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대표가 우리은행 경영전략회의 초청 강연에 선 것은 권 행장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22일 2021년 상반기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윤 대표를 특별 강연자로 초빙했는데 금융권의 보수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경쟁 은행 대표가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지난해 말 롯데그룹이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롯데 CEO 포럼' 행사에 유통사업 경쟁업체인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이사를 초청하는 등 최근 디지털 전환에 강점을 보유한 경쟁업체 대표를 초청한 사례가 있었지만 같은 금융권에서 경쟁사 CEO를 초청한 것은 우리은행이 처음이다.
특히 이날 강연이 경영전략회의와 함께 진행된 만큼 권 행장이 디지털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의지를 우리은행 구성원들에 뚜렷이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권 행장은 4일 신년사에서 2021년 우리은행이 나아갈 방향으로 '디지털 최우선, 디지털 주도'로 정하고 "디지털 전환이란 단순히 기술적 개념에 국한되거나 본부의 특정 디지털 담당 그룹만의 일이 아니다"며 "철저히 고객을 중심에 두고 디지털 전환을 진행해 차별화된 경쟁력과 새로운 고객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강연을 추진하며 빅테크기업들의 금융권 진출 본격화 등 경쟁이 더욱 심해질 2021년을 대비해 외부에서도 혁신서비스 노하우를 배워야한다는 자세를 직접 보여준 셈이다.
윤 대표는 경영전략회의에서 혁신이란 디지털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 아닌 고객이 잘 사용하게 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강연했는데 권 행장이 추진하고자 하는 디지털 전환 전략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권 행장은 더이상 금융권에서 시중은행이 우위에 있지 않다는 시각에서 출발해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왔다.
권 행장은 우리은행 플랫폼 성장 방향성을 놓고 범용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경쟁 시중은행들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맞서 자체 플랫폼에 고객을 묶어두는 '락인' 효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권 행장은 플랫폼을 활용해 우리은행에 고객을 묶어두기보다는 고객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말 공인인증서가 폐지되며 민간인증시장이 열리자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자체 인증서비스를 내놓거나 개발에 돌입했다.
인증서비스는 자체적으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은 아니지만 락인효과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 서비스로 꼽힌다.
시중은행 가운데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자체 인증서비스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 대신 기존 공인인증서를 개선해 금융결제원이 내놓은 금융인증서를 사용하고 있다.
금융인증서는 출시 한 달여 만에 220만 건 발급과 1400만 건 인증을 넘어섰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미 금융결제원이 내놓은 금융인증서가 있는 상황에서 각자 은행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인증서를 내놓으면 고객 입장에서 불편함만 늘어날 수 있어"고 설명했다.
오히려 권 행장은 고객 편의성을 높이는 서비스 도입에 속도를 냈다. 우리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2020년 12월15일 카카오페이와 KT와 협력해 종이우편물 발송방식을 개선한 '본인인증 기반 디지털우편발송'을 시행했다.
다양한 종이 안내장 가운데 대출금 만기 안내를 비롯한 21종에 디지털우편발송을 우선 시행하고 올해 3월부터 나머지 부분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권 행장은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일괄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이종산업과 협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KT, 한국투자증권, 롯데멤버스, 쏘카 등 플랫폼 고도화를 위한 협력사를 크게 늘렸다.
올해 권 행장이 우리은행 플랫폼 안에 기존 금융상품 외에도 이종산업과 결합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올해 우리은행은 디지털 전환을 우리은행 최우선 과제로 삼아 고객 중심으로 혁신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윤 대표를 경영전략회의에 초대한 것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경쟁사의 우수한 점까지도 배우는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권 행장의 혁신의지가 반영된 행사"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