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업계 '곡소리', 경기침체·고환율에 올리브영·다이소 부상까지 시름만 가득

▲ 면세업계가 최악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고환율과 내수부진, CJ올리브영과 다이소의 부상 등이 면세업계의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코로나19 때는 분풀이할 곳이라도 있었다. 코로나19만 끝나면 실적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토록 바라던 관광객이 돌아왔지만 면세업계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 때보다 더 안 좋다는 얘기가 들린다.

고환율 탓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그나마 남은 관광객 수요도 CJ올리브영과 다이소 등에 뺏기고 있어 앞길이 막막해 보인다.

29일 면세점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는 공통된 목소리가 나온다.

대기업 소속 면세점들이 명예퇴직, 즉 사람을 내보낸 것은 면세업계의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신라면세점이 이번 주부터 비공개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서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현대면세점에 이어 이른바 ‘빅4 면세점’ 모두 감원을 현실화했다.

감원은 회사가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이런저런 노력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사람을 내보내 고정비 성격이 강한 인건비라도 줄이겠다는 의도이다.

사실 면세업계는 국내외를 오가는 발길이 묶였던 코로나19 때도 사람을 자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유급휴직과 무급휴직을 병행하며 버텼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나면 봄이 온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가 한참 지나간 이제야 희망퇴직이라는 강수를 꺼내든 것은 현재 상황이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렵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쳇말로 면세업계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최근 한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1분기 역시 실적이 안 좋았는데 2분기도 여전히 나쁠 것 같다”며 “사내 분위기가 아주 침체돼 있다”고 말했다.

면세업계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서도 고환율은 업계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가장 큰 원인이다.

면세점 상품은 대부분 수입품이다. 면세점은 브랜드 상품을 직매입해 파는 구조로 사업을 펼치는데 원/달러 환율이 높아질수록 상품을 사들이는 데 드는 비용이 커진다. 판매 가격을 그만큼 올리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환율 상승은 그대로 면세점의 직접적인 부담일 수밖에 없다.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최근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각각 투자위험요소에 ‘환율변동에 관한 위험’을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면세업계는 환율상승이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원화 가격 상승에 따른 구매 매력도 감소 △미국 달러로 표시된 해외 거래처 구매 상품의 원화 환산 가격 인상 △외화 표시 부채의 외화환산손실 발생으로 인한 수익 감소 △원화 약세에 따른 내국인 해외여행 수요 감소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실제로 환율 상승에 따라 면세점에서 예전만큼 살만한 물건이 없다는 목소리는 자주 나온다.

한 50대 남성은 “담배 한 보루만 해도 예전에는 밖에서 사면 4만5천 원이지만 면세점에서는 3만 원 안쪽으로도 살 수 있어 가격 메리트가 상당했다”며 “하지만 요즘에는 4만 원이 넘어 해외에서 갖고 다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여성이 주된 고객층인 화장품도 경쟁력이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 20대 여성은 “예전에는 5만 원짜리 화장품을 면세점에서는 3만 원가량에 구매 가능했다”며 “쿠팡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과 비교해 가격 차이가 거의 없어 면세점 가격이 싼다는 체감이 안 된다”고 언급했다.

내수 부진도 면세업계의 어려움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2년 넘게 이어지는 고금리 탓에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생활필수품보다 사치품 성격이 강한 면세업계가 더 강한 타격을 받고 있다.

올해만 해도 신세계면세점이 부산 시내면세점인 센텀시티점의 문을 닫았고 현대면세점은 7월 말 서울 동대문점을 폐점하기로 했다. 

대기업보다 불황에 버틸 체력이 약한 중소면세점들은 문을 닫기 직전이다. 면세업력만 50년이 넘는 동화면세점은 올해 말 특허권 갱신을 앞두고 사업을 연장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울산과 대구 등에서 면세사업을 펼치고 있는 면세점들 역시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떠오르고 있다.
 
면세업계 '곡소리', 경기침체·고환율에 올리브영·다이소 부상까지 시름만 가득

▲ CJ올리브영과 다이소는 외국인들의 한국 필수 방문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면세점에 들리지 않고 CJ올리브영과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는 사례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서울 명동 다이소 한 매장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상품을 둘러보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관광객의 소비 행태가 변한 것에서 면세업계의 위기를 짚는 시각도 많다.

과거에는 국내여행을 다 마친 뒤 면세점에 들러 상품을 쓸어 담아 본국으로 돌아가는 관광객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서울 명동과 성수동 등 유명 관광지에서 특색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면세업계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나조차도 해외에 나갔을 때 면세점을 들리기보다 현지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면세업의 위기는 하루이틀 사이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올리브영과 다이소의 부각은 관광객의 소비 패턴이 180도 바뀌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외국인 관광객이 모여드는 덕분에 ‘외국인의 놀이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0명 가운데 7명이 올리브영 매장을 찾았다. 지난해 외국인 매출은 2023년보다 140% 뛰었으며 전국 1371개 매장 가운데 외국인이 찾은 매장은 1264개로 전체의 92%를 기록했다.

다이소 역시 서울 명동에 있는 12층짜리 매장 명동점의 매출 절반 이상을 외국인에게서 내고 있다.

경기 광명에 사는 한 30대 여성은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오면 꼭 CJ올리브영에 가자고 한다”며 “CJ올리브영에서 꼭 구매해야 하는 추천템 리스트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