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위아, 현대제철, 현대자동차, 기아 등 현대자동차그룹 제조계열사에서 사내하청노동자와 관련한 파견법 논란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하나의 계열사가 아닌 제조계열사 전반에서 논란이 일고 있고 앞으로 계속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파견법 관련 사안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주요 경영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곳곳 파견법 위반 논란, 정의선 직접고용 결단 쉽지 않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6일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현대위아 비정규직평택지회(평택지회)에 따르면 현대위아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낸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사측으로부터 업무 등과 관련한 어떠한 지침도 받지 못했다.

현대위아 평택지회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전혀 사안의 진전이 없고 여전히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며 “사측의 변화를 기다리다 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사측에 보냈는데 교섭일정을 정해서 알려주겠다고 7월 말 답변하더니 또 다시 깜깜무소식이다”고 말했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사후조치를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이번 사안은 대법원이 현대차그룹 부품계열사 가운데 처음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해 사내하청노동자 64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린 건이다.

현대위아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2천여 명의 현대위아 사내하청노동자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의 다른 부품계열사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로 이어질 수 있어 현대위아 경영진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현대제철 역시 7월 자회사를 설립해 사내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사내하청노동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등 일부 노동자들은 자회사 설립을 통한 직접고용이 파견법 위반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앞둔 사측의 꼼수 결정이라며 자회사 이동을 거부하고 여전히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7월 말 정의선 회장과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도 사내하청노동자 파견법 위반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대차와 기아는 2010년 사내 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철탑농성, 희망버스 등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타협을 통해 지금껏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노동자 약 1만 명을 순차적으로 직접고용했다.

하지만 생산라인 외에 품질관리, 생산관리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현대차와 기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진행하고 있는 소송만 20여 건으로 알려졌다.

제조계열사 사내하청노동자의 직접고용 요구와 관련한 정의선 회장의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사내하청노동자의 불법파견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현대차뿐 아니라 다른 제조계열사를 대상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있는 만큼 현재 상황을 방치한다면 논란은 지속해서 커질 수 있다.

현대제철 사내하청노동자들이 회사의 바람대로 자회사로 가지 않고 끝까지 불법파견소송을 계속 진행해 대법원에서 승소한다면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파견법은 IMF 외환위기 때 고용 유연성을 위해 1998년 국내에 도입됐는데 무분별한 파견업무 확장을 막기 위해 해당업종 등을 명확히 규정했다.

제조업은 파견업무가 허용되지 않지만 현대차그룹 제조계열사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사내하청 방식으로 제조 관련 업무를 맡겨 파견법 위반 판결을 받았다.

파견법 위반 논란이 지속하는 점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 측면에서도 정 회장에게 부담일 수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 뒤 꾸준히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을 강조하고 있는데 노사협력은 ESG경영의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문제는 정 회장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모두 직접고용하는 선택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사례에서 보듯 직접 고용을 통한 협력업체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자칫하면 노노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 곳곳 파견법 위반 논란, 정의선 직접고용 결단 쉽지 않아

▲ 2015년 9월14일 현대차 울산 공장 아반떼룸에서 열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협의'에서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뒤 (오른쪽부터) 윤갑한 현대차 사장, 김성욱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장,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서쌍용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향후 전기차 등 미래차 전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생산하는 전용 플랫폼 E-GMP를 활용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조립공정이 단순해 투입인력 감소가 불가피하다.

직접고용 범위를 정확히 정할 수 없다는 점도 직접고용이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파견법 위반은 각 노동자가 놓인 상황이 다른 만큼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통해서만 위법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는 애초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도 파견법 위반이 아니라고 맞섰다가 지금은 인정해 순차적으로 직접 고용을 진행했고 지금은 생산라인 외 업무를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주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고용 유연화를 위해 파견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7월 현대위아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 이후 입장자료를 내고 “우리나라는 제조업 파견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등 세계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강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며 “법원 판결도 사건별로 엇갈리고 있어 기업경영의 유연성과 예측성을 저하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한 제조계열사 관계자는 “노동문제가 중요한 것을 알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며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것은 비용문제를 넘어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 형평성 문제 등과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