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기후협약과 저유가, 석유화학업계 불안 커져  
▲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이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6년 석유화학업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화학업계는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큰 한해를 맞이하고 있다. 화학업계를 둘러싼 경영환경이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파리기후협약은 화학업계에 가장 큰 위협으로 떠올랐다. 또 저유가의 긴 터널도 불안감을 키우는 건 마찬가지다.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고 신사업으로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파리기후협약, 화학업계 부담 가중

20일 업계에 따르면 파리기후협약으로 화학업계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제조업 분야로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196개국의 참가국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협약을 체결했다.

지금까지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었으나 앞으로 개발도상국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37%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석유화학업계에 1억3700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할당했다. 하지만 업계는 할당량이 너무 작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적어도 2천만 톤에서 2500만 톤의 할당량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학업계는 이미 고효율 설비 도입 등으로 지속적으로 탄소배출 감축활동을 해와 세계 최고수준의 에너지효율에 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설비가 들어가는 장치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1% 수준의 추가 감축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도 2017년까지 탄소배출권을 정부에서 무상으로 할당하지만 2018년부터는 배출권의 일부를 정부로부터 유상으로 구매해야 한다. 갈수록 업계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본다. 지나치게 무리한 목표라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온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37% 감축을 이루려면 산업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신기후체제에서 화학업계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도 있다. 에너지신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전기차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한화케미칼은 태양광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 저유가,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국제유가도 석유화학업계 실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최근 국제유가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이 정도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으나 갈수록 유가는 약세를 나타냈다. 그만큼 유가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당장 재고평가 손실을 보게 된다. 이미 국내 화학업계는 2014년 하반기부터 유가하락으로 적지 않은 재고평가 손실을 입었다.

  파리기후협약과 저유가, 석유화학업계 불안 커져  
▲ 국제유가는 올 들어 3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서 50달러 아래까지 떨어지면서 추가 손실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유가는 시장의 예상보다 더 떨어지면서 올해 들어 30달러 선까지 밀려났다.

2014년 하반기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여전히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유가는 반등의 기미도 좀처럼 없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이어 달러 강세, 이란 경제제재 해제 등으로 오히려 하방압력이 더 커진다.

JP모건과 스탠다드차타드 등 투자은행들은 유가가 배럴 당 10달러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저유가는 석유화학 제품 가격도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지난해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대한유화, 금호석유화학 등 석유화학회사들의 매출액은 2014년 대비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수익성은 개선됐으나 외형은 축소된 셈이다.

매출이 감소하는데 수익성이 높아졌다고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매출 감소는 고정비 비중을 늘리고 기업의 투자 심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자칫 기업의 성장이 정체될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저유가의 원인이 공급 측에서 수요 측으로 옮겨가는 부분이다. 현재의 저유가 국면을 이끈 데는 산유국의 공급 경쟁도 있지만 한편으로 전 세계적인 불황도 한몫을 했다. 지금까지 전자가 두드러졌으나 점차 후자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중국 경기둔화와 신흥국의 위축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할 경우 수출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석유화학 업계에 유가 이상의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석유화학업계는 저유가에 안도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업계 전망을 낙관할 수 없어 중장기적으로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석유화학협회장을 맡고 있는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은 12일 석유화학업계 신년식에서 “최근 저유가 기조는 다행스러운 상황”이라면서도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분쟁으로 석유화학 시장이 혼돈스럽고 북미가 셰일가스 기반 대규모 설비를 건설하는 등 위협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허 사장은 “대외적인 악재에 대응하려면 선제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며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신사업 진출 등 중장기적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