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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충청 대망론, 이완구 성완종의 비극적 운명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5-04-15 17: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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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충청 대망론, 이완구 성완종의 비극적 운명  
▲ 이완구 국무총리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사태로 궁지에 몰리면서 충청 대망론도 무너졌다.

충청 대망론을 불붙인 정치인 이완구 총리와 충청을 대표하는 기업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운명을 바라보는 충청권의 민심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 총리는 후보자 인준과정에서 난항을 겪긴 했으나 이를 통과해 총리에 올랐다. 이 총리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에 오르자 이른바 충청권 대망론도 불붙었다.

그러나 이 총리는 불과 두 달 만에 총리직은 물론이고 정치생명마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이 총리는 부패와 전쟁을 선포하며 사정정국을 주도했으나 휘두른 칼끝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충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 자살하면서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들고 말았다.

◆ 이완구, ‘주연’ 바라는 충청인들의 꿈 배반

이 총리는 지난 2월 국무총리에 지명돼 이른바 ‘충청권 대망론’에 불을 지폈다. 충청 대망론은 충청권 인사가 정권을 창출해 주연으로 발돋움하려는 꿈이다. 더 이상 조연의 역할에 머물지 않겠다는 충청인들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총리는 대통령을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충청권의 한을 풀어줄 기대주로 주목받으며 일약 ‘잠룡’의 반열에 올라섰다.

대전일보가 지난 2월12일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는 대전·세종·충남지역의 가장 기대가 큰 충청의 인물 가운데 18.1%를 차지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29.8%, 안희정 충남지사 27%에 이어 3번째였다.

차기 대선주자를 묻는 조사에서 이 총리는 반기문 총장에게 밀렸으나 야권의 충청권 맹주로 떠오른 안 지사를 2% 가량 격차로 따돌렸다.

이완구 총리 카드는 박근혜 정부에서 줄곧 ‘조커’로 여겨졌다. 총리 지명과 관련해 유독 트라우마가 컸던 데다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으로 국정난맥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내놓은 회심의 한수였다.

이 총리가 충청권 출신 인사인 데다 3선의 의정활동 경험, 충남도지사로 행정능력과 지역적 명망 등을 고루 갖췄다는 점에서 단번에 상황을 역전시킬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총리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막말파문이 터져나오면서 낙마위기까지 몰린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에 충청민심이 크게 작용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당시 “국민통합을 위해 호남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데 아쉽다”며 호남 총리론을 내세웠다가 결국 한 발 물러난 것도 충청권 민심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실체적 진실을 떠나 정치적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충청 대망론에서 멀어지고 만 것이다.

이 총리에 대한 충청인들의 배신감 또한 더없이 클 수밖에 없다.

◆ 충청 대망론, 이대로 물 건너 가나

충청 대망론은 우리 정치사의 고질적 병폐인 영호남의 지역갈등 구도를 깨뜨릴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돼 왔다. 3김 정치를 이끌었던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를 비롯해 이인제 이회창 심대평 안희정 등도 이런 후광에 힘입어 정계의 거물이 될 수 있었다.

과거 충청권은 영남의 패권주의와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영호남을 가르는 지역주의 프레임이 고착되면서 ‘충청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명제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충청도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1997년 DJP연합으로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지지를 받은 김대중 후보가 대전, 충남, 충북에서 압도적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충청표는 김대중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충청권은 수도이전을 공약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또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충청권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보였다.

이 총리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면서 충청 대망론을 실현해 줄 잠재적 후보구도에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반기문 총장과 이완구 총리, 안희정 도지사 3인방이 충청권의 유력주자로 주목을 끌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노무현의 남자’로 유명세를 얻어 야권에서 충청도를 대표하는 차세대 리더로 손꼽힌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은 "대선에 관심 없다"고 여러 차례 못 박았음에도 충청도에서도 한 번쯤은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 속에 여전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밖에 6선 의원 경력의 이인제 최고위원도 영향력있는 충청권 출신 인사로 여전히 주목받는다. 하지만 이 최고위원은 안 도지사나 반 총장에 비해 구시대 정치인 이미지가 강해 충청 대망론을 이끌기가 쉽지 않다.

  무너진 충청 대망론, 이완구 성완종의 비극적 운명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왼쪽)이 이완구 총리(가운데)와 함께 2013년 12월 3일 당시 새누리당 세종시특별위원회 소속 위원 자격으로 세종시를 방문해 밀마루전망대에서 세종정부청사 2단계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 충청도 출신 두 거물의 아이러니한 운명


이 총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충청권을 대표하는 기업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발목이 잡혀 벼랑 끝 위기에 몰리게 됐다.

성 전 회장은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경남기업은 40년 만에 상장폐지됐다. 이 총리가 부패와 전쟁을 선포하며 대대적 사정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성 전 회장은 충청도가 배출한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가’이자 ‘마당발 정치인’이었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으로 신문배달 등을 전전해 사업을 시작했고 2조 원 규모의 경남기업을 일궜다.

성 전 회장은 기업인으로 성공했으나 폭넓은 인맥으로 충청권의 ‘허브’라는 말까지 얻었다. 2000년 충청도 출신 정관계 인사와 언론인들로 구성돼 만들어진 충청포럼도 성 전 회장의 인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충청포럼 창립을 주도했으며 초대회장도 맡았다.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충청포럼을 매개로 성 전 회장과 친밀하게 지낸 인사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줄잡아 20∼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은 생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충청포럼의 멤버"라며 "차관급 이상만 10명이 넘는다"고 그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은 성 전 회장과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성 전 회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친동생 반기상 씨가 참석해 지지발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운찬 전 총리도 선거사무소 개소에 축하메시지를 보내는 등 성 전 회장의 선거에 힘을 실어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이 이처럼 정치인맥을 형성하고 스스로 정치인으로 나선 것은 건설업의 특성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은 관급공사를 따내면서부터 경남기업을 키울 수 있었다. 정관계 로비없이 관급공사를 수주하기 어렵다는 것은 건설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이 건설회사를 운영하다보니 로비가 필요했고 여기저기 정치권을 찾다가 차라리 본인이 국회의원이 되자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이 주도해 친목단체로 만든 '충청포럼'은 현재 전국 10개 지부, 100여개 지회 아래 3500여 명의 회원을 둔 거대조직이 됐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의 1년 선배다. 이 총리는 1950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으며 성 전 회장은 1951년 충남 서산 출생이다. 두 사람은 16대 국회 당시 같은 자민련 소속으로 일하면서 깊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총리가 충남도지사 시절 경남기업이 태안군 안면도 개발사업 입찰에서 탈락하자 소송을 벌이면서 관계가 불편해졌다.

이 총리는 지난 9일 성 전 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집무실에서 TV 뉴스를 지켜보며 침통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충청권 정관계와 경제계에서 막강한 위상을 떨쳤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은 고인이 됐으며 또 한 명은 현직 총리 사상 처음으로 검찰수사 대상에 올랐다.

성 전 회장은 이 총리를 향해 “당해야 할 사람이 자기가 사정하겠다고 소리지르고 있는 우리 이완구 총리같은 사람, 사정대상 사실 1호"라고 했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에 대해 “같이 함께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소원하지도 않았지만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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