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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표 손해보험사 삼성화재, 현대해상, 코리안리가 아시아 재보험 시장 중심지 싱가포르에서 영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현지 보험사들이 자연재해, 대형 발전시설, 대규모 공장, 해상물류, 배상책임 등 초대형 리스크를 독자적으로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런 수요가 싱가포르 보험시장을 키웠다. 싱가포르는 역내 대형 위험을 글로벌 재보험 자본과 연결하는 핵심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재보험은 보험사(원수보험사)가 자신이 인수한 책임의 전부 혹은 일부를 다른 보험자(재보험사)에게 넘겨 위험을 분산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보험사가 드는 보험을 말한다.
국내 대표 손해보험사인 삼성화재, 현대해상, 코리안리는 싱가포르통화청(MAS)의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과 선진화한 인프라를 발판 삼아 현지에서 '재보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 삼성화재, 높은 신용도와 담보력 앞세워 '해외 매출 전초기지' 구축
▲ 삼성화재 싱가포르 법인이 위치한 ‘삼성 허브(Samsung Hub)’. 이 건물에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전기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 CFO는 “싱가포르는 정보 접근성과 영업 효율성이 가장 극대화되는 지역”이라며 “글로벌 브로커(중개업자)와 현지 원수보험사, 전문 재보험 인력과 자본이 집중되어 있어 초대형 리스크에 대한 정보와 딜(Deal)이 어느 곳보다 빠르게 오간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삼성화재의 강점은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한 '담보력(Capacity)'이다. 담보력이란 보험사가 위험을 어느 정도 크기까지 책임지고 떠안을 수 있는지를 뜻하는 지표다.
최 CFO는 “삼성화재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받은 신용등급(S&P 기준 'AA-')을 바탕으로 대형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강력한 역량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 설립 초기에는 대형 브로커들의 거절을 겪기도 했다”며 “이후 철저한 약속 이행과 안정적인 재무 역량, 리스크 분담 능력을 증명했고 현재는 아시아 시장 내 주요 거래에 빠져서는 안 될 필수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화재 싱가포르법인은 2011년에 설립됐다. 이후 글로벌 재보험 사이클이 개선되고 성장 가능성이 뚜렷해지면서 본사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 2024년 삼성화재로부터 1600억 원 규모 증자 받은 후 조직 규모가 대폭 확대됐으며, 매출은 증자 이전과 비교해 3배 이상 급성장했다.
최 CFO는 “싱가포르법인은 삼성화재 해외 매출 확대의 전초기지"라며 "국내 보험시장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싱가포르법인은 글로벌 재보험사들과 경쟁하며 외화 수익을 창출하는 데 의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 코리안리, 반세기 신뢰가 만든 '장기 파트너십'의 힘
코리안리는 1975년 싱가포르에 첫발을 디딘 후 약 반세기 동안 영업을 지속해 왔다.
현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해외 재보험사로서 쌓아온 신뢰도가 큰 자산이다.
손민주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장은 비즈니스포스트에 “재보험 비즈니스는 단기 거래보다 장기 파트너십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라며 “오랜 기간 한 지역에서 일관성 있게 사업을 이어온 재보험사는 드물기에 코리안리는 현지 고객사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은 아세안의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함께 인도와 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 호주·뉴질랜드(ANZ)까지 폭넓은 관할 지역을 커버하는 지역 허브 역할을 한다.
코리안리가 동남아 시장에서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된 대표적 계기는 2011년 발생한 태국 대홍수다. 당시 코리안리는 대규모 손실을 입었음에도 다른 글로벌 재보험사들처럼 거래를 줄이거나 시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위기 속에서도 현지 시장과 관계를 유지한 대응은 태국을 비롯한 베트남 등 동남아 현지 원수보험사들과 결속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이는 코리안리가 동남아 주요 재보험사로 자리잡는 발판이 됐다.
글로벌 대형사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코리안리는 기동성을 극대화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손 지점장은 "수많은 언더라이팅(인수 심사) 관련 결정이 복잡한 본사 보고 절차 없이 현장에서 신속하게 이뤄진다"며 "덕분에 급변하는 시장 상황이나 긴급한 재보험 계약 기회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싱가포르의 규제 체계도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통화청(MAS)이 중앙은행이자 통합 금융감독기관으로서 은행, 보험, 자본시장, 지급결제 등 금융 전반을 일관되게 감독하고 있어, 규제 기준이 명확하고 리스크 관리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은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손 지점장은 “현재 동남아 재보험 시장은 자연재해 담보(Cat Risk)를 수반한 재물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우리 역시 관련 매출 비중이 높지만, 향후 자연재해 리스크와 비교적 무관한 해상보험, 배상책임보험 등의 비중을 늘려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매년 5% 이상의 안정적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 현대해상, 자본 부담 낮춘 '재보험 중개' 모델로 승부
▲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현지 원수보험사와 글로벌 재보험사, 중개사 등 재보험 관련 인력과 자금이 집결한 시장이다. 사진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금융지구 아시아스퀘어타워2. <비즈니스포스트>
현대해상 싱가포르법인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싱가포르는 글로벌 주요 재보험사들의 아시아 지역본부가 집중된 곳으로, 아시아 전역의 리스크와 자본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리스크를 인수하지 않으면서도 현대해상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선진 언더라이팅 역량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구조”라며 “싱가포르에서는 큰 사고나 복잡한 구조의 리스크에 대해서도 담보력을 확보하기가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현대해상은 현재 재물·배상책임·해상 등 기업성 보험 종목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 아시아 전역의 주요 보험사 및 재보험사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의 현지 리스크 관리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현지 원수보험사와 글로벌 재보험사 사이에서 국가별 규제와 시장 특성에 맞는 담보력을 적기에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낯선 해외 환경에서도 안심하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해상은 앞으로도 동남아 재보험 시장의 성장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보험 침투율이 높아지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프라 투자가 활발하고 제조업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등 주요 신흥국을 중심으로 공장, 물류, 해상 관련 기업성 보험 수요가 증가 추세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기존 한국 관련 리스크 중개를 넘어 사이버보험, 신재생에너지, 기후 리스크 등 미래형 신사업으로 영역을 과감히 넓힐 예정"이라며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신규 미개척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