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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기아자동차 노조도 파업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아차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합법적 파업 요건을 갖췄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동반 파업을 벌일 공산이 커졌다.
윤여철 부회장이 주도하는 현대차그룹의 노무관리 능력도 시험대에 올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윤여철 부회장 중심의 팀이 그룹의 노무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각 사업장마다 임단협 교섭을 진행하지만 그룹 전체의 노사관계는 윤여철 부회장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윤 부회장에 대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신임도 매우 두텁다.
하지만 윤 부회장이 2013년 복귀한 뒤 2014년에 이어 올해도 파업사태가 빚어지면서 윤 부회장이 주도하는 ‘원칙론’이 효과를 내고 있는지 의구심도 높아지고 있다.
◆ 현대기아차 호기에 찬물 끼얹나
23일 업계에서 현대기아차가 올해 들어 모처럼 호기를 맞았지만 파업으로 자칫 기회를 날려 보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한동안 판매 부진을 이어가던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8월 역대 최고 판매량 기록을 세우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기아차를 한동안 괴롭히던 환율 여건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이 오르면서 주요 자동차시장에서 일본차와 경쟁을 벌이는 현대차의 가격경쟁력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까지 엔저를 등에 입은 일본 자동차회사의 공세에 밀려 고전해 왔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주력 차종의 신차도 계속 내놓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9월 출시된 신형 아반떼와 신형 스포티지가 초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의 파업 등 노사갈등이 자칫 장기화될 수도 있어 우려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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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현대차 노조 집행부의 임기는 9월30일 종료된다. 회사가 새 노조 집행부가 꾸리는 교섭대표와 임단협을 다시 진행해야 하는 만큼 12월이 돼야 교섭이 재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2014년에도 임금협상이 최종 타결되기까지 8월과 9월 총 6차례에 걸쳐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파업이 올해도 이렇게 길어지면 생산차질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특히 신형 아반떼와 신형 스포티지 등 신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현대기아차의 올해 판매량은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신차는 출시 초반 주문이 가장 많이 몰린다. 파업으로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바로 매출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신형 아반떼는 사전계약 기간 하루 평균 500대 정도 계약이 이뤄졌고 9일 정식 출시된 뒤에는 하루에 650대 이상 계약되며 총 1만 대 판매를 앞두고 있다. 신형 스포티지도 영업일수 14일 만에 누적 계약대수가 7천 대를 넘어섰다.
신형 아반떼와 신형 스포티지 판매량은 올해 현대기아차가 내세운 판매목표 820만 대 달성을 좌우하게 된다.
◆ 이삼웅 사장 퇴진 부른 파업 리스크
현대차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진행된 파업으로 입은 생산손실은 모두 3조6464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현대차는 2012년 1조7048억 원(손실대수 8만2088대), 2013년 1조225억 원(5만191대), 2014년 9191억 원(4만2293대)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노조의 파업은 파급력이 크다. 자동차 생산공정은 라인이 한 번 서면 타격이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삼웅 전 기아차 사장은 2014년 임단협 타결과 동시에 파업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전 사장은 신형 쏘렌토와 신형 카니발 등 신차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을 막지 못했다. 고객들의 출고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만이 높아진 데 대한 책임을 졌다.
기아차는 당시 임단협을 타결하는 데 152일이나 걸렸다. 현대차보다 한 달이나 더 끌었다.
이 전 사장의 퇴진은 당시 800만 대 판매목표 달성을 향해 질주해 가던 정몽구 회장이 노조의 파업에 더 이상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 윤여철의 노사관계 문제 없나
현대기아차 노조관계의 중심에는 윤여철 부회장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차가 노조를 향해 “법대로 하자”며 원칙을 강조하는 것 윤 부회장의 방침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윤 부회장은 노사관계에서 원칙을 고수하지 않으면 노조에 마냥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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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 |
정몽구 회장은 이런 윤 부회장의 원칙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부회장은 2014년 통상임금을 놓고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며 “파업을 해도 통상임금 확대는 불가하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윤 부회장은 2013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복귀하면서 “파업에 밀려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이번에 또 흐지부지 넘어가면 노조의 잘못된 습관을 영영 고치기 힘들어지는 만큼 단호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원칙론이 현대차와 기아차의 노사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풀어내기보다 더욱 꼬이게 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윤 부회장의 기조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현장에서 실제 협상에 나서는 윤갑한 현대차 사장 등을 비롯한 각 계열사 실무진의 협상력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종석 기아차 노조위원장은 7일 윤 부회장을 겨냥해 “현대차그룹은 양재동 본사에서 그룹 계열사의 노무관리를 총괄하면서 각 회사의 노사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하향평준화를 통해 이윤만 챙기는 그룹 총괄 노무관리 방식을 폐기하고 각 회사별로 자율교섭권을 보장해 단체교섭에 성실히 응하라”고 주장했다.
기아차 노조는 2014년에도 “윤 부회장이 노사자율권을 침해해 기아차 단체교섭이 파국에 이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꼬여버린 비정규직 문제
윤 부회장은 현대차의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차는 최근 비정규직 노조와 협상 끝에 비정규직 6천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내용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이 합의안이 조합원 대상의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현대차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10년 만에 마무리될 것 같았으나 다시 엉켜버린 것이다.
윤 부회장은 그동안 “비정규직 파견근로 문제는 돈이 아니라 노동의 문제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현대차는 대법원 상고와 헌법소원 등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현대차는 대법원이 1심 판결을 유지할 경우 불법파견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쓰게 되는 데다 원고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소급적용해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노조 찬반투표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은 “합의안 찬성은 회사 측에 불법파견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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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철 부회장이 현대차 사장이던 2008년 9월29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1층 아반떼룸에서 열린 2008년 임협 조인식에서 윤해모 당시 현대차 노조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 윤여철 “나는 죽었다가 산 사람”
윤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노사관계에서 정 회장의 ‘오른팔’로 통한다.
윤 부회장은 1952년생인데 평사원으로 입사해 부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입사한 뒤 경력의 대부분을 노무관련 부서에서 쌓았다.
윤 부회장은 2004년 현대차 노무관리 지원담당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듬해에는 사장이 됐다. 그 뒤 2008년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윤 부회장은 2009년부터 3년 연속 현대차의 무파업을 이끌어 냈지만 2012년 초 울산공장에서 노조원 분신사망 사건이 일어나면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윤 부회장은 1년4개월 만인 2013년 5월 정몽구 회장의 부름을 받고 복귀했다.
윤 부회장은 당시 임단협을 벌이는 와중에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라며 “지금 죽어도 호상이니 노조 요구는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혀 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윤 부회장은 당시 임단협에서 ‘원칙 있는 교섭을 통한 새 노사관계 정립’을 최우선순위에 뒀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