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AI 접근 제한' 국가 경쟁력에 변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역할은 더 커진다

▲ 미국 정부가 앤트로픽의 최신 AI 모델을 외국인이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 접근을 사실상 통제해 국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자국 인공지능(AI) 기업의 최신 기술을 외국인이 활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면서 사실상 이를 전략 자산으로 무기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첨단 AI 기술 활용이 국가 경쟁력에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한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비롯한 장점을 적극 앞세워 미국과 ‘AI 동맹’ 강화에 속도를 낼 필요성이 커졌다.

◆ 미국 ‘AI 접근 통제’로 기술 주도권 과시, 세계 각국 경쟁력에 변수

21일 이코노미스트와 포춘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의 AI 기술 접근 통제가 전 세계 국가 경쟁력에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지난 12일 앤트로픽의 AI 모델 ‘페이블’과 ‘미토스’ 최신 버전을 내국인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점이 대표적 사례라고 보도했다.

AI 기술이 해킹이나 생화학무기 개발에 악용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붙었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 정부의 국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제시됐다.

미국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를 본격적으로 통제하고 접근 대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핵무기 개발 지원이나 암호화 기술, 첨단 군사장비 공급 제한이 앤트로픽 AI 모델 규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미국 정부는 장기간 국가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 및 자원의 해외 공급을 통제해 왔는데 AI도 본격적으로 조치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결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앞으로도 가장 우수한 AI 기술을 자국에 유지하고 동맹국과 다른 국가에는 이보다 낮은 수준의 기술을 공유하는 식으로 위계 질서를 구축하려 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미국의 앤트로픽 규제는 개별 기업이나 산업을 겨냥한 조치를 넘어 전 세계의 국가 경쟁력 질서를 재편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AI 접근 제한' 국가 경쟁력에 변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역할은 더 커진다

▲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참고용 사진. <연합뉴스>


◆ 미국에 의존 낮추기 쉽지 않다, ‘소버린 AI’ 전략도 한계 지적

경제전문지 포천은 미국 정부의 AI 모델 접근 통제조치를 두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화됐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그동안 미국 기업의 AI 기술에 의존이 높은 지역일수록 이번 규제에 큰 영향을 받아 경제와 사회, 글로벌 경쟁력과 시장 지위 등 측면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너선 아이워리 와튼 어카운터블AI연구소 연구원은 포천에 “미국의 진정한 힘은 경제와 군사뿐 아니라 세계 질서를 결정할 역량을 갖췄다는 데 있다”며 “이제는 첨단 AI 모델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뒤늦게 미국 AI 기술에 의존을 낮추기 위해 자체적으로 AI 모델과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른바 ‘소버린 AI’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포천은 유럽이 독립적 인공지능 기술 생태계를 확보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시점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소버린 AI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기술력이나 인프라, 전력망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4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소버린 AI 목표는 업계 전문가들의 회의적 시선을 받고 있다”며 “데이터센터 및 에너지 공급망, 규제 등 측면에서 여러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한국 정부가 AI 기술 독립을 전략적으로 추진해나가는 반면 기업들은 주로 미국 상위 AI 업체들과 힘을 합치며 역량 강화를 노리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미국의 'AI 접근 제한' 국가 경쟁력에 변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역할은 더 커진다

▲ 한국은 AI 기술 발전에 필수인 메모리반도체 공급망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에서 역할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전망을 받는다. <그래픽 챗GPT>

◆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반도체가 핵심, 한국의 전략적 가치 높여

다만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을 앞세워 미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에서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미국이 최첨단 AI 모델의 접근 통제권을 쥐고 있지만 한국에서 공급하는 반도체가 없다면 미국 기업의 AI 기술 발전이나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인프라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AMD, 빅테크 기업들의 AI 반도체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가 필수로 쓰인다.

AI 모델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만큼 메모리반도체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미국이 AI 기술력을 높여 전 세계에서 주도권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에는 한국도 동반자 역할로 입지를 키울 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경영진을 잇따라 만나 반도체 생산 확대를 요청하며 협업 관계를 더욱 강화하려 하는 점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도 한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활용해 미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한국이 단순히 미국의 기술 생태계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첨단 반도체 개발 및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AI 기술의 해외 접근을 통제하는 조치를 강화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및 관련 공급망에 포함된 여러 한국 기업들의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AI 모델에 의존하는 만큼 미국도 해외 반도체 공급망을 필요로 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