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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뉴시스> |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검찰의 칼 끝 앞에 섰다.
최 회장은 올해 12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연임을 거쳐 8년 회장 수행을 명예롭게 마치기 일보직전에 불명예 퇴진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농협중앙회장은 영욕의 자리다. 농업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러나 민선으로 뽑힌 농협중앙회장의 끝은 좋지 않았다. 민선 회장 3명이 모두 구속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정부 인사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위기를 헤쳐나와 유종의 미를 거두는 듯 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제 바람 앞에 선 촛불 같은 처지가 됐다.
◆ 최원병, 비리의혹 갈수록 커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3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NH농협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해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29일에도 리솜리조트그룹 본사와 계열사 4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신상수 리솜리조트그룹 회장 등의 횡령혐의를 수사하다가 최 회장이 NH농협은행의 리솜리조트그룹 대출에 외압을 가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신 회장이 횡령한 자금을 이용해 최 회장 등에게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NH농협은행은 10년 동안 리솜리조트그룹에 1649억 원을 대출했다. 리솜리조트그룹은 2005년 자본잠식에 빠졌으며 2012년부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놓였다. 자본잠식은 회사의 순자산이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다. 자산보다 빚이 많으면 완전자본잠식이 된다.
검찰은 30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국조형리듬종합건축사무소 등 3곳도 압수수색했다. 이 건축사무소는 최 회장의 친인척이 고문으로 일하는 곳이다.
한국조형리듬종합건축사무소는 최 회장이 취임한 2007년 12월 이후 하나로마트 등 농협중앙회 산하 유통시설과 매장 공사를 여러 차례 따냈다.
검찰은 한국조형리듬종합건축사무소가 이 과정에서 공사비를 과도하게 제시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이 비자금 가운데 일부가 최 회장의 친인척에게 고문료 명목으로 지급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리솜리조트그룹과 한국조형리듬종합건축사무소에서 압수한 자료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이 회사들이 농협중앙회 인사에게 대가를 주고 특혜대출과 사업물량을 수주받았는지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이 최 회장의 비리혐의에 대해 수사하면서 농협중앙회의 비리를 전면적으로 파헤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은 올해 들어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민영진 전 KT&G 회장 등 이명박 정부와 연관된 인사들의 비리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 5년 후배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MB정부 측 인사들과 친분이 깊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중앙회는 한국조형리듬종합건축사무소에서 일한다는 최 회장의 친인척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며 “리솜리조트그룹의 경우도 농협중앙회와 NH농협금융지주가 분리된 이상 최 회장이 은행의 대출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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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대문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 '농협 창립 5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우수한 업적을 올린 직원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
◆ 최원병의 8년, 농협중앙회의 빛과 그림자
최 회장은 농협중앙회 개혁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 4월에도 “정부가 금융개혁을 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중앙회는 최 회장의 이런 방침에 따라 3월 전국 각지의 농협, 축협, 산림협 협동조합 1326개의 조합장 선거를 한날한시에 치렀다.
농협중앙회는 그동안 각 지역조합에 따라 선거를 다른 날에 실시했다. 이 때문에 선거과정에서 ‘선거비용 5억 원을 쓰면 붙고 4억 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말이 돌 정도로 무수한 비리가 발생했다.
최 회장은 2011년 농협법 개정안에 지역조합장 선거를 같은 날 한꺼번에 진행한다는 방안을 넣어 선거비리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올해 선거는 농협법 개정 뒤 처음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이번 선거기간에 입건된 농협 조합원만 288명에 이른다. 당선된 조합장 가운데 약 16%도 선거법 위반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최 회장이 업적으로 꼽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최 회장은 2012년 농협법을 개정해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을 NH농협금융에, 경제사업을 농협경제지주에 이관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농협경제지주는 조합원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파는 판매농협 구현에 최선을 다하고 NH농협금융은 수익센터 역할을 더욱 강화해 농업인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NH농협금융은 총자산 317조 원으로 국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하나다. 농협경제지주도 국내 최대규모의 농산물 유통기업 농협하나로유통을 거느린 종합기업이 됐다.
그러나 최 회장이 자회사의 경영에 지나치게 관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협중앙회가 농협법에 따라 두 지주자회사의 경영을 지도감독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규 전 NH농협금융 회장은 최 회장 측과 충돌한 끝에 중도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룡 전 회장과 김용환 회장도 선임과정에서 농협중앙회와 완만하게 관계를 맺어갈지가 중요한 잣대로 꼽혔다.
최 회장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농협중앙회의 수익확대에 치중해 조합원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불만도 현장에서 제기된다.
최양부 농협바로세우기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최근 한 신문칼럼에서 “농협중앙회는 거대한 NH금융인 동시에 농민조합원에게 갑질을 하는 신용과 판매유통기업”이라며 “관료보다 더 폐쇄적인 이익집단이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집단이 됐다”고 비판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이런 비판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농업인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농협중앙회장의 흑역사
최 회장도 농협중앙회 민선 회장이 검찰수사를 받는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최 회장은 2007년 12월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나섰을 때 “농협중앙회를 비리의 온상이라고 비판하는 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임자 회장 3명이 모두 횡령이나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점을 거명한 것이다.
첫 민선 회장인 한호선 회장은 1994년 3월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한 회장은 농협중앙회 예산을 전용해 4억8천만 원 규모의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비자금 가운데 4억1천만 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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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
2대 회장인 원철희 회장도 재임기간에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1999년 4월 구속됐다.
원 회장은 업무추진비 6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이 비자금을 한 전 회장의 지방자치단체 선거자금으로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3대 회장인 정대근 회장은 임기도중에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2006년 5월 구속됐다.
정 전 회장은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전 사옥을 현대자동차에 팔면서 시세보다 700억 원을 덜 받았다. 정 회장은 이 대가로 3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정 회장은 2006년 농협중앙회의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 대가로 50억 원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농협중앙회 자회사였던 휴켐스를 매각할 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뇌물 20억 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았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