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증시 활황에 힘입어 올해 국세수입이 정부 전망을 크게 웃돌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초과세수 활용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초과세수를 국가채무 상환보다 미래 성장잠재력 확충에 활용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정부 안팎에서는 미래대응기금 신설과 한국형 국부펀드 재원 활용 방안 등이 거론된다.
 
반도체가 가져온 초과세수 15조, 이재명 정부 '미래투자 실험' 성공할까

▲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초과세수를 미래 투자로 연결하기 위한 정부 구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해외 사례를 보면 특정 산업 호황으로 발생한 세수를 미래 자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나타난 만큼 제도 설계가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17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누적 국세수입은 164조1천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조9천억 원(15.4%) 증가했다.

반도체 업황 호조에 따른 법인세 증가와 증시 거래대금 확대에 따른 증권거래세 증가, 성과급 확대에 따른 소득세 증가 등이 세수 증가를 이끌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국세수입이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 정부 전망치(415조4천억 원)를 15조 원 이상 웃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심은 이 재원을 어디에 활용할 것인지에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초과세수는 대한민국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방향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15일 재경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미래를 대비하고 양극화도 해소하기 위해 어려운 분들 좀 살아갈 수 있게 지원도 해 줘야 한다"며 청년 창업 지원과 미래 산업 육성 등을 언급했다. 이 역시 초과세수를 국가채무 상환보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활용하겠다는 정부 구상으로 해석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초과세수를 적립해 미래 산업 투자에 활용하는 미래대응기금과 한국형 국부펀드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이 함께 거론되고 있다.

미래대응기금은 초과세수를 별도로 적립해 미래세대 지원이나 첨단산업 육성 등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기금은 일정 범위 안에서 국회 심사 없이도 재원을 투입할 수 있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현행 국가재정법상 초과세수로 발생한 세계잉여금은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국가채무 상환 등에 우선 사용된다. 이에 따라 미래대응기금 신설 등 새로운 활용 방안을 추진하려면 국가재정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 등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하반기 출범이 추진되는 한국형 국부펀드는 정부 출자주식과 상속세 물납주식 등을 현물출자해 초기 자본금 20조 원 규모로 조성하는 투자기구다. 정부는 싱가포르 테마섹 등을 참고해 국부를 장기적으로 축적·증식하고 이를 미래세대로 이전하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반도체가 가져온 초과세수 15조, 이재명 정부 '미래투자 실험' 성공할까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5일 공개된 재경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재경부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다만 초과세수를 미래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상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특정 산업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세대를 위한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법인세 납부가 급증하자 2024년 미래아일랜드기금(Future Ireland Fund)을 출범시켰다. 급증한 세수를 고령화에 따른 미래 재정 부담에 대비하는 자산으로 전환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운용 체계가 완전히 갖춰지기 전에 자금이 먼저 유입되면서 상당 규모의 자금이 장기간 저수익 자산에 묶였다. 결과적으로 6억3천만 유로(약 9200억 원)에 달하는 기회비용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호주는 중국발 광산 호황으로 늘어난 재정흑자를 바탕으로 2006년 미래펀드(Future Fund)를 설립해 약 20년 동안 자산 규모를 4배 이상 키우는 성과를 냈다. 다만 최근에는 알바니즈 노동당 정부가 에너지 전환과 주택 공급 확대 등을 투자 지침에 반영하면서 펀드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수익성보다 정책 목표가 우선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해외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수익률 극대화와 산업정책이라는 목표를 혼재시키지 않고,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립적 운용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반도체 경기 변동에 좌우되는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활용하는 만큼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명확한 재원 조달 원칙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일시적 세수를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재원 조달 방식뿐 아니라 운용 목적과 독립성, 법적 근거를 둘러싼 정교한 제도 설계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초과세수 활용 방안이 미래대응기금이나 국부펀드로 귀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국가채무 상환 등 기존 활용 방식도 여전히 선택지로 남아 있다.

정부는 16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미래대응기금 신설과 국부펀드 투자 등 초과세수의 구체적 활용 방안과 국부펀드 설립 방안 및 발표시기 등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