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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입원시술을 받으면서 삼성의 미래를 놓고 국내외 시선이 이 부회장에게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그 시선에 기대보다 불안감이 짙게 깔려있다. 그 불안한 눈길은 국내외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 회장이 쌓아올린 삼성이라는 글로벌기업을 이 부회장이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의구심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부회장이 거대 선단인 삼성을 이끌 정도로 능력이 검증되었느냐는 의문이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영국 BBC방송은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면서 "삼성전자는 미국의 애플을 제치고 세계 최대 스마트폰 생산회사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또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이 회장이 1987년 삼성전자 경영권을 승계한 이래 주가가 130배 이상 상승했다”며 “지난해 삼성그룹 전체의 매출액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불안감을 전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삼성 인사들은 이 부회장이 23년 동안 핵심사업 관리를 이끌어왔다고 평가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삼성그룹 회장을 잇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불안한 시선은 삼성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삼성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하지만 삼성의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도 내놓은 적이 없다. ‘은둔의 후계자’ 같은 모습이었고, ‘묵언’에 가까운 경영수업을 받는 것처럼 외부에 비쳐졌다.
이 부회장에 대한 불안한 시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2012년 삼성전자 부회장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삼성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심의 시선이 만들어졌다. 그런 만큼 삼성에게 이런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개의 기업들은 후계자를 내정하면 그 후계자의 능력을 포장해서라도 알리려 한다. 그래야 경영권 승계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03년 이 부회장을 대동하고 스웨덴 발렌베리가문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찾은 적이 있다. 그는 당시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을 만나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경영권 승계방식을 벤치마킹했다.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재용체제로 전환을 눈앞에 둔 지금 이 부회장에 대해 불안한 시선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삼성은 왜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방치’했을까?
◆ 이재용에 대한 불안한 시선의 뿌리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는 전망은 오래됐다. 이 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가 될 때부터 이미 삼성의 후계자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부회장이 2012년 삼성전자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 경영권 승계는 본격화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당시 논평을 내서 "이재용 사장의 경영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며 “그룹 차원의 기획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한 결과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이건희 회장은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그 존경이 자동으로 그의 아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BNP파리바은행의 피터 유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불안한 시선은 한마디로 집약하면 이 부회장이 경영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경영과 비전에 대해 단 한 번도 자기 생각을 밝힌 적이 없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23년, 상무보로 승진해 임원이 된지 13년이 됐다. 그런데도 경영능력은 고사하고 이 부회장이 삼성에서 무엇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삼성을 이끌 것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의 발언은 지난 4월 중국의 보아오포럼에서 "삼성은 현재 의료분야에서 새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연구개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이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삼성그룹의 이끌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삼성의 미래와 관련한 발언은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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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이 2012년 1월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을 마친 후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과 손을 잡고 있다. |
◆ 삼성가의 전통적 후계수업방식 때문인가
이 부회장은 왜 이렇게 철저히 ‘은둔의 후계자’로 삼성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일부 인사들은 삼성의 독특한 후계수업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 회장도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을 때 똑같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유학을 마치고 삼성으로 첫 출근을 했을 때 이병철 창업자는 손수 붓글씨로 경청과 목계(木鷄)라는 글을 써 줬다고 한다. 경청은 경영자로서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들으라는 뜻이다. 목계는 나무로 만든 닭이라는 뜻인데 ‘장자’에 나온다.
싸움닭을 만드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닭이 허장성세가 심해 교만하면 싸움닭의 준비가 덜 된 것이고, 상대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모습만 보고도 싸우려 하면 그것도 훈련이 덜 된 탓이다. “상대 닭이 살기를 번득이며 싸움을 걸어도 아무 내색하지 않고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아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은 상태”가 돼야 싸움닭으로서 자질을 갖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런 교육 방침에 따라 삼성 입사 후 말수를 더욱 줄였다고 한다. 이 회장은 11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 이병철 회장의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런 삼성가의 독특한 후계자 수업방식이 이 부회장에게도 전해져 외부에서 볼 때 마치 ‘은둔의 후계자’처럼 비쳐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회장이 경청과 목계를 이 부회장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이 부회장을 항상 데리고 다닌 것은 분명하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회장은 전 세계 주요 경영인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이 부회장을 대동했다. 이 부회장은 항상 멀찍이 떨어져서 이 회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것은 이병철 회장이 이 회장에게 한 후계자 수업방식과 일치한다. 이병철 회장도 이 회장을 늘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 회장 혼자 깨달아야 했다. 이 회장이 삼성의 후계자로 지목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함께 경영현장에 나서면서 마치 풀 수 없는 퍼즐을 매일 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덧 경영 현장을 보고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회장이 뒷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가의 후계자 수업방식에 따라 스스로 '전략적 침묵'을 선택한 것이라면 이 부회장이 삼성의 수장이 된 뒤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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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 e삼성 실패의 깊은 트라우마 탓인가
하지만 이 부회장의 은둔과 침묵을 삼성가의 ‘목계’ 후계자 수업 때문이라고만 보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이 부회장은 2000년 벤처회사 ‘e삼성’을 설립해 운영했다. 이 부회장은 인터넷 붐이 한창이던 2000년 벤처회사 e삼성을 세워 32살에 최고경영자가 됐다. 이 부회장은 당시 e삼성의 성공을 통해 후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화려하게 삼성의 경영전면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고 당시 삼성 관계자들은 회고했다.
이는 삼성가의 독특한 후계 수업방식인 ‘목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회장이 11년 동안 황태자수업을 받으며 이병철 회장이 하는 일을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 부회장이 e삼성 실패 이후 삼성에 들어온 뒤 보여준 모습은 이 회장이 두 딸인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을 대한 태도와 비교해도 사뭇 다르다. 이 회장의 두 딸은 대학을 마친 뒤 각각 호텔신라와 제일모직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뒤 부장, 상무, 전무를 거쳐 사장이 됐다. 특히 이부진 사장은 대표이사로 주총에서 뚜렷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이병철 회장은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에게 신세계백화점을 맡기면서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마라”고 말했다. 이명희 회장은 지금도 이 말을 지키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이 회장이 삼성가의 독특한 후계자 수업방식인 ‘목계’를 그대로 따랐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 회장은 오히려 아들과 딸들에게 일찍이 경영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이 부회장의 e삼성의 탄생이 이 부회장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시 삼성의 두뇌격인 구조조정본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자마자 e삼성을 맡도록 해 경영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e삼성은 참혹하게 실패했다. 이 부회장이 e삼성 실패 이후 삼성에 돌아가 묵언에 가까운 경영수업을 받은 것은 e삼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이 부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이런 학력으로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첫 사업이 1년 만에 173억 원의 적자를 내고 문을 닫았다. 이 부회장은 당시 크게 낙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과 이 회장의 측근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경영전면에 나섰다가 실패하면 경영권 승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14년 동안 이 부회장을 감싸고돌았을 수 있다. 그 결과 이 부회장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잉태됐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을 계속 온실 속에 가둬놓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소신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계속 온실 속에서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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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
◆ 이재용의 능력에 대한 삼성의 설명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회장이 쓰러진 뒤 이 부회장에 대해 삼성의 후임자로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보도했다. 그 근거는 이 부회장의 국제적 감각이었다.
이 부회장은 2010년 부사장에 오르면서 활발한 대외업무를 통해 ‘삼성 후계자의 이미지’를 쌓는 데 주력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국제가전전시회 IFA 참석, 세계 최대의 멀티미디어 가전쇼 CES 참석 등 대외활동 스케줄을 소화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시안의 반도체공장을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고 현장안내를 맡았다. 이를 놓고 “삼성 후계자로서 이미지를 굳건히 했다”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올해 보아오포럼 이사로 선임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포함한 차세대 지도자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 부회장이 애플과 협상을 주도하는 등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물로서 세계적 인물들과 인맥을 구축해 놓고 있으며, 고객과 파트너십 강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부회장이 그동안 언론에 나온 것은 이런 모습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자라기보다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지만 스마트폰이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