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회가 2031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단일 수치가 아닌 범위로 법제화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집약 업종의 설비투자 부담은 정부가 어느 수준의 감축률을 법률에 정하느냐에 따라 갈리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장기 감축경로의 공백’은 메울 수 있게 됐지만 2040년 목표가 69~80%로 폭넓게 설정된 만큼 기업이 저탄소 설비 전환을 언제, 어느 규모로 추진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가 범위 상단을 지향할수록 기업의 투자 시점과 비용 부담이 앞당겨지는 만큼 부문별 감축계획과 정책금융·세제지원 방안을 조속히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아래 탄소중립기본법안심사소위원회는 22일 국회에서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담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날 소위에서 의결된 개정안은 204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69~80%, 2045년 목표를 84~90%로 각각 설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53~61%로 정해진 데 이어 2040년과 2045년 목표도 하나의 수치가 아닌 범위로 규정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29일 탄소중립기본법에 2031~2049년의 정량적 감축경로가 빠져 있어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회에 2026년 2월28일까지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넘기지 않으면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담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헌재의 주문에 국회가 이번에 뒤늦게 보완입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여야 합의의 결과물인 만큼 추후 기후특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역시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범위형 목표는 온실가스를 2030년대부터 빠르게 줄여야 한다는 야권의 ‘오목형 경로’와 매년 일정한 양을 줄이자는 국민의힘의 ‘선형 경로’를 절충한 결과로 읽힌다. 여야가 감축경로의 양 끝을 모두 법률에 담으면서 헌재 결정 이행과 산업계의 현실을 함께 고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40년 하한(69%)과 2045년 하한(84%)은 2035년 하한(53%)에서 2050년 탄소중립까지 감축량을 비교적 일정하게 늘리는 선형경로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2040년 상한(80%)과 2045년 상한(90%)은 2040년대 후반으로 감축을 미루기보다 초기 감축량을 늘리는 오목형 경로에 가깝다.
다만 법률이 감축률을 하나로 확정하지 않으면서 기업이 실제로 어느 수준을 기준으로 투자계획을 짜야 하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정부가 범위 상단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하면 철강·석유화학·시멘트기업은 수소환원제철과 청정수소, 탄소포집·활용·저장 등 저탄소 공정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집행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범위 하단을 적용하면 단기 투자 부담은 줄어들 수 있지만 2040년대 후반에 남은 감축 관련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재계는 핵심 감축기술의 상용화 시점을 고려해 초기보다 2040년대 이후 감축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6단체는 6월30일 국회에 전달한 건의서에서 2040년대 이후 감축 속도를 높이는 ‘볼록형 감축경로’를 탄소중립기본법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제6단체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업종의 핵심 감축수단인 수소환원제철과 탄소포집·활용·저장, 청정수소 기술이 현재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안정적 상용화는 이르면 2040년 이후 가능할 것으로 바라봤다.
반면 시민사회는 산업계의 요구처럼 감축을 뒤로 미루면 헌재가 경고한 미래세대 부담 전가가 되풀이될 수 있다며 초기 감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범위형 감축경로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향후 정부가 마련할 부문별 감축계획과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담긴 국가 감축경로는 개별 기업의 배출권 할당량을 직접 결정하지 않지만 정부가 배출권거래제의 전체 배출허용총량과 업종별 감축률을 정할 때 상위 기준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상단에 가까운 감축경로를 배출권 할당계획에 반영하면 기업에 배분되는 배출권 총량이 더 빠르게 줄고 부족한 배출권을 구입하거나 감축설비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 집행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실제 기업 부담은 정부가 정할 업종별 감축률과 유·무상 할당 비율, 시장에서 형성되는 배출권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가 범위 상단을 지향할수록 철강·석유화학·시멘트업계가 저탄소 설비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와 초기 투자 부담도 앞당겨질 수 있다.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 업종은 고온의 열과 화석연료를 생산공정이나 원료로 사용해 발전부문의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는 온실가스를 충분히 줄이기 어려운 대표적 난감축 업종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정부가 범위 상단을 목표로 삼으려면 기업에 감축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함께 수소환원제철과 탄소포집·활용·저장 등 핵심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정책금융, 세제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산업계가 따라야 할 장기 감축경로의 ‘바깥선’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투자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다. 산업계의 투자시계를 실제로 움직일 변수는 정부가 범위 안에서 어느 수치를 정책목표로 선택하는지, 이를 배출권 할당과 에너지정책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하는지, 기업의 설비 전환비용을 얼마나 분담할지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석천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장기 감축경로의 공백’은 메울 수 있게 됐지만 2040년 목표가 69~80%로 폭넓게 설정된 만큼 기업이 저탄소 설비 전환을 언제, 어느 규모로 추진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가 범위 상단을 지향할수록 기업의 투자 시점과 비용 부담이 앞당겨지는 만큼 부문별 감축계획과 정책금융·세제지원 방안을 조속히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박지혜 탄소중립기본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소속)이 2025년 12월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제2차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아래 탄소중립기본법안심사소위원회는 22일 국회에서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담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날 소위에서 의결된 개정안은 204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69~80%, 2045년 목표를 84~90%로 각각 설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53~61%로 정해진 데 이어 2040년과 2045년 목표도 하나의 수치가 아닌 범위로 규정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29일 탄소중립기본법에 2031~2049년의 정량적 감축경로가 빠져 있어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회에 2026년 2월28일까지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넘기지 않으면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담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헌재의 주문에 국회가 이번에 뒤늦게 보완입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여야 합의의 결과물인 만큼 추후 기후특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역시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범위형 목표는 온실가스를 2030년대부터 빠르게 줄여야 한다는 야권의 ‘오목형 경로’와 매년 일정한 양을 줄이자는 국민의힘의 ‘선형 경로’를 절충한 결과로 읽힌다. 여야가 감축경로의 양 끝을 모두 법률에 담으면서 헌재 결정 이행과 산업계의 현실을 함께 고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40년 하한(69%)과 2045년 하한(84%)은 2035년 하한(53%)에서 2050년 탄소중립까지 감축량을 비교적 일정하게 늘리는 선형경로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2040년 상한(80%)과 2045년 상한(90%)은 2040년대 후반으로 감축을 미루기보다 초기 감축량을 늘리는 오목형 경로에 가깝다.
다만 법률이 감축률을 하나로 확정하지 않으면서 기업이 실제로 어느 수준을 기준으로 투자계획을 짜야 하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정부가 범위 상단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하면 철강·석유화학·시멘트기업은 수소환원제철과 청정수소, 탄소포집·활용·저장 등 저탄소 공정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집행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범위 하단을 적용하면 단기 투자 부담은 줄어들 수 있지만 2040년대 후반에 남은 감축 관련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재계는 핵심 감축기술의 상용화 시점을 고려해 초기보다 2040년대 이후 감축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6단체는 6월30일 국회에 전달한 건의서에서 2040년대 이후 감축 속도를 높이는 ‘볼록형 감축경로’를 탄소중립기본법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제6단체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업종의 핵심 감축수단인 수소환원제철과 탄소포집·활용·저장, 청정수소 기술이 현재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안정적 상용화는 이르면 2040년 이후 가능할 것으로 바라봤다.
반면 시민사회는 산업계의 요구처럼 감축을 뒤로 미루면 헌재가 경고한 미래세대 부담 전가가 되풀이될 수 있다며 초기 감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범위형 감축경로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향후 정부가 마련할 부문별 감축계획과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담긴 국가 감축경로는 개별 기업의 배출권 할당량을 직접 결정하지 않지만 정부가 배출권거래제의 전체 배출허용총량과 업종별 감축률을 정할 때 상위 기준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상단에 가까운 감축경로를 배출권 할당계획에 반영하면 기업에 배분되는 배출권 총량이 더 빠르게 줄고 부족한 배출권을 구입하거나 감축설비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 집행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실제 기업 부담은 정부가 정할 업종별 감축률과 유·무상 할당 비율, 시장에서 형성되는 배출권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29일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 한제아 학생(오른쪽)이 헌법재판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범위 상단을 지향할수록 철강·석유화학·시멘트업계가 저탄소 설비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와 초기 투자 부담도 앞당겨질 수 있다.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 업종은 고온의 열과 화석연료를 생산공정이나 원료로 사용해 발전부문의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는 온실가스를 충분히 줄이기 어려운 대표적 난감축 업종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정부가 범위 상단을 목표로 삼으려면 기업에 감축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함께 수소환원제철과 탄소포집·활용·저장 등 핵심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정책금융, 세제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산업계가 따라야 할 장기 감축경로의 ‘바깥선’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투자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다. 산업계의 투자시계를 실제로 움직일 변수는 정부가 범위 안에서 어느 수치를 정책목표로 선택하는지, 이를 배출권 할당과 에너지정책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하는지, 기업의 설비 전환비용을 얼마나 분담할지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