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마음] 경지에 도달한 이들의 마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

▲ 우리는 왜 한 분야의 전문가를 볼 때 감탄하게 된다. 사진은 김성호 칠장이 충북 청주 공방에서 옻칠 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오랫동안 잘 쓰던 가방의 지퍼가 얼마 전 완전히 고장났다. 어디서 고쳐야 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귀찮음에 밀려 그대로 방치해두고 지내던 어느 날, 동네의 작은 구둣방 앞을 지나다 갑자기 가방 생각이 나서 문을 열고 물었다.

“혹시 가방 지퍼 같은 것도 고쳐주시나요?”
“그럼요. 아무 때나 오세요.”
“그런데 진짜 완전히 망가졌는데요. 하하.”
그러자 주인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못 고치는 거면 어차피 아무도 못 고치는 거니 편하게 가져오세요.”

또 최근에는 무릎에 염증이 심하게 생겨 물이 찬 적이 있었다. 친구가 일하는 병원에 갔더니 너무나 익숙한 동작으로 안에서부터 밖으로 원을 그리며 무릎을 소독한 뒤, 굵은 주삿바늘을 넣어 안에 차 있던 제법 많은 양의 관절액을 뽑아냈다. 친구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동작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 시술은 아마도 그날 친구가 한 일 가운데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을 만큼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근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두 프로에게 연달아 작은 경외심을 느꼈다.

우리는 왜 한 분야의 전문가를 볼 때 이토록 감탄하게 될까?

유능함 그 자체가 주는 매력이 가장 크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일단 프로는 어려운 일을 쉬워 보이게 한다. 처음 해보는 사람의 행동에는 머뭇거림이 많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손의 위치를 확인하고, 잘못했는지 돌아본 뒤 다시 고친다. 숙련된 사람에게서는 그런 중간 과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행동이 바로 나오고, 쓸데없는 움직임도 적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는 예측가능성과 의외성이 함께 있다. 뛰어난 축구선수라면 공을 어떻게든 잘 처리하리라는 믿음이 있지만, 모두가 길이 막혔다고 생각한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패스를 보내거나 직접 슛으로 골문을 연다. 뛰어난 재즈 연주자는 곡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음으로 다음 마디를 이어간다. 결과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바로 전까지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의 태연한 움직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어 있다. 주삿바늘을 넣는 몇 초나 공을 건드리는 한 번의 움직임, 악기의 몇 마디에는 그 사람이 이전에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이 압축되어 있다. 우리는 사실 그들의 몸에 저장된 긴 시간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프로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태연함, 말하자면 하나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걸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터 우튼(Victor Wooten) 밴드에서 활동한 베이시스트이자 음악교육자인 앤서니 웰링턴(Anthony Wellington)은 숙련의 과정을 의식의 네 단계(Four Levels of Awareness)로 설명한다. 이는 학습과 숙련의 과정을 설명하는 의식적 유능감 모델(conscious competence model)과 같은 구조를 음악의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첫 번째는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Unconscious Not Knowing)다. 에어기타를 치는 사람이나 장난감 기타를 처음 손에 쥔 아이가 그렇다. 자신이 음을 맞게 짚고 있는지, 리듬이 정확한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신나게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낸다. 그래서 이 단계는 행복하다. 모르기 때문에 자유롭다.

두 번째는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Conscious Not Knowing)다. 레슨을 받고 나니 스케일도 알아야 하고, 코드도 알아야 하고, 리듬도 익혀야 한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계가 눈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부족함 역시 적나라하게 보인다. 몰랐던 것이 갑자기 많아진 게 아니라,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웰링턴은 많은 취미 연주자들이 이 단계에서 오래 머문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는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Conscious Knowing)다. 이제 실제로 잘할 수 있다. 다만 연주하면서 계속 생각해야 한다. 지금 무슨 코드인지, 어떤 스케일을 쓸지, 손을 어디로 옮길지를 의식한다. 충분히 능숙하지만 그 능숙함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많은 좋은 음악가들이 이 단계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마지막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Unconscious Knowing)다. 너무 많이 반복하고 잘 알게 된 나머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운전에 익숙한 사람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오른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웰링턴은 흥미롭게도 첫 번째와 네 번째 단계를 모두 행복한 상태라고 말한다. 첫 번째 사람은 몰라서 생각하지 않고, 네 번째 사람은 너무 잘 알아서 생각하지 않는다. 출발점에서는 아무것도 몰라 자유로웠던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하나 의식하며 배우는 길고 불편한 구간을 통과한 뒤 비로소 다시 자유로워지는 셈이다.

다만 네 번째 단계의 자유가 처음과 다른 중요한 점 하나는, 그 자유가 자기 혼자에게만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애써 얻은 자유는 다른 이에게도 전해진다. 누군가를 안심시키고, 필요한 도움을 주며, 보는 사람에게 쾌감을 안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긴장을 이미 지나온 덕분에 그 앞의 우리는 덜 긴장하고 덜 생각해도 되며, 나아가 그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농축된 한 문장은, 오래되고 진부한 바로 그 말이다.

‘프로는 아름답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