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미국과 무역 협상서 반도체·자동차 지켰다, 한국 정상회담 앞두고 '청신호'

▲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미국과 관세 협정에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미국과 확정한 통상 협상 초안에서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고율 관세 위협을 크게 낮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데 EU와 미국의 합의를 기준선으로 삼아 유사한 조건으로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떠오른다.

백악관이 21일(현지시각) 발표한 공동 성명에 따르면 미국은 EU 국가에서 수입하는 반도체와 의약품 등에 관세 상한선을 15%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반도체에 최대 100%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이보다 크게 낮은 관세율을 설정한 것이다.

미국과 EU는 성명에서 “최혜국대우(MFN) 관세와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 따른 관세를 합산한 (최종) 관세율이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측은 EU 국가에서 수입하는 자동차에 15% 관세를 적용하는 내용도 공동 성명에 담았다. 지금까지 EU는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때 27.5%의 관세를 내야 했다.

EU가 입법 절차를 시작하는 달의 첫날부터 자동차 관세 15%가 소급적용될 것이라는 내용도 성명에 담겼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로이터에 “EU 집행위는 이달 말까지 제안을 제출할 것”이라며 “자동차 관세를 8월1일부터로 소급해서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EU가 미국산 공산품에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고 미국산 농수산물에 우대 조치를 입법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EU가 미국으로부터 이끌어 낸 이번 합의는 한국과 미국에도 기준선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한국과 미국은 7월31일 무역 합의를 도출했고 8월25일로 예정된 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문을 발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이와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하지 않아 한국은 대미 자동차 수출에 여전히 25% 관세를 내는 중이다. 그러나 합의문을 발표하면 한국도 관세 인하가 소급적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라이언 마제러스 전 미국 상무부 관료는 로이터를 통해 “EU가 체결한 협정은 한국이나 일본이 미국과 최종 합의에서 참고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EU 미국과 무역 협상서 반도체·자동차 지켰다, 한국 정상회담 앞두고 '청신호'

▲ 7월31일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항구에서 트럭들이 화물 컨테이너를 운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미국과 관세 협상 과정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품목에 최혜국 대우 약속을 받아냈다. 

최혜국 대우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다른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부여하는 무역 원칙이다. 

EU가 이에 따라 반도체 관세 상한선을 15%로 설정할 수 있게 된 만큼 한국에도 이런 조치가 적용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최대 100% 세율이 매겨질 우려를 벗을 수 있다.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7월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관세 협상과 관련한 브리핑을 통해 “추후에 반도체나 의약품에 품목 관세가 있으면 다른 합의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같은 수준의 최혜국 대우를 받는 것으로 (무역 합의에) 적시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최종 합의문에서 EU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가능성도 떠오른다. 조선 역량을 갖춘 한국이 EU와 비교해 미국에 필요한 카드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 해양 경쟁을 위해 자국 조선 산업을 재건해야 하는 입장이다. 중국과 세계 1위를 두고 경쟁하는 한국 조선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HD현대와 한화오션 등 한국 기업은 이미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선박 수주를 맡고 있다. 최종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 추가 투자와 협력 등을 지렛대 삼을 수 있다. 

미국이 자국의 원자력 발전소를 늘리는 작업에 한국의 적극 참여를 희망한다는 점도 협상 카드를 늘리는 요소이다. 

한국 원자력 기업이 시공 능력에 장점을 갖춘 만큼 미국의 요구를 들어 주면서 통상 협정에 유리한 조건을 추가로 가져올 수 있다. 

결국 EU가 미국과 협상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한 사례가 긍정적으로 작용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요 수출 품목에 관세율 인하 성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다만 EU가 체결한 합의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후속 절차와 입법 여부에 따라 내용이 바뀔 여지도 있다. 한국이 미국과 최종 합의를 내놓아도 법적 장치 없이 정치적 선언에 그치면 효력이 제한적일 수 있다. 

미국 씽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필립 럭 경제프로그램 의장은 20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대 한국 무역 적자는 지난해에만 30%가 증가했다”며 “(정상회담에서) 이슈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