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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한-미 동조화는 항상 한-미 윈윈인가?

정의길 egil@hani.co.kr 2023-04-27 1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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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한-미 동조화는 항상 한-미 윈윈인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합동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도 함께 했다. <연합뉴스>
“당신의 최우선 경제적 순위는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 제조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제조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는 당신의 정책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아픔을 주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를 위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핵심 동맹국에 피해를 주지 않는가?”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가진 합동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질문자로 나선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은 윤 대통령의 이번 방미의 성격을 짚는 핵심 질문이었다. 더 나아가 향후 한-미 관계와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음울한 예고였다. 
 
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전날인 23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상황을 극명하는 드러내는 기사를 실었다.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등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대항해 미국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에 나선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 반도체의 부족분을 메꾸지 않도록 한국 정부에 미국이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이 퇴출되면 한국 기업들이 대신해서 반도체를 팔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과 경제가 미국의 대중국 대결의 동원돼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우려는, 지난해 8월 통과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및 ‘인플레이션감축법’(nflation Reduction Act)에서 이미 구체화 됐다.
 
반도체지원법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는 기업에게 향후 5년간 총 527억 달러라는 큰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나, 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사실상 미국에게 핵심 기술을 토해내고,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하는 조건을 달았다.

미 안보국의 반도체 시설 접근, 초과이익 발생시 미 정부와 공유, 기업들의 예상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 및 생산 소재 등 민감한 정보까지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특히, 향후 10년간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거나 신축하지 않는다는 서약도 내놓도록 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북미 지역 최종 조립 요건’을 갖춘 전기차에게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가 제외된다. 이 규정은 세계무역기구(WTO)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명확히 위배된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미국 정부는 북미에서 생산되는 현대자동차 등 한국회사 전기차도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보조금 지급에서 배제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는 모두 미국 회사들의 전기차만 선정됐다.

다른 나라 회사들의 전기차도 제외됐지만, 한국 자동차 회사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 자동차 회사의 전기차 배터리는 원자재의 70%를 중국 광물에 의존하며 거의 전량을 중국 현지에 있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핵심물자의 미국 내 생산’이라는 법적 제한은 한국 회사에게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의 이번 미국 방문은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감축법에 따른 한국의 불이익을 조정하는 데도 큰 방점이 있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미국이 한국을 겨냥해 이 2개 법의 내용과 세부 시행을 바꿀 의도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은 예상됐다.

양국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에서 그 사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은 고사하고 언급조차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반도체법이 “중국에 피해를 주려고 설계한 게 아니다”며 “한국 회사들이 미국에 반도체 제조를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그는 미국의 반도체 정책이 “한국에서도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SK뿐 아니라 삼성과 다른 산업에서도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며 “윈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금 170억 달러를 투자해 텍사스 테일러에 반도체 첨단공장을 신설 중이다. 한국에 투자할 수도 있는데, 미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인건비와 생산비가 높고 작업효율도 높지않은 미국에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으려면, 삼성전자가 갖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토해내고, 중국 시장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주고 뺨 맞는 격이다.
 
한국 경제와 기업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섰다. 한국 경제와 기업이 미국의 대중국 대결에 동원돼, 그 역량과 기술은 미국에게 넘기고 총알받이로 소모되는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면 과연 과장된 것인가?

한국 경제와 기업은 그동안 미국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형성되고 성장했다.
 
제2차 대전 뒤 미군정청이 압수한 일본의 적산기업들을 독립하는 한국에 불하해, 한국 주요 기업들의 뿌리가 됐다. 한국 경제는 한국전쟁으로 미국의 원조물자와 미군의 피엑스(PX) 물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 이후 수출주도 경제성장 전략을 채택했다. 소련 등 사회주의권을 봉쇄하고, 자본주의권 경제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부응해, 그 하위 파트너로 참가했다.

일본의 식민지 보상금과 한국의 베트남전 참가에 따른 비용은 한국에게 종잣돈이 됐다. 한국의 우수한 인적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전후 부흥 경제붐에 있던 서방에 값싼 공산품을 제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수입대체화 산업 정책을 펼친 중남미 국가들은 실패하고 낙후된 반면, 한국은 수출주도 경제성장으로 산업화 국가로 발돋음할 기반을 마련했다.
 
서방에서 전후 부흥 경제붐이 종식되고, 미국의 무역수지 및 재정적자가 악화되자 경제위기가 닥쳤다. 경제위기는 1970년대 초반 오일쇼크로 현실화됐다. 한국 경제와 기업은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에게 석유 매매 결제를 달러로 고정하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으로 달러패권을 유지했다.

한국은 오일달러에 쏟아진 중동 산유국에 진출해 제2의 경제성장 붐을 구가할 수 있었다. 1970년대 말 중공업 과잉투자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이는 1980년대 들어 석유값이 안정화되자 한국의 제조업 역량을 제고하는 바탕이 됐다. 
 
1990년 초반 사회주의권이 해체되고,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과의 수교는 한국 경제와 기업에 또다른 도약대가 됐다.

사회주의권 해체로 미국 주도의 글로벌리제이션이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을 이 체제에 포섭했다. 미국은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핵심으로 하는 글로벌리제이션 체제를 구축했다.

미국은 산업 분야에서 첨단 기술의 설계와 표준, 그리고 금융을 통제하는 정점에 섰다. 그 체제에서 한국이나 일본 등은 미국의 첨단기술과 설계, 표준을 구현하는 공급망의 중상위 파트너를 자리매김했다. 중국이나 후발 개도국들은 풍부하고 값싼 인력으로 공산품을 값싸게 생산하는 생산기지인 하위 파트너가 됐다.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 혹은 소비재를 제공하며,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기술혁신도 가속화했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부흥한 배경이다.

미국에게는 반도체 원천 기술과 설계를 자신들이 직접 구현하기보다는 한국과 대만에 맡기는 것이 값싸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7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서도 중국 시장을 바탕으로 그 위기들을 극복하고,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은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속에서 이뤄졌다. 세계무역기구로 상징되는 다자주의 및 양자 자유무역협정 등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핵심이었다.

그 ‘규칙’은 물론 미국이 정한 것이고, 미국의 이익이 우선한다. 어쨌든 무역 장벽은 낮아지고, 시장은 글로벌화됐다. 한국 경제와 기업은 그 틀 안에서 세계 10위 안으로 진입하는 도약을 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미국의 세계 전략은 바뀌어 갔다. 중국의 성장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커지고, 미국 자체의 제조업 역량이 형해화됐기 때문이다.

제조업 공동화로 인해 미국 중하류층에게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이들의 불만도 커지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상징되는 미국 우선주의가 득세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억누려고, 중국을 기존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대중국 대결 전략을 채택했다.
 
코로나19 팬더믹은 제조업이 공동화된 미국의 약점을 여지없이 노출했다. 미국은 마스크나 진단 장비도 제대로 조달하지 못했다. 코로나19 같은 비상시에 미국이 보인 취약성은 이미 가동되기 시작한 중국 배제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했다.

이를 시작했던 트럼프가 물러났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때 소원해진 기존 동맹을 더 규합하면서, 공급망 재편에 올인했다. 
 
그 여파가 지금 한국 경제와 기업에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지원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의 본질은 미국이 자신의 땅에 첨단 산업 공장을 다시 구축해 자신들이 이제 직접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력으로 하면 그렇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미국이 한국이나 동맹국들을 을러서 미국 땅에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 등의 회사들이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짓고, 기술을 공개하고, 이익을 나누라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 등 세계 시장에는 진출하지 말라고 발을 묶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 등에서 중국에 규제를 가하자, 당초 한국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미국이 중국의 추월을 막아주기 때문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더 성장하고 시장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한국 인구의 8분1 정도인 600만 명의 국민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나 SK하이닉스가 최근 심각한 영업적자를 내고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은 단순히 반도체 업황이 불황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불황 자체가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서 기인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굳건해야 한다. 하지만, 동맹의 이름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 등 중추적 산업까지 그 동맹의 대가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한국은 언제까지 미국과의 동조화를 무한히 수용해야 하는가? 정의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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