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전력거래소가 위원회 의사결정 구조를 개편했다. 사진은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전력거래소 본사 건물. <전력거래소>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요구해온 재생에너지 발전 당사자들의 의사결정 참여라는 방향과 거리가 있는 운영구조 개편을 단행한 셈이다.
정부가 세운 ‘재생에너지 100GW 목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재생에너지 생산 당사자들이 전력망 접속에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등 규칙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민간 발전사업자들과 전문가 사이에서 잇달아 나온다.
◆ 전력거래소 의사결정 구조, 공기업도 민간 기업도 모두 배제
23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전력거래소는 최근 규칙개정위원회를 열어 한국전력을 비롯한 발전 공기업들을 산하 위원회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규칙개정위에 더해 비용평가위원회, 계통평가위원회 등 전력거래소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곳들은 애초 발전 공기업, 정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됐는데 여기서 공기업들이 빠지게 된 것이다.
전력거래소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민간 발전사업자와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전력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신들이 전력거래를 운영하는 전력거래소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점을 고려해 국민권익위는 전력시장 운영규칙 개정 요구에 관한 민원에 대해 민간 발전사업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전력거래소에 이들의 의사결정 참여를 허용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전력거래소는 민간 발전사업자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대신 공기업까지도 운영 구조에서 배제한 것이다. 이는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원한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 23일 국내 태양광 및 풍력 발전사업자 협회 관계자들이 전력거래소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이에 민간 사업자들은 거듭 자신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력시장 운영규칙 개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23일 국내 태양광, 풍력 발전사업자 협회들은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전력거래소 본사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전력시장 운영 규칙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영위하는 민간 사업자들의 전력거래소 의사결정 참여를 재차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기업 배제로 겉으로는 형평성이 맞춰진 것처럼 보이나 민간 발전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전력거래소 내부 의사결정 방식을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현재 전력시장 운영 방식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규칙에 맞춰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구조라는 시각을 내보이고 있다.
곽영주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국가적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전력시장과 계통운영 현장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우선 수용되기는커녕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송전망 부족을 이유로 오는 9월1일부터 변전소 205곳을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해 2031년 12월까지 전력망 접속을 제한하기로 한 바 있다.
계통관리변전소란 상시적으로 전력망 접속이 제한될 수 있는 변전소를 말한다. 전력망에 들어와 있는 발전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사유로 들어 지정된다.
전력망에는 일정한 전력이 공급돼야 하는데 송전선이 포화하면 전기를 보내기 힘들어 전력망 접속 제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된 곳들은 모두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하는 변전소들이다. 이와 달리 화력발전소는 이렇다할 제한을 받지 않는다.
김명룡 전국태양광발전협회 회장은 “정부 정책을 믿고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투자한 수많은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반복되는 출력제어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과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고 있다”며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얘기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가장 먼저 멈추게 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재생에너지 100GW 목표 실효성 위해서도 전력시장 규칙 개정 필요성 커
정부는 지난달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치용량 100GW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기준 30GW가량인 재생에너지 설치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설치용량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실제 효과까지 이어지려면 전력시장 운영 규칙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력발전소를 우대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소들의 접속을 제한하는 현재 전력시장 운영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아무리 늘어도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세원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성명을 통해 “화력발전이 차지하고 남은 여유 전력망 용량 안에서만 재생에너지의 접속이 허용되고 있다”며 “이는 재생에너지의 실질적 효용을 볼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력거래소가 재생에너지를 차별하고 화력발전을 우대하는 현 규칙을 어떻게 결정한 건지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 연구원은 “현재 화력발전기는 사실상 자율적으로 설정한 최소발전용량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만 그 근거가 뭔지 알 수도 없다”며 “재생에너지가 집중된 호남, 전북, 제주 등에서는 이미 출력제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는 출력제어 증가와 경제성 악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