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장기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상장기업의 명단을 공개하고 주식 거래화면의 종목명에도 ‘저PBR’ 표시를 붙이는 제도가 2026년 11월부터 시행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낮은 기업가치를 방치하는 경영진을 압박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사업구조 개편 등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업황과 투자주기 등 여러 요인으로 움직이는 PBR을 사실상 단일 평가기준으로 삼는 만큼 기업가치 개선을 촉진하는 것과 별도로 투자자의 매도를 자극하는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저PBR 기업' 최대 220곳 11월 거래시스템에 '꼬리표', 밸류업 채찍 될까 낙인 될까

▲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29일 저PBR 기업 공표제도의 세부기준안을 공개했다.

금융위는 기업이 낮은 PBR에도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지 않고 낮은 주가를 방치하거나 오히려 누르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이른바 ‘네이밍 앤드 셰이밍’ 방식으로 명단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PBR은 기업의 순자산인 장부가치와 비교해 시가총액이 어느 수준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금융당국의 저PBR 기업 공표제도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저PBR 기업 명단은 올해 11월2일부터 한국거래소 공시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의 종목명에도 ‘저PBR’ 태그가 붙는다. HTS와 MTS는 투자자가 각각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거래하고 시세를 조회할 수 있도록 증권사가 제공하는 거래시스템이다.

공표 대상은 같은 시장과 업종 안에서 PBR이 최근 3년 동안 코스피 하위 25% 또는 코스닥 하위 10%에 지속해서 머문 기업이다.

한국거래소가 올해 5월 기준으로 실시한 간이 시뮬레이션에서는 전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5~10%인 최소 약 120곳에서 최대 약 220곳이 공표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는 80~130곳, 코스닥은 40~90곳이다.

금융위는 하루 동안의 주가 급등락에 따라 평가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표일 7거래일 전을 기준일로 삼고, 기준일을 포함한 직전 20거래일의 평균 시가총액으로 PBR을 계산하기로 했다. 순자산은 외부감사인의 감사나 검토를 받은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 수치를 사용한다.

최근 6개 반기 가운데 한 번만 기준을 벗어난 기업은 과거 7번째 반기까지 다시 확인한다. 7번째 반기에도 코스피 하위 25% 또는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했다면 일시적으로 한 차례 순위가 올랐다고 보고 공표 대상에 포함한다. 최근 6개 반기 가운데 두 번 이상 기준을 벗어난 기업은 즉시 제외한다.

금융당국은 산업별 자산구조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체 상장사를 한꺼번에 비교하지 않고 글로벌산업분류기준(GICS)에 따른 11개 업종으로 나눠 같은 업종끼리 PBR 순위를 매긴다. 장치산업과 금융업은 보유자산 규모가 크고 미래 성장 기대보다 현재 수익을 중심으로 평가받아 PBR이 구조적으로 낮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그럼에도 공표 대상 선정에 영업이익률이나 자기자본이익률, 부채비율 등 다른 재무지표는 반영되지 않는다. 업종별 상대평가와 3년 누적 기준, 평균 시가총액을 통해 일부 왜곡을 줄이더라도 최종적으로는 PBR이라는 하나의 지표로 기업을 분류하는 구조인 셈이다.

PBR은 기업의 배당정책과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뿐 아니라 업황과 대규모 설비투자, 시장 수급, 미래 성장성에 관한 투자자의 기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동일 업종 안에서도 기업마다 투자단계와 사업구조가 다른 만큼 하나의 수치가 경영진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충분히 보여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존에는 PBR은 순자산에 비해 주가가 낮은 종목을 찾는 참고지표로 주로 활용됐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부정적 명단의 선정기준으로 사용하고 종목명에 태그까지 붙이면 투자자가 기업의 부실이나 불공정거래를 알리는 사실상의 경고표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저PBR 기업' 최대 220곳 11월 거래시스템에 '꼬리표', 밸류업 채찍 될까 낙인 될까

▲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 지난 6월 코스피 9천 포인트 돌파 기념 행사에 사용했던 구조물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투자자의 매도로 주가가 하락하면 분자인 시가총액이 낮아지면서 PBR도 추가로 떨어진다. 이에 저PBR 표시가 주가 하락을 유발하고 낮아진 주가가 다시 저PBR 평가를 강화하는 일종의 ‘낙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기업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면제제도도 마련했다.

기업이 저PBR 원인 분석과 목표 설정, 개선계획, 이행평가 등을 담은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공시하면 실제 PBR이 개선되기 전이라도 1년 동안 공표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최근 6년 동안 계속 코스피 하위 25% 또는 코스닥 하위 10%에 머문 기업은 계획을 공시해도 면제받을 수 없다.

거래소는 별도 양식을 통해 원인 분석과 목표, 개선방안, 이행평가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고 서식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이 실질적 경영 개선보다 일단 명단 공개를 피하기 위한 계획 제출에 집중해 형식적 공시만 늘어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해외에서 가장 유사한 사례로 꼽히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한국과는 다른 ‘포지티브’ 방식으로 기업가치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 3월 프라임·스탠더드시장 상장기업에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요청했고, 2024년 1월부터 개선방안을 공시했거나 검토 중인 기업 명단을 매달 공개하고 있다. 저PBR 기업을 선별해 부정적 명단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대응에 나선 기업을 공개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이다.

도쿄증권거래소가 2024년 9월 말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프라임시장에서 대응방안을 공시한 기업의 주가는 제도 발표 뒤 27.89% 상승한 반면 미공시 기업은 13.99% 오르는 데 그쳤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8월5일부터 거래소 규정과 세칙 개정안을 예고하고 8월24일까지 시장 참여자의 의견을 받는다. 이후 9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 정례회의의 승인을 거쳐 11월2일 첫 명단을 공개한다.

저PBR 명단과 MTS 태그가 기업의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사업구조 개편을 끌어내는 ‘밸류업 채찍’이 될지, 시장의 부정적 평가를 강화해 주가를 더 누르는 ‘낙인’이 될지,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