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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와 SKC&C 합병반대 국민연금, '식물주주' 오명 벗나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5-06-24 17: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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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와 SKC&C 합병반대 국민연금, '식물주주' 오명 벗나  
▲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국민연금이 ‘뜻밖의’ 목소리를 냈다. SK와 SKC&C 합병에 반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위원회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산하의 민간기구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기업들의 주주이면서도 주총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아 ‘식물주주’라는 오명도 들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최근 주요 그룹에서 지배구조 개편 등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민감한 사안들이 늘어나자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위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을 놓고 의사결정을 할 때 여론을 폭넓게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변화들이 주요 그룹의 투명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질지 주목된다.

◆ 국민연금, 외부의견에 귀 기울이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24일 회의에서 SK와 SKC&C 합병을 위한 임시주총에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두 회사 합병주총은 26일 열린다. 국민연금은 SK 지분 7.19%를 보유한 2대주주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SK와 SKC&C의 합병을 반대하는 이유로 “합병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 공감하나 합병비율과 자사주소각시점 등을 고려할 때 SK의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SK와 SKC&C는 4월20일 합병을 결정했다. SKC&C가 SK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SKC&C대 SK의 합병비율은 1대 0.74로 정해졌다.

이번 국민연금의 결정은 최태원 회장 일가에 유리하도록 합병비율이 책정됐다는 일각의 비판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결정을 맡긴 것도 최근 대주주 일가를 위한 합병추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외부출신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합병 찬반결정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후폭풍을 피하겠다는 뜻이다.

SKC&C와 SK의 합병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주주인 최 회장의 경영권 강화라는 목적뿐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합병비율이 기업가치에 맞도록 공정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합병시점 역시 최 회장에 유리하도록 SKC&C 주가가 높은 상황에서 결정됐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SK그룹은 자본시장 관련 법률에 따라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합병을 진행해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최근 오너를 위한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에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이번 SKC&C와 SK 합병에 대한 찬반결정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맡긴 것도 외부의 의견을 듣고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국민연금의 이런 변화에 대해 기업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주요 경영전략을 짜는 데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며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을 따지기보다 여론만 의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안도 제 목소리 낼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총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방향을 가늠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SK와 SKC&C의 합병을 반대하는 이유로 SK의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를 들었다.

이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도 국민연금이 비슷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 확보라는 목적을 떠나 합병비율에서 삼성물산의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시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1대 주주로 10.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엘리엇매니지먼트 상대 세대결에서 국민연금의 찬성표가 절실하다. 국민연금의 결정은 국내 연기금의 표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SK와 SKC&C 합병반대 국민연금, '식물주주' 오명 벗나  
▲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고민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질 경우 재벌 오너 승계를 돕기 위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반대에 나서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외국 투기자본의 편을 들었다는 논란이 일 수 있고 주가하락에 따른 수익률 악화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삼성물산 합병주총을 앞두고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이번 안건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

◆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어떤 곳인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이 2006년 3월 국민연금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 의결권 행사 내역과 지침변경 등을 보고한다.

이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비롯해 모두 9명 이내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현재 김성민 한양대학교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교수와 황인태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지역가입자단체 추천으로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근로자단체 추천으로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와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 사용자단체 추천으로 조영길 아이앤에스 법무법인 변호사와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정부 추천으로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과 박창균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등이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금운용위원장이나 의결권행사전문위원장이 필요한 경우 회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번 SK와 SKC&C 합병 안건처럼 기금운용본부가 찬반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회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회의는 통상 주주총회 직전에 여는 일이 많다. 그만큼 안건에 대한 여론의 향배가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국민연금, '식물주주' 오명에서 벗어나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국내 주요기업들의 사실상 주요 주주이면서도 주총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장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권리 행사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민연금 반대율은 9.4%다. 기관투자자의 반대율 1.4%보다 7배 가량 더 높다.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국민연금이 합병이나 영업양수와 관련해 안건에 올린 것은 14건이다. 이 가운데 반대 또는 기권은 3건에 불과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친 3건의 안건은 모두 반대표가 나왔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기업경영과 관련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지난 3월 현대자동차 등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을 심의하고 현대모비스와 기아자동차 사외이사 2명의 재선임안에 반대의결권 행사를 결정했다. 현대차 컨소시엄이 한국전력 부지 매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지난해 7월 만도의 인적분할에 대해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했다. 또 2013년 1월 동아제약 회사분할 안건에 대해 비상장법인으로 박카스 사업부를 넘기는 데도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했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2012년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반도체 사내이사를 선임한 데 대해 ‘중립의견’을 내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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