들은 단 12% 만이 '업무에 몰입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몰입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므로 수치가 높을 수는 없으나 어쨌든 10명 가운데 9명 정도는 몰입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니 일사분란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한탄도 나름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찬물도 위아래가 있을 만큼 서열문화가 뚜렷한 한국 사회에서 주인의식 없는 직원들이 어찌 저 혼자 태어나 존재할 수 있을까 싶으면 결국 누워서 침 뱉기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러다 보면 54년 전 이맘 때 제정되었다는 국민교육헌장이 간혹 떠오른다.
70년대의 블랙 코미디
국민교육헌장은 당시 최고 통치자 박정희의 작품이다.
1968년 6월, 박정희는 당시 권오병 문교부 장관에게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설정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생활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이 중요하다"며 헌장 제정을 지시했다.
이 지시는 그 해 11월 국회 본회의 만장일치 결의를 거쳐 12월5일 '대통령 박정희' 이름으로 공포됐다.
대통령이 시대 이념을 정리했다며 자기 이름을 걸어 의미를 부여한 이 헌장이 그 뒤 온갖 수단을 통해 강력히 추진된 것은 당연했다.
그 시절 모든 교과서 표지를 넘기면 바로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이 두 쪽에 걸쳐 실려 있었다.
첫 문장이 바로 그 유명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이다. 매주 월요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도열한 애국조회 때 교감선생님은 헌장을 받쳐 들고 '봉독'했고 학생들은 논리적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 추상명사들로 가득한 393자나 되는 그 글을 코란처럼 외워 보여야 했다.
하지만 강력하기는 했으나 자발성이란 전혀 없는 모든 것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국민교육헌장은 정권의 종말과 함께 바로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란 게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을 무렵인 1994년 문민정부가 유신정권의 대표 상품으로 지목해 사라졌다.
박정희의 국민윤리 설득 논리구조
1960년대 말 박정희는 어려웠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이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 기간 1963년 민정이양 번복, 1965년 한일수교라는 큰 풍랑을 넘어야 했다. 1967년 우여곡절 끝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지만 앞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내 생각에 따르게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외웠던 일본천황의 교육칙어가 떠올랐을 것 같다. 그는 1920년대 초반 소학교를 다녔을 1917년생이다.
"우리 신민이 지극한 충과 효로써 억조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루는 바가 우리 국체의 정화인 바, 교육의 연원 또한 실로 여기에 있다"는 천황폐하의 교육칙어. 수많은 의식에서 낭독되고 암송됐던 칙어는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을 것이다.
헌장은 의도가 순수했든 아니었든 문장 자체는 나름 명문장이다. 26명의 기초위원과 44명의 심의위원이 6차례나 문장을 가다듬어 통치자 박정희의 생각을 정리해냈다.
헌장은 먼저 우리의 사명이 다름 아닌 민족중흥에 있다고 선언한다.
사명은 한 존재가 절대자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이유, 존재의미다. 바꾸고 싶다고 바꿔지는 것이 아닌 절대성. 헌장은 민족중흥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개념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바로 그 이유로 던진다. '우리의 나아갈 바'에 수많은 지침들이 길게 뒤를 이었다.
사명이 어디 쉽게 달성되는 것인가? 많은 노력은 불가피하다.
성실한 태도로 학문과 기술을 익혀야 하며 노력을 견뎌낼 체력도 길러야 한다. 초라한 '우리의 처지'에 기죽지 말고 이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을 줄 아는 강건한 정신도 갖춰야 한다.
이기심은 절대 금기 대상이다. 우리 민족에는 상부상조의 전통이 있다. 서로 힘을 합해야 하며 살다 보면 내가 손해 볼 수도 있고 희생양도 될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나보다는 공익과 질서를 앞세워야 한다.
협력할 때 나라가 발전하고 그 때 비로소 미뤄 뒀던 나의 발전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하기는 하지만 사실 참을 만한 것임도 빼 놓지 않는다. 이미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는데 이 정도의 책임과 의무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수많은 의무에 뜨악해질 무렵 헌장은 마지막으로 노력의 결과는 구체적이고 달콤할 것이라고 유혹한다.
'영광된 통일조국'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가슴 벅차지 않는가? 그러니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미션에 동의하는 직원이 업무에 몰입한다
국민교육헌장이 나름 명문장이라고 하는 것은 헌장이 담고 있는 가치체계 때문이 아니라 미션(사명)-의무-비전 3단계로 이뤄져 있는 탄탄한 논리구조 때문이다.
'반공민주 전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란 개념이 매우 이상하며 민족중흥의 사명과 무슨 관계에 있는지 따져 물었던 몇몇 지식인들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붙잡혀 들어가긴 했지만 잘못됨을 알아채고 의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박정희의 헌장은 수많은 윤리와 행동규칙을 민족중흥이라는 거대 미션과 영광된 통일 조국이라는 비전으로 포장했고 그럴 듯한 포장에 일단 설득된 사람들은 박정희의 기대대로 근대화에 몰입하면서 1980 - 2000년대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냈다.
근면한 국민이든 열정적 직원이든 윤리는 그 자체로 설득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엄청난 일을 하려고 그런 어마어마한 요구를 하는 것인지가 설득이 돼야 한다.
이유가 먼저 납득이 돼야 하고 미래 만들기에 동참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태도가 바뀌고 행동이 따라오는 것은 그 다음이다. 미션과 비전에 동화된 사람들은 상상 이상의 동력을 만들어 낸다.
웬만한 기업치고 미션-비전-윤리체계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경영자들은 마치 거실에 TV, 소파 들여놓듯 의무처럼 미션을 선포하고 비전을 만든다. 그리고 직원들의 윤리준수와 행동과 몰입을 기대한다.
하지만 야무지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하기 전에 생각해 보자. 그 비전이란 것이 박정희의 민족중흥만큼 가슴을 울리는 것인지, 박정희의 영광된 통일조국처럼 한번쯤 노력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게다가 경영자들은 박정희보다 조건도 좋지 않다.
박정희는 자신을 교육자로 국민을 피교육자로 설정하는 무리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자로서 강력한 행정력과 국가폭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며 어차피 한국 땅 등지기 어려운 국민이 설득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직원은 여차하면 존재론적 시간으로 돌아가 떠날 수 있는 존재고 회사가 갖고 있는 보유 물품 리스트에는 애초 행정력이나 폭력 같은 품목은 없다. 몰입이란 박정희도 쉽지 않았던 일이다.
잡지 '라이프'의 폐간과 마지막 호 제작을 소재로 한 2013년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는 어두운 지하 작업실에서 사진작가들이 보내오는 필름을 정리하고 인화해 편집진에 보내는 업무를 하며 16년을 일했다.
그는 주목받지 못하는 직원이었다. 그런데 라이프 64년 역사가 추구해 온 사명을 대표하는 컷이라는 작가의 마지막 필름에서 월터가 발견한 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과 자신이 일하는 모습이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라이프(인생)의 목적이다'.
라이프는 멋진 미션을 제시했고 월터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깊이 몰입했다. 그 회사의 그 직원, 월터는 그렇게 라이프의 역사 속 한 사람이 됐다. [커리어케어 진국영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