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요금 인상에 자체 AP 개발 나서 '삼성 엑시노스 위기', 이재용·손정의 협상에 쏠리는 눈

▲ ARM 기술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의 AP 엑시노스가 더 깊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ARM이 반도체 기술료(라이선스)를 4배 인상하고,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개발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ARM 기술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의 AP ‘엑시노스’가 더 깊은 위기의 늪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손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전략적 선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회장은 ARM에 대한 투자 확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협력 등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ARM의 최대주주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퀄컴과의 AP 라이선스 소송에서 패소한 뒤,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ARM은 2022년 퀄컴이 인수한 반도체 기업 ‘누비아’의 AP 설계에 자사의 기술이 활용돼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퀄컴이 ARM의 라이선스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평결하며 사실상 ARM은 패소했다.
 
ARM 요금 인상에 자체 AP 개발 나서 '삼성 엑시노스 위기', 이재용·손정의 협상에 쏠리는 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지난 2019년 7월4일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만찬을 위해 회동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손 회장은 재판에 불복해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소송 패소로 ARM의 시장 영향력이 약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손 회장은 ARM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공격적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된다.

로이터는 손 회장이 ARM의 라이선스 비용 인상에 강한 의지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데도 ARM의 수익성이 지나치게 낮다는 판단 때문이다. 

퀄컴과의 소송에서 나온 문건과 증언에 따르면 이미 ARM은 기술 라이선스 비용을 최대 4배 인상하고, 자체 AP를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향후 10년에 걸쳐 스마트폰 프로세서 관련 지식재산(IP) 매출을 10억 달러(약 1조4천억 원)로 늘리기 위한 ‘피카소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으로 전해졌다.

ARM의 이 프로젝트가 실행되면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가 개발하는 자체 AP ‘엑시노스’ 사업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ARM 기술을 대체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ARM은 AP 설계 시장에서 90% 가량을 점유하며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엑시노스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탑재되며 원가 경쟁력을 강화해왔는데, ARM 기술료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는 모바일경험(MX) 사업부 실적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엑시노스 개발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2500의 수율(완성품 비율) 문제에 따라 갤럭시S25 시리즈에는 탑재되지 않으며, 퀄컴의 AP '스냅드래곤8 엘리트'가 전량 탑재된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ARM 대응을 위한 역할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과 두터운 친분을 바탕으로 전략 협상을 통해 ARM 라이선스 가격 협상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실리를 챙길 수도 협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손 회장과 매년 7월 열리는 글로벌 비공개 최고경영자(CEO) 모임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며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다. 업계에선 두 사람이 따로 골프 회동도 가질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평가한다.
 
ARM 요금 인상에 자체 AP 개발 나서 '삼성 엑시노스 위기', 이재용·손정의 협상에 쏠리는 눈

▲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삼성전자>


이 회장은 ARM이 추진하는 자체 AP 제작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겨달라는 협상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3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손 회장과 협력으로 서로 윈윈 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삼성전자가 ARM에 전략 투자를 늘리며 협력을 강화해 미래 시장으로 주목받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등의 반도체 분야에서 시너지를 노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ARM의 저전력 설계와 높은 확장성을 지닌 아키텍처는 이같은 신성장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이미지, 센서 데이터 통합, 머신러닝 알고리즘 등 실시간 처리에 필요한 ARM의 CPU코어인 코텍스A(Cortex-A) 시리즈는 전기차와 시스템반도체 개발에 주로 활용된다. 삼성전자는 전장용 반도체 개발에도 나서고 있는데, ARM과 협력할 경우 시너지가 충분히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ARM이 개발하는 에토스(EThos)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AI 반도체는 자율주행차와 홈 IoT 기기에 필요한 딥러닝 모델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또 전기차와 IoT 기기에 활용되는 코텍스M 시리즈는 전력효율을 강화해 배터리 수명이 긴 AI 가전 개발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말 연결 기준으로 현금과 현금성자산을 합해 43조1300억 원, 단기금융상품 60조6100억 원 등 총 103조원의 투자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손 회장은 2022년 삼성전자를 ARM 상장 전 투자 유치 기업으로 판단하고, 그 해 10월 한국을 직접 방문해 이 회장을 만나 삼성전자와 ARM의 중장기 협력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손 회장은 사실상 ARM을 삼성전자에 매각하겠다는 의도를 가졌고, 이 회장이 이를 검토하다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이 회장이 손 회장과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라며 “현재로서는 ARM이 실제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어떻게 나오느냐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