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에코프로그룹의 실적부진에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2차전지 양극재업황 악화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이사 사장은 2023년 한 해 동안 업황 악화뿐 아니라 총수 구속과 경쟁사들의 맹렬한 추격과 같은 안팎의 도전을 맞으면서도 하이니켈 양극재 선두주자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애쓰고 있다.
▲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이사 사장이 양극재 소재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에코프로>
기존 증설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해야 할 뿐 아니라 전방 시장의 변화 양상에 발맞춰 제품 다변화도 추진해야 하는 만큼 2024년에도 송 사장의 어깨가 무거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배터리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올해 들어 악화했던 양극재업황에 뚜렷한 개선 신호가 나오지 않고 있다.
양극재 판매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금속 가격도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극재 판매가격은 원료 금속가격 변동에 연동되기 때문에 양극재기업들은 금속 가격이 하락하면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팔게 돼 마진이 축소된다.
리튬을 비롯한 주요 금속 가격의 급격한 하락세는 양극재업황 악화의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21일 기준으로 kg당 86.5위안으로 올해 들어 최저치를 보였다. 1년 전인 2022년 12월21일 시세(512.5위안)의 6분의 1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관세청 수출입통계를 보면 양극재 수출에서도 부정적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 리튬 가격 하락이 양극재 판매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며 수출단가도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양극재 수출 단가는 7월 kg당 41.7 달러(5만4300원)에서 11월 37.5 달러(4만8900원)까지 하락했다. 이에 11월 양극재 수출액은 6억3천만 달러로 지난해 11월보다는 43.3%, 올해 10월보다는 12.3% 감소했다. 올해 하반기 들어 수출액은 7월 11억4천만 달러에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 단가뿐 아니라 수출 중량도 하락하고 있다. 11월 양극재 수출 중량은 1만6736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9% 감소했다. 10월보다는 10.7% 줄었다.
양극재 수출 중량 감소는 판매량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가격 요인 때문이 아니라 업황이 보다 구조적으로 나빠졌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양극재기업들이 아직 글로벌 생산시설 가동을 본격화하지 않은 만큼 수출 통계는 업황을 상당 부분 반영하는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 셀 제조사의 글로벌 시장 영향력 확대 과정에서 한국 배터리 가치사슬의 전반적 출하량(Q)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양극재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에코프로그룹도 이런 업황 흐름을 빗겨가지 못하고 있다. 그룹 지주사 에코프로는 올해 들어 큰 폭의 이익 상승세를 보인 1분기에 이어 2~3분기 내내 실적 뒷걸음을 했다. 4분기 실적도 지난해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에코프로의 2023년 연결기준 컨센서스(실적 추정치 평균)는 매출 7조7446억 원, 영업이익 4789억 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매출은 37.3% 늘지만 영업이익은 21.9% 줄어드는 것이다.
올해 들어 심화되고 있는 업황 악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장기적으로는 전방 전기차시장의 수요 증가와 함께 2차전지 양극재 수요도 따라서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단기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회복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적어도 2024~2025년까지는 극적인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송호준 사장으로서는 업황 악화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송 사장에게 주어진 녹록치 않은 경영환경은 비단 악화된 양극재업황뿐만이 아니다.
양극재시장의 경쟁환경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기업만 해도 포스코퓨처엠과 LG화학 등 최상위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양극재기업들이 그룹 차원의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외 양극재시장에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고 있다.
그룹 총수인 이동채 전 회장의 실형이 확정돼 일정 부분 경영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송 사장은 지주사 에코프로의 수장으로서 그룹에 전문경영인체제를 확립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송 사장은 그룹 안팎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고 당초 수립했던 경영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데 힘써왔다. 그 결과 양극재 증설계획과 공급망 확장 등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장기 증설 전략을 통해 확대하고 있는 생산능력을 소화할 일감도 확보했다.
그룹 내 주력계열사 에코프로비엠은 최근 삼성SDI와 ‘하이니켈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소재 중장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44조 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수주다.
지난달에는 전구체 제조 계열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기업공개를 매듭지으며 양극재의 핵심 중간소재인 전구체 증설을 본격화할 자금도 확보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증설을 통해 현재 연산 5만 톤 수준인 전구체 생산능력을 2027년까지 연산 21만 톤으로 확대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7.5%의 5위권 전구체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
송 사장에게는 2024년도 안팎의 어려움들을 이겨 나가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방시장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양극재 제품을 다변화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캐나다 퀘벡주 베캉쿠아시 산업 단지에 들어서는 에코프로비엠과 SK온, 포드의 합작 양극재 공장 조감도. <에코프로비엠>
전기차를 제조하는 완성차기업들 사이에서 전기차시장의 대중화를 위해 저가형 전기차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며 저가형 배터리 도입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에코프로그룹도 기존 하이니켈 양극재 외에도 리튬인산철(LFP), NMx(코발트가 포함되지 않는 양극재), 미드니켈(OLO)과 같은 저가형 신규 소재개발과 양산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제품 다변화의 개시 시점이 2025~2026년으로 예상되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관련 기술력을 확보하고 생산설비를 마련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송 사장은 소재사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공급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배터리 순환체계 구축에도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순환체계는 배터리 제조와 사용, 재사용과 재활용을 거쳐 최종적으로 폐배터리에서 원소재를 추출해 다시 배터리 제조에 활용하는 체계를 뜻한다.
이를 위해 글로벌 생산거점과 연계한 순환체계 구축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에코프로그룹은 SK에코플랜트, 테스 등과 손잡고 헝가리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송 사장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SK에코플랜트 수송동 본사에서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 테렌스 응 테스 회장 등과 ‘헝가리 배터리 재활용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헝가리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건설을 추진하기로 햇다.
현재 에코프로그룹은 헝가리에 양극재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이 건설되면 기존 양극재사업과 시너지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송호준 사장은 폐배터리 재활용 업무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에코프로는 폐배터리 리사이클부터 양극재 생산까지 배터리 생태계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순환체계(클로즈드 루프 시스템·Closed Loop System)을 구축해 차별화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