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희 기자 ssul20@businesspost.co.kr2016-01-22 10:35:40
확대축소
공유하기
전체
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조창걸은 193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서울 대광고를 거쳐 서울대 건축공학과와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 졸업했다.
한국 부엌의 아궁이를 바꿔 주부들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목표로 한샘산업사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 당시만해도 부엌을 설계하는 것이 생소했는데 조창걸은 부엌에 ‘가구’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1970년대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며 한샘의 주방가구는 큰 인기를 끌었고 해외로 눈을 돌려 미국 중동 등지에 가구들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한샘은 1979년 수출이 100만 달러를 넘어섰고 4년 뒤 5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종합가구회사로 변신해 사업영역을 주방에서 거실로 확장했다.
조창걸은 한샘이 국내를 대표하는 가구회사로 자리잡으면서 전무였던 최양하 현 회장에게 대표이사를 맡기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한샘은 사업영역을 침실,거실,서재 등 주택의 모든 공간으로 넓히면서 대한민국 주거환경 변화를 주도하며 국내 1위 종합 인테리어기업으로 성장했다.
조창걸은 한샘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최양하 대표가 회장으로 승진했고, 창업주인 조창걸은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조창걸의 ‘일 욕심’은 멈추지 않고 있다. 매일 새벽 서울 원서동 한샘디자인 연구소로 출근해 경영에 관련된 주요 사항을 직접 보고 받고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해외 가구 전시회들도 뛰어다닌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대한민국의 주거환경 변화를 주도하며 한샘을 매출 1조 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한국형 씽크탱크를 만들겠다는 오랜 숙원을 40여년 만에 실현해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샘 주식 약 20%를 보유하고 있고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지만 경영은 공동 대표이사인 최양하 회장이 맡고 있다.
조창걸은 기업의 미래를 위한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고 최 회장은 살림살이를 맡아 현장형 경영전략을 펴는 등 명확한 역할분담으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특한 관점으로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20년 전부터 이케아의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비한 사업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한샘은 세계적 가구업체인 이케아의 한국 진출에도 타격을 입지 않지 않았다. 오히려 가구업계의 불황속에서도 나홀로 성장을 이뤘다. 가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었지만 주방 가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온라인과 홈쇼핑으로 유통채널을 확대하는 한샘의 공격적인 전략이 주효했다.
2015년 3월26일 조 명예회장은 한샘드뷰 연구재단에 재산 절반을 내놓았다. 한샘드뷰는 이름 DBEW(DesignBeyondEast&West 동서양을 넘은 디자인)처럼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인 철학을 앞세워 한샘의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개발 과제를 연구하고 있다.
한샘의 경영보다 한샘의 디자인 방향성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을 전공해 건축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재계 인사들보다는 건축가, 미술가들과 더욱 깊은 유대관계를 지니고 있다.
1996년 설립한 개인기업 ‘휘찬’은 조창걸의 디자인과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박물관’을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휘찬’의 재무상태가 악화됐을 때 조 명예회장이 주식 17만 주를 증여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등 애정을 보였다.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아 ‘은둔형 기업인’으로 불린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학력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장남 조원찬 씨는 1971년생으로 한샘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몇년 전 사망했다.
딸 조은영, 조은희, 조은진씨 가운데 차녀 조은희씨만 한샘에 몸담고 있다. 조은희씨는 미국법인 디자인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맏사위인 천정렬씨는 2000년 한샘에 입사한 뒤 현재 한샘 미국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동생으로는 조창식 도무스디자인 회장과 조창환 더홈 회장이 있다.
조창식 회장은 1970년 조 명예회장과 함께 한샘을 창립한 후 한샘인테리어의 대표이사직을 역임했다. 2004년 한샘을 나와 2006년 해외가구 수입업체 도무스디자인을 설립했다.
조창환 회장은 한샘에서 무역관련 업무를 주도하다 2004년 수입가구 전문업체인 더홈을 설립했다.
◆ 상훈
◆ 상훈
어록
“한샘을 2020년까지 대한민국 3대 브랜드로 키울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그리고 한샘이다.” (2015/11/02 매출 100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한샘의 3단계 브랜드 강화 프로젝트를 주문하며)
“고객과의 접점을 단층 촬영하듯이 잘게 쪼갠 다음 모든 단계에서 만족을 얻어내라. 고객들이 쇼윈도에 전시된 가구만 보고 그냥 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등을 전부 연구하라.” (2015/1102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한샘스타일’을 정립을 주문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총리나 대법관, 장관을 지낸 고급 인재가 갈 곳이 로펌이나 회계법인뿐이다. 이들이 재충전하면서 국가 비전을 세우고 다시 봉사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한일합병, 남북분단, 6•25전쟁 등은 우리나라가 미래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이를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다. 앞으로도 한국은 주변의 강대국 사이에서 이들과 함께, 그리고 이들을 조정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므로 싱크탱크가 절실히 필요하다.” (2015/03/26 ‘한샘드뷰 연구재단’ 에 4400억 원을 기부할 것이라 밝히며)
“뉴욕은 기업을 위한 도시로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270개가 뉴욕에 있다. 여기서 누가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지 배워야 한다. 현재 수준을 뛰어넘어 세계 정상의 도시를 집중 탐구하고 그 중 일부인 미국 인테리어 시장을 잘 살펴보라.” (2015/04/09 가구도시로 유명한 밀라노가 아닌 뉴욕에서 글로벌 전략회의를 가지며)
“한샘은 도시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도시를 개발하는 회사로 성장해야 한다. 클러스터 등을 조성해 규모는 작아도 창조력이 원천이 되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2015/03/26 한샘의 미래 도시개발 비전을 밝히며)
“한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우리가 만든 제품디자인 하나하나가 중국, 일본, 나아가 아시아 전체와 전세계인들을 열광시킬 수 있다. 다가올 미래 사회는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 일방적 지배가 아닌 두 문명의 장점이 조화를 이뤄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융합의 시대가 될 것이다.” (2006/05/11 성균관대 최고경영자(CEO) 초빙강좌에 강사로 나가 ‘미래의 주인공’이란 주제로 강연하며)
◆ 평가
대한민국의 주거환경 변화를 주도하며 한샘을 매출 1조 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한국형 씽크탱크를 만들겠다는 오랜 숙원을 40여년 만에 실현해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샘 주식 약 20%를 보유하고 있고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지만 경영은 공동 대표이사인 최양하 회장이 맡고 있다.
조창걸은 기업의 미래를 위한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고 최 회장은 살림살이를 맡아 현장형 경영전략을 펴는 등 명확한 역할분담으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특한 관점으로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20년 전부터 이케아의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비한 사업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한샘은 세계적 가구업체인 이케아의 한국 진출에도 타격을 입지 않지 않았다. 오히려 가구업계의 불황속에서도 나홀로 성장을 이뤘다. 가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었지만 주방 가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온라인과 홈쇼핑으로 유통채널을 확대하는 한샘의 공격적인 전략이 주효했다.
2015년 3월26일 조 명예회장은 한샘드뷰 연구재단에 재산 절반을 내놓았다. 한샘드뷰는 이름 DBEW(DesignBeyondEast&West 동서양을 넘은 디자인)처럼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인 철학을 앞세워 한샘의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개발 과제를 연구하고 있다.
한샘의 경영보다 한샘의 디자인 방향성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을 전공해 건축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재계 인사들보다는 건축가, 미술가들과 더욱 깊은 유대관계를 지니고 있다.
1996년 설립한 개인기업 ‘휘찬’은 조창걸의 디자인과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박물관’을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휘찬’의 재무상태가 악화됐을 때 조 명예회장이 주식 17만 주를 증여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등 애정을 보였다.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아 ‘은둔형 기업인’으로 불린다.
◆ 기타
2015년 3월 한샘 지분 534만5180주 중 약 절반인 260만 주를그가 설립한 ‘한샘드뷰 연구재단’에 기부할 것이라 밝혔다. 기부액이 당시 기준으로 4400억 원이나 되며 한샘 주가 상승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샘드뷰 연구재단은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역량을 발굴하고 선점하는 데 기여하고자 설립했다고 밝혔다.
손자 2명은 2015년 9월 회사주식 3만 6000여주 씩을 부친에게서 상속받아 새로 미성년 주식부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각각 105억4000만 원에 이른다.
2014년 급여 5억5100만 원, 상여 4500만 원을 합친 총 5억 9600만 원을 보수로 받았다. 오너인 조창걸장보다 전문경영인들이 더 많은 연봉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한샘 출신들이 회사를 나가 창업할 경우 한샘에 납품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돈을 출자해 초기 창업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또 퍼시스나 도무스처럼 지분 관계가 없는 독립 회사라도 사업 초기, 영업에 도움이 되도록 회사 이름에 ‘한샘’을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하며 한샘사단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수문 전 하츠 대표가 참여한 연극 ‘명성황후’에 4억 원을 투자했다. 이 대표에게 작품다운 작품 하나 못 만들면서 무슨 연극을 한다고 다니느냐며 한국 연극 역사상 획기적인 대작을 만들어내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샘 관계자인 이수문하츠 대표, 양영일 퍼시스 부회장, 최양화 한샘 회장은 모두 서울대 공대 연극회 출신이다.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들이 매달 첫째 목요일에 만나 건축에 대해 논의하는 모임 ‘목구회’ 회원이다. ‘목구회’의 뜻은 목요일에 밥과 말을 나눈다는 의미로 1965년 22명의 회원들에 의해 창립됐다.
회원에는 이상순 전 롯데건설 사장, 김석철 건축가 등이 있으며 성장기 한국사회의 각종 기반 시설을 설계한 주역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