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가 중동 시장 공략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김 대표가 2026년 5월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열린 '2026 WWD 뷰티 CEO 서밋'에서 발표하는 모습.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과거 두바이 현지법인과 단일 브랜드 매장을 앞세워 중동시장에 직접 진출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해 현지법인을 청산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유럽·중동 등으로 성장축을 넓히는 '글로벌 리밸런싱' 전략을 이어가려면 과거와 같은 매장 확장 방식보다 브랜드별 채널 효율을 검증해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아모레퍼시픽 상황을 종합하면 중동 현지법인 아모레퍼시픽엠이에프지엘엘씨(AMOREPACIFIC ME FZ-LLC)의 청산 절차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해외법인 청산에는 현지 행정 절차와 세무 정리, 계약관계 종료, 잔여 자산 처리 등이 뒤따른다. 현지법인을 앞세운 직진출 방식이 사업 운영뿐 아니라 철수 과정에서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엠이에프지엘엘씨는 아모레퍼시픽이 2016년 5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세운 중동 현지법인이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사업 지주회사 성격인 아모레퍼시픽글로벌오퍼레이션스 리미티드(AMOREPACIFIC Global Operations Limited)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당시 두바이에 중동법인을 설립하고 중동 대형 유통기업 알샤야그룹과 손잡고 중동시장을 공략했다.
핵심 브랜드는 에뛰드하우스였다. 아모레퍼시픽은 2017년 하반기 두바이에 에뛰드하우스 1호점을 열고 인근 국가로 매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중동법인은 아모레퍼시픽의 ‘제3시장’ 확대 전략 가운데 하나로 평가됐다.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매출을 빠르게 키우던 시기였고, 중동은 젊은 소비층과 색조 화장품 수요, 한류 확산 가능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시장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모레퍼시픽 중동 법인은 2016년 개설 이후 청산 절차에 들어가기 직전인 2023년까지 해마다 순손실을 냈다. 순손실 규모는 2016년 1억7천만 원, 2017년 4억5200만 원, 2018년 9억1700만 원, 2019년 7억9600만 원, 2020년 8억200만 원, 2021년 1억3200만 원, 2022년 2억9800만 원, 2023년 400만 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23년 중동 사무소를 철수하고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아모레퍼시픽엠이에프지엘엘씨는 2024년부터 법인 청산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2024년 유럽 법인 개편으로 영국의 유럽 권역본부가 유럽뿐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관리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해외법인인 아모레퍼시픽엠이에프지엘엘씨를 청산하기로 했고 현재 현지 사업은 철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로서는 중동 사업과 관련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아모레퍼시픽이 중동 현지에서 브랜드별 특성에 맞춰 유통채널을 달리하는 공략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아모레서퍼시픽 사옥. <아모레퍼시픽>
김 대표는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되며 2기 체제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북미, 유럽, 인도와 중동, 중국, 일본 등 주요 전략 시장에서 사업 확장에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유럽 등으로 성장축을 넓히는 글로벌 리밸런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2026년 1분기 해외 매출은 4971억 원으로 2025년 1분기보다 5.8% 증가했다. 이 가운데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매출은 553억 원으로 16.4% 늘었다.
김 대표에게는 이 성장 흐름을 중동에서도 이어갈 사업 모델을 찾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동에서 과거 현지법인을 앞세운 직진출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경험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온라인과 멀티브랜드숍(MBS), 현지 유통 파트너 등 여러 채널을 브랜드 성격에 맞춰 조합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화장품 브랜드인 라네즈와 설화수, 에스트라, 코스알엑스는 가격대와 핵심 소비층, 제품군이 서로 다르다.
라네즈는 수분·립케어 중심의 대중적 브랜드 성격이 강하고 설화수는 프리미엄 항노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에스트라는 더마 화장품 수요 확대 흐름과 맞물려 있으며 코스알엑스는 기능성 스킨케어를 앞세워 성장해온 브랜드다.
같은 시장이라도 브랜드별 가격대와 소비층, 제품군이 다른 만큼 일률적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현지에서 브랜드별로 맞는 유통채널을 검증하는 일이 중요할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온라인몰 ‘아모레몰’을 통한 중동 판매도 채널 다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별도 현지법인이나 단독 매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온라인 채널을 통해 중동 소비자와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최근 아모레몰은 미국·이란 전쟁 영향으로 일부 주문 및 배송이 중단됐다. 종전 선언 이후 정상화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중동 지역은 전통 의복 변화와 함께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로 뷰티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 향후 2~3년간 다양한 브랜드를 시도할 계획”이라며 “인도와 중동의 경우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해 신속하고 성공적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