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210조 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대규모 전력망 구축을 앞두고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돌파구를 찾는 데 분주한 모양새다.

한전은 한전채 발행 한도 특례가 2027년 종료되는 만큼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으로 대형 기업고객 중심의 전기료 선납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 '73조' 전력망 구축 자금 마련 분주, '한전채 절벽' 앞두고 전기료 선납 카드로 돌파구 모색

▲ 210조 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대규모 전력망 구축을 앞두고 투자 재원 마련 돌파구를 찾는 데 분주한 모양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4일 한전에 따르면 ‘대규모 전기요금 선납 특례’ 신설을 추진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외에 다른 대형사로도 선납금 제도를 확대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전은 고객이 선수금 명목으로 전기요금을 미리 내고 정기예금 수준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요금 선납을 제안했다.

삼성전자가 20조 원, SK하이닉스가 5조 원을 선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선납금 규모는 두 회사가 지난해 납부한 전기요금이 각각 4조1천억 원, 9천억 원이라는 점을 기반으로 산정됐다.

전력망 구축을 통해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하는 과제가 무거운 한전이 투자비를 마련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방안으로 읽힌다.

정부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호남과 용인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데 전력수요가 늘면서 전력망 구축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관련 산업단지에는 20GW(기가와트)에 이르는 대규모 전력망 구축이 요구된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확보한다는 이재명 정부 목표도 전력망 구축 수요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전은 정부가 제시한 방침에 따라 2038년까지 모두 73조 원을 투입해 전력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한전은 부채가 210조 원을 넘어설 만큼 재무 부담이 큰 상황에 놓여있어 대규모 투자 재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부도 한전의 재무 부담을 덜고 전력망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내년 예산안에는 한전을 대상으로 모두 8500억 원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한전 현금 출자에 5000억 원, 전기요금 복지 할인 지원에 3500억 원을 배정했다.

정부가 한전에 대규모 현금 출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취약계층의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복지 제도도 그동안 정부가 아닌 한전 자체 예산으로 집행돼 왔는데 이번에는 전체 지원금 7천억 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3500억 원을 정부가 부담한다는 점에서 한전으로서는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에 따른 비용 보전과 전기요금 할인 규모가 2조8천억 원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지원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한전의 재무 부담을 낮추려면 자본 확충을 바탕으로 사채 발행 여력을 확보할 필요가 크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전 '73조' 전력망 구축 자금 마련 분주, '한전채 절벽' 앞두고 전기료 선납 카드로 돌파구 모색

▲ 한전의 재무 부담을 낮추려면 자본 확충을 바탕으로 사채 발행 여력을 확보할 필요가 크다. 사진은 지난 8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가운데)이 한국전력공사 경인건설본부에서 ‘호남권·용인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전력공급 협약식’을 가진 뒤 김용관 삼성전자 사장(오른쪽), 염성진 SK하이닉스 사장과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한전의 자금조달 부담을 덜기 위해 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에서 5배로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하지만 해당 특례가 2027년 말 종료되면 2028년부터 발행 한도가 다시 2배로 줄어드는 만큼 저부의 현금 출자 지원만으로는 사채발행한도가 줄어드는 것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2027년 말로 예정된 사채발행한도 배수 한시적 완화 조치의 일몰을 대비한다면 2026년 2분기 말 기준 11조 원가량의 추가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단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선납금 제도가 다른 대형 고객사로 확대될 경우 전력망 투자의 안정적 재원 조달 방안으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

2024년 기준 산업용 전력다소비 상위 20대 법인의 전력 사용량은 8만4741GWh(기가와트시)로 같은 해 전국 주택용 전력사용량 8만6989GWh의 97.4%에 이른다.

같은 해 상위 20대 법인이 낸 전기요금은 약 14조 원 규모로 앞서 한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제안한 5년치로 환산할 경우 모두 70조 원으로 전체 전력망 투자금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

한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전기요금 선납을 제안했으며 현재 구체적 조건을 조율하고 있는 상태”라며 “선납제는 한전에는 새로운 재원 조달 수단이 되고 기업으로서는 대규모 공장 건설에 필요한 전력망 구축 지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경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