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호 윤갑한의 숙제, 안티 현대차  
▲ 김충호 사장(왼쪽)과 윤갑한 사장(오른쪽)

현대차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증’은 깊고도 넓다. 

해외에서 현대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해 도요타 GM 폭스바겐 르노닛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탑5를 차지한 데 대해 ‘경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 지난해 756만 대를 판매했다. 1위는 토요타로 998만 대를 팔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안티 현대차’ 감정도 상당히 높다.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안다는 불만이 대표적이다. 국내에 판매하는 차의 품질은 외국에 수출하는 그것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일부에서 ‘흉기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현대차에 대한 뿌리깊은 품질 논란 탓이다. 싼타페 차량 일부에서 빗물이 새는 결함 때문에 ‘수타페’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머리숙여 사과하는 등 품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정몽구 회장이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내놓은 신형 제네시스를 놓고도 강판 논란이 일었다. 제니시스 4행시 이벤트에 품질을 조롱하는 글도 많이 붙어 있다.

이번에 신형 쏘나타를 출시하면서 “미국에 수출하는 차와 똑같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안티 현대차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신형 쏘나타 역시 연비과장 논란에 곤욕을 치뤄야 했다.

◆ 안티 현대차 분위기 확산, 점유율 유지는 '경이'

이런 현대차 안티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높다. 지난 3월 국내 완성차 5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현대차 47.6%, 기아차 32.1%로 두 회사 합계가 79.7%나 된다. 예전에 80%를 훌쩍 넘길 때보다는 많이 떨어졌지만 그대로 여전히 압도적 시장점유율이다. 3위 한국GM은 10.8%에 그친다.

이렇게 안티 현대차 분위기가 갈수록 확산되는 데도 현대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은 것을 놓고 오히려 ‘경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지난달 24일 현대차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신형 쏘나타 출시 행사에 안티 현대차에 대한 질문이 현대차 CEO에게 던져졌다.

“안티 현대차 바람이 거세다. 원인과 향후 대책은 무엇인가?” 김충호(64) 현대차 사장은 갑작스럽게 이 무거운 질문을 받았다.


신형 쏘나타 모터쇼는 지난달 30일까지 열렸다. 국내에서 단일 차종 최초의 브랜드 전시회장이었다. 1985년 출시돼 최장수 모델인 쏘나타에 대한 높은 관심 덕분에 5만 명 넘는 사람이 다녀갔다.

김 사장은 신형 쏘나타 출시를 놓고 “국내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온 대표 모델” “현대차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7세대 쏘나타” “기본기 혁신을 통해 운전자에게 최상의 편의와 감성만족을 제공하는 인간공학적 설계”라고 한껏 자신감을 보였다. 그런 김 사장에게 축하의 인사보다는 고통스런 질문이 던져진 것이다.

김 사장은 현대차에서 국내 영업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80년 현대차에 입사해 잠시 기아차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 현대차에서 국내 판매를 맡아오다 지난 2011년 현대차 국내판매 담당 사장에 올랐다. 안티 현대차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기에 그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다.

김 사장의 대답은 이랬다. “현대차가 매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노사문제가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에 싼타페에 물이 새는 문제 때문에 고객의 신뢰를 잃었다. 앞으로 고객의 만족을 높이고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는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나 철학으로 디테일하게 정성을 담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 신차 발표회장에서 안티 현대차 질문받은 김충호

김 사장의 이런 발언은 논란이 됐다. 현대차 판매를 담당하는 사장으로서 안티 현대차 감정에 대해 너무 안이한 진단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품질에 대한 불만의 원인을 노사문제로 돌린 데 대해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대차의 사내 등기임원은 모두 4명이다.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 김충호 사장, 윤갑한 사장이다. 정 회장과 김 사장, 윤 사장이 각자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오너인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을 제외하면 두 사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 현대차를 이끌고 있다.

  김충호 윤갑한의 숙제, 안티 현대차  
▲ 김충호 사장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김 사장은 국내 판매를 담당하고, 윤 사장은 노사관리를 담당하다 윤여철 부회장의 복귀로 현재 현대차의 핵심인 울산공장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두 사장은 안티 현대 감정을 해결해야 하는 쌍두마차인 셈이다.

안티 현대차 감정이 날로 거세지고 있지만 현대차는 높은 국내 시장 점유율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안주할 수 있었다. 현대차가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차 가격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울며 겨자 먹기로 현대차를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점유율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수입차라는 대안이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완성차 회사가 판매한 차량만을 놓고 보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하지만, 수입차까지 포함해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 3월 수입차를 포함한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보면 현대기아차는 64.9%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70.2%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63.1%로 떨어지기도 했다.

반면 수입차는 상승세다. 3월 수입차 점유율은 13.7%로 올랐다. 지난 1월엔 14.6%까지 치솟기도 했다. 2012년만 해도 수입차 점유율은 10%를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2천CC 정도의 모델을 대거 내놓고 공격적으로 가격을 낮춘 덕분이다. 국내 완성차 3사인 한국GM 쌍용차 르노삼성도 합쳐서 21.4%를 기록했다.

김 사장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김 사장은 실적부진을 만회하는 소방수 역할을 자주 맡았다. 그가 2008년 기아차 영업본부장으로 옮길 때도 기아차의 영업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투입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전국 기아차 지점을 돌며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해 기아차 내수 점유율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했다. 기아차 K5가 국내에서 히트한 것도 김 사장의 성과 가운데 하나다.

김 사장은 안티 현대차 감정 앞에서 현대차가 내세울 게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 서 있다. 흔히 현대차는 경제성을 빼놓고 내세울 게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안티 현대차 감정이 거세지는 데도 점유율이 여전히 높은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경제성을 꼽는다. 쉽게 말해 구입부터 폐차까지 가장 저렴하게 들어가는 차라는 의미다.

당장 신형 쏘나타만 해도 동급 수입차인 도요타 캠리를 놓고 유지비 연료비 보험료 등을 계산하면 2년 동안 600만 원 정도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대차는 부품이 싸다", "사후 서비스 받기가 편하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 현대차, 이탈리아 피아트를 닮아가나

하지만 이런 장점은 모래성이나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가 이를 보여준다. 피아트는 1980년대까지 이탈리아에서 60~70% 대의 점유율을 보였다. 그런데 이 점유율에 취해 품질이 떨어지고 서비스도 부실해졌다. 그 틈을 수입차들이 파고 들었다. 그 결과 지금 피아트는 이탈리아 내수 시장에서 20% 대에 머물고 있다. 한때는 부도 위기도 맞았다.

안티 현대차 감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현대차가 피아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대차 수뇌부들이 안티 현대차 감정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몽구 회장이 품질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고 정의선 부회장은 피아트의 사례를 들어 현대차의 위기를 경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충호 사장이 마케팅 전략이나 철학으로 디테일하게 정성을 담아 고객의 신뢰를 얻겠다고 한 말이 안티 현대차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말 멤버십 프로그램인 ‘블루멤버스’를 개편해 재구매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하거나 지난해 1월부터 테마지점을 만들어 고객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도 ‘디테일한 정성’ 마케팅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 9곳에 운영중인 테마지점과 관련해 "테마전시장은 예술작품을 비롯해 꽃꽂이, 카페, 어린이들의 놀이공간 등 다양한 주제로 꾸며 방문객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수입차의 약진은 이제 자동차를 구매할 때 단순히 가격만을 살피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를 비롯해 디자인, 성능, 각종 편의성 등을 크게 고려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 하면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개발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안티 현대차 감정에 대처하기 위해서 윤갑한(57) 사장의 역할도 중요하다. 윤 사장은 생산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메카인 울산공장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품질논란에 관한 한 최전선에 서있는 이가 윤 사장이다.

◆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과 노사관계를 책임진 윤갑한

  김충호 윤갑한의 숙제, 안티 현대차  
▲ 윤갑한 사장이 21일 모교 계명대에서 ‘현대차의 성공과 향후 도전’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윤 사장은 지난달 21일 모교인 계명대에서 특별강연했다. 그는 계명대의 자랑스런 동문으로 뽑혔다. 윤 사장은 이 자리에서 “자동차는 우리나라 수출의 13.3%를 담당하는 대표적 국가기간산업”이라며 “2만여 부품으로 이뤄지는 자동차는 완성차 회사뿐 아니라 수많은 협력업체들과 동반성장하므로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 자동차는 2만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노사관계가 중요하다. 생산성의 요체는 노사관계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윤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사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며 “올해는 노사가 변화와 혁신을 보여줘 외부의 우려를 불식하고 위기와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으로 노사관계의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1984년 현대그룹으로 입사해 2006년 현대차 생산운영실 이사를 거쳐 2012년 울산공장장이 됐다. 2013년 현대차 노무총괄담당 김억조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난 뒤 사장에 올랐다.

윤 사장은 노사관계를 해결하는 데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직원들의 대소사를 부지런히 챙기기로 유명하다. 또 지난해 노사 갈등 때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소통의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가족에게도 회사의 모든 일을 공개해야 노사관계가 안정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윤 사장은 지난해 5월 노조의 주말특근 거부가 한창일 때 가정통신문을 보내 “주말특근을 하지 않아 7만5천대의 생산손실과 1조5천억 원의 판매손실이 발생했다”며 “그동안 노사가 역대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적이 뒷받침 됐기 때문인데 특근중단으로 피해까지 누적된다면 노사가 과거와 같은 성과보상을 논의할 수 있겠느냐”고 노조의 정상근무를 호소했다.

윤 사장은 또 지난해 8월 임단협이 결렬되고 부분파업이 벌어지자 가정통신문을 보내 “우리의 생산 속도는 경쟁사에 비해 7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효율성은 해외공장 대비 59%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회사의 속살을 드러내며 노동자 가족들을 설득했다.

현대차의 노사관계는 그동안 외신들도 끊임없이 문제로 지적해 왔다. 로이터통신은 "노사불안은 현대차 최대의 장애요인"이라며 "파업 때문에 일어나는 생산차질을 막기 위해 노조의 요구를 계속 들어줬던 사측의 판단이 노조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생산성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현대차 국내공장의 자동차 한 대 당 생산 투입 시간은 31.3시간으로 미국공장 14.6시간에 비해 2배나 많다. 시간당 평균임금은 2만4778원으로 미국과 비슷한 금액(2만1422원)이라는 통계도 있다.

‘협조와 조합원의 실리’를 중시하는 노조가 등장해 올해 노사관계는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통상임금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올해 노사관계를 어렵게 할 현안들은 많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노사 관계를 총괄하는 윤여철 부회장이 최근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밝혀 임급협상 과정에서 노사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안티 현대차의 모든 책임을 김충호 사장의 말대로 노사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노사관계는 자동차 품질을 결정짓는 요소의 절반 이상이다. 노사관계의 안정없이 안티 현대차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는 없다. 특히 현대차는 신형 쏘나타가 4월부터 본격적으로 판매에 들어간다. 그래서 더욱 윤 사장이 책임지는 울산공장에 시선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