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이 3명의 오너들은 공통점이 있다.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로 내몰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운명은 사뭇 다르다.
강덕수 전 회장은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며 실패한 경영인에 더해 범죄자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썼다.
김준기 회장은 모태기업인 동부건설의 경영권을 잃는 등 제조계열사는 산산조각났다. 현재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를 중심으로 동부그룹을 다시 세우고 있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모태기업인 금호고속을 되찾았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도 품에 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을까? 재계에서 시대적 상황이 다른 탓도 있지만 막강한 인맥을 동원한 로비력이 운명을 갈랐다는 말이 나온다.
◆ 강덕수, 실패한 경영인에 범죄자 덧씌여져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횡령과 배임, 분식회계 혐의로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강 전 회장은 인수합병을 통해 STX그룹을 재계 12위까지 올려놓으며 한때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하지만 무리한 투자로 글로벌 경기불황의 후폭풍을 극복하지 못한 채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강 전 회장은 2013년 STX그룹 구조조정 당시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에서 모두 물러났다.
당시 STX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STX조선은 워크아웃보다 채권단의 개입단계가 낮은 자율협약단계였다. 이 때문에 당시 재계에서 강 전 회장의 경영권은 보장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
|
|
▲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
특히 산업은행이 과거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는 데다 조선업의 특성상 위기극복을 위해 강 회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 강 전 회장도 보유주식을 대부분 회사에 내놓고 백의종군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강 전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채권단은 STX조선의 대주주에 대한 100대 1 감자를 실시해 강 전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그 뒤 강 전 회장이 사퇴하자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를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당시 두 사람에 대한 잣대가 너무 다르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산업은행은 “박 회장이 22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강 회장은 그렇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 김준기, 차 떼고 포 떼여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일중독이라 불릴 만큼 일을 많이 하는 오너로 알려져 있다.
이런 욕심이 끊임없는 사업확장으로 이어졌고 동부그룹은 단기간에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무리한 확장으로 결국 동부그룹 전체가 흔들리게 됐다.
김 회장은 제조계열사의 양대 축이었던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을 모두 잃었다. 동부그룹의 모태인 동부건설은 무상감자로 동부그룹에서 분리된 뒤 현재 상장폐지 위기에 놓여있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동부제철 경영권도 상실했다. 동부제철은 자금난을 겪다 지난해 7월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
|
|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당시 동부그룹에서 동부제철의 경영정상화 방안이 김 회장 일가에게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며 박삼구 회장에게 했던 것처럼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채권단은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사재출연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해 김 회장과 다르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채권단은 김 회장이 동부제철 경영정상화에 기여할 경우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동부제철 경영권을 잃은 직후 “그동안 회사 경영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 왔으며 차입금 1조3천억 원에 대해 개인보증을 섰고 전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며 채권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났다.
◆ 강덕수 김준기와 다른 박삼구
박삼구 회장은 강덕수 전 회장이나 김준기 회장과 달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구조조정에 들어간 직후부터 최근까지 산업은행이 유독 박 회장에게 관대하다는 말이 나돌았다. 동부그룹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예를 들어 동부그룹에 너무 야박하게 군다는 불만을 내놓을 정도였다.
박 회장은 2010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에서 회장으로 공식복귀했다.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박 회장은 2013년 8월과 2014년 3월 각각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그 뒤 박 회장은 2013년 11월 금호산업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0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경영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3년7개월 만이다.
그 전에도 박 회장이 채권단의 암묵적 동의 아래 금호산업의 경영권을 행사해 왔지만 법적 지위까지 부여받은 것이다.
박 회장이 주력 계열사를 되찾으려 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특혜의혹이 일었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박 회장이 금호고속의 인수주체로 금호산업을 내세웠을 때에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졸업요건을 모두 충족했지만 워크아웃을 2년 연장하기도 했다. 당시 채권단이 박 회장에게 인수대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금호산업 채권단이 최근 박삼구 회장을 상대로 수의계약 카드를 스스로 꺼내든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본입찰에서 가격이 맞지 않았다면 재매각을 시도해 경쟁구도로 가격을 끌어올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최근 금호고속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며 인수주체 가운데 한 곳으로 금호터미널을 참여시켰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아직 없다. 금호터미널은 금호산업의 손자회사다.
|
|
|
▲ 지난 2월 한국메세나협회 제9대 회장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선임되자 박삼구 회장(왼쪽)이 제8대 박용현 회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
◆ 박삼구의 거미줄 인맥
박 회장이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박 회장의 인맥이 꼽힌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2세로 정재계에서 마당발로 유명하다. 박 회장은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총재를 지낸 이정환 전 재무부장관의 차녀와 결혼했다.
박 회장뿐 아니라 박 회장의 형제들 등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재벌, 정관계 인사들과 혼맥으로 얽혀있다.
박 회장의 혼맥을 보면 LG그룹, GS그룹, 두산그룹, 대우그룹, 해태그룹, 동국제강, 대상그룹, 일진그룹, 삼화고속 등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녀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국회의원 출신은 물론이고 김앤장 변호사 등 법조계 인맥도 있다.
박 회장도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여 인맥을 넗혀 놓았다.
박 회장은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중우호협회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 한국프로골프협회장, 한국메세나협회 회장, 연세대학교 총동문회장 등을 지냈거나 지내면서 정재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아왔다.
금호산업 인수전에 아무도 뛰어들지 않은 이유로 박 회장의 인맥이 꼽힐 정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금호산업은 박삼구 회장의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욕심을 부려 괜히 여러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전에 앞서 10년 만에 그룹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측근들을 전진배치하는 등 로비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