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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Who]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윤휘종 기자 yhj@businesspost.co.kr 2021-11-30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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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또는 대체불가토큰(NFT)를 발행하거나 교환을 허용하는 블록체인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스팀에서 유통할 수 없다.”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이 최근 개정한 애플리케이션 유통 가이드라인의 내용이다.

대체불가토큰과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P2E(플레이 투 언)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스팀의 태도에서 보듯 세계 게임시장에서는 대체불가토큰과 이를 활용한 P2E모델이 게임업계를 좀먹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불가토큰과 P2E모델은 게임업계를 유토피아로 이끌까,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이끌까?

◆ 대체불가토큰과 게임의 위험한 동거

대체불가토큰과 P2E모델의 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단순화하면 대체불가토큰은 기술, P2E는 그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대체불가토큰과 P2E모델이 게임업계에 장기적으로 줄 영향을 살펴보려면 대체불가토큰이라는 기술이 게임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됐을 때 벌어질 일, 그리고 이 기술을 P2E모델에 활용했을 때 벌어질 일의 두 가지로 나눠서 봐야 한다.

먼저 대체불가토큰이 게임업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금 과장을 섞어 대체불가토큰은 게임회사가 게임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대체불가토큰이 게임업계에 불러올 수 있는 가장 큰 파장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게임아이템, 캐릭터의 ‘소유권’이다. 애초 대체불가토큰이라는 것 자체가 특정 데이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일종의 증서같은 개념이다.

현행법상 게임 이용자는 게임아이템의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용자가 게임아이템을 게임사로부터 구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게임아이템 자체가 아니라 그 아이템의 사용권을 구입한 것에 불과하다.

왜 이용자는 게임아이템의 소유권을 지닐 수 없을까? 

민법상 사람이 어떤 존재를 소유하려면 그 존재가 ‘물건’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소유권은 물권의 종류이고, 물권의 객체는 반드시 물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법 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게임아이템은 유체물이 아니다. 그래서 게임아이템이 물건이 되려면 ‘관리’가 가능해야 하고, 관리가 가능하려면 그 존재가 ‘특정’돼야 한다.

게임아이템은 단순히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일 뿐이다. 0과 1의 배열만 바꾸면 얼마든지 변조가 가능하고, 또 무제한으로 복사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특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게임아이템에는 애초에 소유권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없다.

그럼 여기에 대체불가토큰이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특정이 가능해진다. ‘대체불가토큰’이라는 이름 그대로 데이터를 대체가 불가능한, 고유한 데이터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게임아이템이 소유권의 객체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게임아이템이 소유권의 객체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게임회사는 게임을 운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패치’를 한다. 특정 아이템의 가치가 너무 올라갔다 싶으면 그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높인다든지 혹은 이벤트 등을 통해 그 아이템을 많은 사람에게 무료로 지급하기도 한다. 혹은 가끔 게임아이템의 성능 자체를 조정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게임아이템의 소유권이 이용자에게 있다면 게임회사가 진행하는 이런 ‘패치’는 이용자가 소유한 재화의 가치를 임의로 훼손, 변조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용자가 패치를 이유로 게임회사를 고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패치도 어려워지는데, 서비스 종료는 말할 것도 없다. 게임서비스가 종료되면 그 게임에서 사용하던 아이템의 가치는 0이 된다. 이용자가 마치 ‘알박기’처럼 절대 게임서비스를 중단하지 말라고 버티면 게임회사는 이용자도 얼마 없고 나오는 수익도 0에 가까운 게임을 서버비용, 유지보수 인건비 등을 지불해가며 억지로 유지해야하는 상황에 놓일 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극단적 예시다. 이용약관을 통해 이용자와 패치 등의 사항을 미리 합의하는 방법 등을 통해 게임회사가 게임의 통제권을 가져올 방법도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아이템에 법적 소유권이 인정된다면 당연히 어떤 방향으로든 법적 문제의 소지가 매우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용자가 일종의 ‘어깃장’을 놓는 것이 쉬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 인기가 많아지면 신규 유입이 줄어드는 P2E게임의 모순

P2E모델은 게임회사에게 어떤 방법으로 수익을 안겨줄까? 가장 주된 수입원은 사람들이 대체불가토큰, 가상화폐를 거래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수익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거래가 많이 일어날수록 게임회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와 결합된 P2E모델의 특성을 살피면 P2E게임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규모가 커지기 어려워질 수 있다.

가상화폐는 가치변동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P2E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면, 그 게임이 기반을 둔 가상화폐의 가치는 급등하게 된다. 위믹스, 엑시인피니티샤즈의 가치 상승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면 게임 서비스 초기부터 게임을 즐겨 온 이용자들에게는 상당한 이익이 되지만, 새로 게임을 시작하려는 이용자들에게는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P2E게임, 엑시인피니티도 그렇다. 

엑시인피니티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엑시’ 한 세트를 장만하기 위해서는 몇 달러면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는 원화로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해야 겨우 돈을 벌 수 있을만 한 엑시 파티를 꾸릴 수 있다.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의 엑시를 맡아서 육성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무자본 시작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다면 얻을 수 있는 수익도 매우 적어서 그다지 효용이 없다.

이미 가상화폐가 오를 대로 올라버린 상황에서는 시세차익을 거두기도 힘들기 때문에 P2E게임이 신규 이용자를 끌어오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글로벌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인 퍼블리시0X(publish0X)는 “왜 블록체인 게임은 구린가?(Why blockchain games sucks?)"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엑시인피니티와 같은 게임이 인기를 끌게 되면 대체불가토큰 가치가 높아지는데, 이는 기존 플레이어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게임 자체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엑시 인피니티를 플레이하고 싶지만 초기 비용으로 600달러를 투자하기 싫어하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600달러를 투자해 엑시 인피니트를 시작하는 대신 스테이킹, 스왑, 혹은 다른 NFT에 투자할 것이다. 이것(신규 이용자가 유입되지 않는 것)은 일반적으로 게임이 실패할 것이라는 가장 일반적인 신호 가운데 하나다.“

심지어 이렇게 신규 이용자가 유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이용자들이 열심히 가상화폐를 채굴한다면 어느 순간 게임 이용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코인 채굴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러면 가상화폐의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해당 P2E 게임을 시작할 유인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변동성이 작은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P2E게임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달러 등 실물화폐에 연동해 변동성을 최소화 하는 가상화폐를 흔히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과 게임이 합쳐진다면 오히려 그 게임은 P2E 게임으로서의 매력을 심각하게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상화폐의 변동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사라져버린다면 사실상 이 게임은 대체불가토큰를 활용해 아이템 거래가 좀 더 용이하다는 점만 남게 된 일반게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한다, 게임은 문화콘텐츠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물론 위에서 얘기한 상황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게임이 재밌으면 된다.

게임이 재밌으면 이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든 없든 게임을 즐기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게임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재미’에 있다는 뜻이다.

과연 P2E모델의 범람 속에서 과연 게임이 게임으로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콘텐츠로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는 현재 많은 수의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걱정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게임이 좋아서 업계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당연히 이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 P2E게임은 마치 다단계사업처럼 텔레그램, 스팸메시지 등을 통해 피라미드 형태로 사람을 모집한다”며 “이걸 더 이상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P2E는 대체불가토큰을 활용해 게임아이템을 합법적으로, 좀 더 쉽게 사고팔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래서 일부 이용자들은 P2E를 ‘쌀먹 합법화’라고 비판한다. 쌀먹이란 “게임으로 쌀 사먹는다”라는 뜻의 은어로 게임을 게임이 아니라 돈벌이로 접근하는 행태를 비난하는 뜻을 담고 있다.

물론 즐기면서 수익을 얻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수입원으로서 속성이 문화콘텐츠로서의 속성을 압도해버릴 때 생겨난다.

즐기기 위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결국 즐기기 위해서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게임을 떠나가게 된다. 그러면 게임회사는 자연스럽게 운영의 초점을 돈을 벌기 위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에게 맞추게 되고, 결국 게임에는 ‘게임 이용자’가 아닌 ‘쌀먹 이용자’밖에 남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게임을 책, 영화, 음악과 같은 문화콘텐츠라고 부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리 극단적 예시도 아니다. 이미 게임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상당히 현실감있게 다가오고 있는 우려다. 이 우려가 현실감이 있는 이유는 바로 대체불가토큰과 P2E모델이 보편화되기 전부터 이미 게임산업에 실제로 나타나고 있었던 현상이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에서 장난스럽게 하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실 P2E의 원조는 리니지다.

리니지는 서비스 초창기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손쉽게 아이템의 현금화가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리니지는 ‘돈버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리니지와 비슷한 대규모다중접속 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들에는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게임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소위 ‘작업장’이다. 작업장에서는 수십, 수백 대의 컴퓨터가 자동사냥 통해 손쉽게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획득하고 이를 현금화한다. 이들은 게임 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P2E의 게임업계의 대세가 된다면 이런 현상이 더 큰 규모로, 더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아까 이야기했던 엑시인피니티를 포함해 대부분의 P2E게임은 자동사냥과 같은 방식을 근절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사냥과 같은 방식은 온라인게임시장의 태동기부터 존재해왔지만 아직 근절되지 않은 존재다. 어느 정도의 효력이 있을지 미지수인 셈이다. 

대체불가토큰과 가상화폐, 그리고 P2E모델과 관련해서 게임업계에서는 계속해서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이러한 신기술들은 게임업계를 유토피아로 이끌까,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떨어뜨릴까?

십년 뒤 게이머들은 스팀의 ‘P2E 불가정책’을 놓고 혜안으로 평가하게 될지, 아니면 시대를 읽지 못한 쇄국정책으로 평가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채널Who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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